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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접대비용 상한, 최저임금과 연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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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영란법' 접대비용 상한, 최저임금과 연동하자"

[기자의 눈] "그들의 한끼 밥값, 최저임금 노동자 일당"

'얻어먹는 밥값'이 논쟁거리다. 원래 3만 원까지 괜찮다고 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에 담긴 내용이다. 그걸, 5만 원으로 올리자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일 제안한 내용이다. 새누리당도 호응했다. 결국 김영란법의 식사 접대 및 선물의 가격 상한은 더 오를 모양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내건 논거는 이렇다.

"김영란법에 규정된 식사 접대비용 3만 원은 2003년 공무원 지침에 바탕한 것이다. 그런데 13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음식점 물가가 올랐다. 그러니까 식사 접대비용 상한을 5만 원으로 올리는 게 합리적이다."

'물가'를 반영하자는 게다. 그럼 제대로 해야 한다. 어차피 물가는 수시로 바뀐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5만 원짜리 식사도 싸구려가 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이 심각해지면, 1만 원짜리 식사도 초호화판일 수 있다. 그때마다 관련 규정을 바꿀 건가.

접대비용 상한, 최저임금과 연동하자

다른 제도를 참고하는 게 좋다. 예컨대 최저임금은 매년 새로 정한다. 노동조합과 기업 경영진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구성된다. 여기서 물가까지 고려한 최저임금을 정한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합리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말 "합리적"이려면, 접대비용 상한 역시 최저임금처럼 정하는 게 옳다. 일단 물가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또 비용을 부담하는 측의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접대비용을 내는 측은 대개 기업일 텐데, 적자가 심한 상황에선 가격 상한도 낮춰야 한다.

물론 최저임금을 정하는 과정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임금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투명한 논의가 가능하다. 공개된 수익을 놓고 이야기하면 된다.

하지만 접대비용은 이처럼 투명한 논의가 어렵다. 비용을 내는 측이 솔직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올해 수익이 이 정도니까, 접대비용으로 얼마를 쓰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적정한 접대비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물론, 접대 자체가 떳떳치 못한 목적으로 이뤄지는 탓이 더 크다.

그렇다면, 접대비용의 상한을 시간당 최저임금(최저시급)과 연동해서 정하면 어떨까. 식사 접대비용 상한을 3만 원으로 정하자는 입장이라면, '최저시급의 다섯 배'로 정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6030원이다. 식사 접대비용 상한으로 5만 원쯤이 타당하다고 본다면, '최저시급의 여덟 배' 가량으로 하자고 주장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물가 변화를 반영할 수 있다. 또 기업의 형편도 어느 정도 반영된다. 기업 사정이 나쁘면, 최저임금 인상 폭이 줄어드는데, 그러면 접대비용 상한 역시 영향을 받는 구조다.

'최저임금 규정'의 무게감


다른 장점도 있다. 실은 이게 더 중요해 보인다. 일단, 접대를 하거나 받는 측이 올해 최저시급이 얼마인지를 늘 기억하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미용실 등 근로자 수가 10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 3600곳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울시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 가운데 6%는 최저시급도 못 받는다.

최저시급 규정이 무시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최저임금 규정'의 무게감이다. 사업주들이 '최저임금 규정'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수시로 접대를 받는 이들, 이른바 여론 주도 층이 식사 자리에서 늘 최저시급을 생각한다면, '최저임금 규정'의 무게감은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

'3만 원짜리 식사'가 불만이라면, 최저임금 올려라

더 중요한 효과가 있다. 수시로 접대를 받는 이들, 예컨대 고위 관료들은 최저임금 변화의 영향권 밖에서 지낸다. 첫 월급부터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았다. '출발선'이 달랐다는 말이다. 최저임금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이들은,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개돼지"라고 했다.

그런데 접대비용 상한과 최저임금을 연동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개돼지" 사료 값 정도로 여겼던 최저임금이 올라야, 자신들이 누리는 접대 수준이 함께 높아진다. 그들이 '3만 원짜리 식사'로 만족할 수 없다면, 그들이 먼저 최저임금을 올리자고 할 게다.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이해관계를 연동시킨 제도

이상한 발상이 아니다. 실은 한국 사회의 주요 제도가 대개 이렇게 설계돼 있다. 병역 의무 역시 좋은 사례다. 병영 내 인권 수준이 이만큼이나마 유지되는 건, 상당 부분 징병제 덕분이다. 고위층 자제 가운데 많은 이들이 병역을 회피한다. 그래도 일부는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한다. 최전방 야전부대에도 드물게나마 고위층 자제가 있다. 그러니까 병사에 대한 처우가 어느 선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만약 모병제였다면 어땠을까. 병사 월급이 장교나 부사관보다 높게 책정될 리는 없다. 최저임금을 살짝 넘는 수준일 게다. 이런 일자리에 자발적으로 지원한 청년들이 금수저나 은수저일 가능성은 없다. 폐쇄된 병영 안에서 그들이 어떤 꼴을 겪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향욱 전 기획관이 말했다. 구의역 사고로 숨진 19살 청년이 내 자식 같다고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출발선상이 다른데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란 게 있다."

병사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게다.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이해관계를 연동시킨 제도 덕분에, 가난한 청년도 멀쩡하게 전역할 수 있었다.

보편주의 원리'다른 세계를 같은 이해관계로 묶다'


소방이나 치안 서비스 역시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들 공공 서비스는 '보편주의' 원리로 작동한다. 그러니까 부자들이 세금을 낸다. 만약 이들 서비스가 민영화 돼 있다면, 예컨대 부잣집에 난 불만 끄는 소방관이 따로 있다면, 부자들은 굳이 세금을 내려 하지 않을 게다.

가난한 집이나 부잣집이나 똑같은 소방관이 출동하니까, 이른바 여론 주도 층이 공공 부문에 관심을 둔다. 그래서 공공 부문이 건강하게 유지된다. '보편적 복지'가 지닌 장점도 이런 맥락이다.

접대비용 상한이 높아지면 상위 계층이 혜택을 본다. 최저임금이 높아지면 수혜자가 하위 계층이다.

이들 두 집단은 사실상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식사 접대 자리가 잦아진다한들, 같은 세계 안의 인간관계만 끈끈해질 뿐이다.

이들 두 집단이 직접 만날 일은 없다. 접대비용 상한과 최저임금을 연동하자는 건, 이들 두 집단의 이해관계를 연결하자는 주장이다. 다른 공공 부문에서 작동하는 '보편주의' 원리를 적용하자는 게다.

한끼 식사 5만 원, 최저임금 노동자 하루 급여


접대비용 상한과 최저임금을 연동할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또 있다. 접대비용 상한이 5만 원이라면, 이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하루 종일 일한 대가다.

한끼 밥값이 누군가에겐 하루 일당이라는 걸 기억하는 정치인, 관료, 기자, 교사 등이 조금이라도 늘어났으면 한다. 접대비용 상한과 최저임금을 연동할 때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순기능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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