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 나라는 '아전이 통치하는' 나라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 나라는 '아전이 통치하는' 나라인가?

[기고] 고시 관료 대신, 개방형·종신직 공무원은 어떤가?

문제의 바탕에 언제나 관료 집단이 존재한다

최근 한 고위 관료가 소신 있게 주창한 "개돼지", "신분제" 발언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그간 잠복해 있던 관료주의의 문제점이 빙산의 일각처럼 표출된 사건에 불과하다.

1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화여대 사태의 배후에도 관료 집단이 존재한다. 즉 프로젝트형 사업 위주로 대학을 직업훈련 양성소로 만들려는 정부의 시장만능주의만이 작동되는 방식으로, 교육부가 돈줄을 틀어쥐고 일방적으로 대학의 구조조정과 학제 재편을 압박함으로써 정부는 대학에, 대학은 구성원들에게 일방적 순응만 강요하는 비(非)민주성이 관철됐던 것이 사태의 근본 요인이었다.

세월호의 참담한 비극이 발생한 뒤, 모든 사람들이 '관료 개혁'을 외치고 그 목소리는 가히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차츰 언제 그랬냐는 듯 흐지부지되더니 관료 사회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그 힘은 오히려 더욱 강고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관료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자 급기야 "국민은 개돼지"라는 고위 관료의 '직언'까지 들어야했다.

"황제와 아전이 천하를 함께 통치하다"-동양 전통의 정치제도


현대에 우리 사회의 관료주의의 바탕에는 동양 사회의 전통이 여전히 깊숙이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역대의 모든 행정 제도의 설치와 운용은 사실상 관리(官吏) 개개인의 능력 발휘를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즉 관료 선발 제도로서의 과거시험이 철저하게 실천과 유리된 채 오로지 협소한 경전과 사서(史書)의 암송에만 집중됨으로써 개인 능력 발휘를 억제하여 능력을 저하시키는 대신 황제에 대한 무제한적 충성을 요구했으며, 지식의 측면에서도 극히 단편적이고 비창의적인 지식만을 요구했던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 황권(皇權)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정책은 우선 중앙에서 각종 방법으로 재상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다음으로 지방에서는 각종 방식으로 지방 장관의 권한을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지방 장관의 임기를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지방 정무에 숙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각 아문(衙門)의 각종 조문들은 모두 아전(吏)들이 제정했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현상은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지만, 사실상 실제적인 일체의 사무에 있어 이들 아전들이 전문가였고, 따라서 그 처리는 전적으로 이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사실상 '아전 독재'였다. 그리고 황제는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이들 '아전'들과 기꺼이 천하를 함께 통치했다.

명말청초의 대학자인 황종희(黃宗羲)는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천하에 아전의 법만 있고 조정의 법은 없다"고 풍자했다.

권력은 바뀌지만 관료는 불변하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이들 '아전'들이 사실상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권력은 5년마다 바뀌지만, 관료들은 바뀌지 않은 채 언제나 강고하게 온존한 채 그 핵심적인 자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구조적 관점에 살펴보면, 정권이란 전체 공무원 조직에서 '빙산의 일각'이다. 누가 윗자리에 장(長)으로 임명된다고 한들, 부나방처럼 짧은 임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은 초록동색, 거의 유사한 과정이고 결과일 뿐이다.

관료 집단이라는 빙산 위에서 이 나라의 정치권은 참으로 정력적이고 상시적으로 정치 투쟁을 전개하면서 오로지 자리 차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 관료 집단과 정치집단이 서로 도와 가면서 관료주의라는 강고한 구조를 안정적으로 구축해가고 있는 셈이다.

물 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이 공무원 관료 조직을 효율화시키지 않고서는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공무원 조직은 한 나라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틀이며 혼(魂)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官)주주의'의 극복을 위하여

식민 통치를 통해 우리나라에 오늘날까지 뿌리 깊게 관료주의를 실질적으로 형성시킨 일본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관(官)주주의'라 불릴 만큼 관료 집단의 힘이 막강하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정권이 정부 조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공무원 조직을 개혁해내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내고 진전시키지 못한 대단히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이 되는 것이 젊은이들의 가장 큰 꿈으로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관료 개혁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온통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대통령 한 명 바꾼다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나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의 두 번에 걸친 '진보 정권'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이나 용산 미군기지 이전 과정, 그리고 어떤 권력에도 언제나 추수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나 허준영, 반기문 등을 특별히 중용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오히려 공무원 관료 집단을 진정한 전문가집단 및 권력의 기반으로 간주하면서 철저히 의존했고 결국 거기에 '업혀' 갔다.

공무원 진입의 다양화가 이뤄져야

시험만으로 공무원을 선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이들이 장·차관이라는 최고 직위까지 도달하는 것이 더 이상 미담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은 거꾸로 가장 무능한 사회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증거일 수 있다. 중국의 근대 학자 고염무(顧炎武)도 중국 과거 제도의 폐해가 진시황의 분서(焚書)와 같으며 인재에 대한 파괴는 오히려 갱유(坑儒)보다 더 심하다고 갈파했다.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은 "대통령의 정무직 공무원 임명권을 제한하는 것은 통상 변화와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인 기존 경력직 공무원의 강력하고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강화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프랑스는 행정국가의 전형으로서 행정 운용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프랑스에서는 중앙 부처의 국장, 임명직 도지사, 교육감, 대사 등 500여 개의 직위가 정치적 임명직(자유재량 임명직)으로 국무회의 심의·심사를 거쳐 특별 채용되는 등 프랑스 대통령은 총 7만여 개의 직위를 임명할 수 있다.

프랑스 헌법 제13조, '국가 공무원 지위에 관한 법률' 제25조 및 동법 시행령은 "중앙 행정부 국장은 국무회의에서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통령이 실제로 국장급 이상의 직위를 모두 직접 임명한다는 의미다.

프랑스는 유명한 국립행정학교, 즉 에나(ENA)를 통하여 고위공무원을 채용한다. 2003년의 경우 총 선발인원은 100명으로서 이 중 50명은 외부 경쟁시험, 41명은 내부 경쟁시험, 9명은 '제3의 시험'을 통해 선발된다. 외부경쟁 시험 자격은 28세 이하이고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에게 주어진다. 내부경쟁 시험은 현직 공무원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지고, 학력 제한 없이 5년 이상의 공공 부문 근무 경력을 충족시킨 자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한다.

'제3의 시험'은 40세 미만 전문직 또는 지방자치단체 의원으로 8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자에게 응시 자격을 준다. '제3의 시험'은 고위 공무원의 사회적, 지리적 배경을 다양화시켜 공무원 충원의 민주화에 기여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프랑스는 이렇게 해서 고급 공무원의 사회적 배경의 균형을 추구하고 전문가의 공직 진출 가능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그 밖에도 계급제의 단점인 충원 형태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해 공개 채용시험 외에 다양한 충원 형태를 운영하고 있다. 특별채용과 전체 공무원의 20%에 이르는 계약직 공무원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계급제 하에서 인력 운영의 탄력성을 높이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종신직이기 때문에 권력에 독립적이다"

공무원의 다원화와 전문화 그리고 독립성을 위해서는 심지어 종신직도 고려해야만 한다.

미국의 대법관은 종신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권력의 의중에 의해 임명되어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신직인 미국 대법관은 역설적으로 종신직이기 때문에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다.

미국에서 헌법 해석에 있어 권위 있는 전거로 활용되고 있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Federalist Paper)는 대법관 종신제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정의를 실현하는 법원은 헌법과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고 그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재직하는 법관에게는 이와 같은 성격을 기대하기 어렵다. 법관의 일시적인 임명은 법관의 독립이라는 중요한 요소에 치명적인 사항이다. 만약 법관 임명권이 행정부나 입법부에 위임될 경우에는 임명권을 갖고 있는 부(部)에 부적절하게 순종할 위험이 있으며, 두 부 모두에게 임명권이 주어진다면 한 부가 불만에 빠질 위험이 있고, 만약 시민이나 시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에게 직접 임명권을 부여한다면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경향이 만연할 것이다"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495)

건강한 공직 사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회계)감사원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처럼 의회 소속이거나 독일·프랑스 등 서구 각국처럼 독립적인 감사원은 조직 자체도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감사원장의 임기가 모두 10년 이상으로 대통령 임기 범주를 넘어섬으로써 동시에 실질적으로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보장된다.

우리나라의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 1인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모든 기관장을 임명하고 있는데, 이처럼 종신제를 포함해 임기가 대통령 임기보다 긴 직위를 여러 곳에 만드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실질적 방안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질문하라, 나는 '보수주의자'인가?

세월호 사건 직후 '고시 제도 폐지론'에 대해 진보 진영의 대다수 논객들은 당시 유명환 외교장관 딸의 특채 사례 등 권력층이 자의로 특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이처럼 대안 없는, 그리하여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반대론의 결과는 오직 기득권의 유지, 고착화 그리고 확대로 귀결될 뿐임을 인식해야 한다.

개혁 혹은 진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회의 현상을 변화시키고 현재의 문제를 바꾸려는 의지와 능력이다. 만약 현상 변화의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보수 그 자체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진보진영의 대다수가 '보수주의'의 늪에 빠져 있지 않은 지 스스로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