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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신자유주의 재앙의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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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신자유주의 재앙의 신호탄

[민교협의 정치시평] 이제 '민생과 민주주의'다

영국이 국민 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이후 세계 경제 및 금융 시장은 의외로 조용하다. 일부는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유럽 통합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예견하는 반면, 일부는 장기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격변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브렉시트의 경제적 영향, 이 또한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보다도 그 정치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브렉시트에 대한 일반적 견해는 영국의 당파적 정치인들이 감당하지 못 할 선동 정치를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더 주목할 것은 이 사건은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만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이면서도 불안한 예측 역시 같은 흐름에 있다. 소위 선진국에서의 정치 위기와 더불어, 필리핀 선거 등 개발도상국에서의 특이한 흐름 역시 전통적인 정치 구도를 넘어가고 있다. 게다가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테러 역시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 충돌로 번져갈 조짐까지 보인다.

나는 영국민들이 브렉시트 후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정치인의 선동에 넘어가서 브렉시트에 찬성을 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을 알고도 현 체제의 불만을 표하기 위해 찬성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안이 객관식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찬성, 아니면 반대!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미국민의 현 체제에 대한 불만과 염증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놀랍게도 트럼프보다는 진보적인 클린턴이 지배 체제를 대변하는 듯이 보인다. 미국 민중을 대변한 샌더스는 민중이 파시즘을 지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울며겨자 먹기로 현 체제를 지지하는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이 모든 사태는 기존의 것이 무용해지고 새로운 것은 부재한 위기의 징후로 보여진다. 그러나 우리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이 위기의 실체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 상황이 지구촌이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충돌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사건들은 대부분 경제적 문제와 물려 있기 때문이다. 영국민의 삶이 팍팍해지지 않았다면 분담금 문제가 그렇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고 난민 유입에 대해 민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인 또한 중산층의 몰락이 아니었다면 앞뒤 안 맞는 선동 정치에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또 문명 충돌, 종교 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는 IS 등 급진파의 테러 역시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이 사태의 배후에는 꽤 오래 진행된 상황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소위 신자유주의다. '소위'란 단어를 붙인 이유는 현재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라 할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과거의 반케인스 정책을 반성하고 나섰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공공연하게 외치고 있는 정치 세력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영향의 여진은 현재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도 장기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신자유주의가 1970년대 자본주의 위기를 계기로 케인스주의를 배격하며 등장해서 근 40년간 지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영향이 장기간 지속하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예측이다.

신자유주의의 중대한 결과가 세계화, 금융화, 양극화 등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파시즘의 재대두, 고립주의의 등장, 문명 충돌의 심화, 결국 이로 인한 파멸적 전쟁 등을 막으려는 진지한 정치 세력은 신자유주의의 효과를 제어할 대안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가져 온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지점에 가장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는 케인스주의처럼 자본주의 약 50년을 지배했던 이론, 이념, 정치 노선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같은 거대 담론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이 보다 좀 더 세심한 대안이 필요한데, 이러다 보면 파편적인 정책 대안만 모으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추상성이 중간 정도인 효과적인 구호가 없을까? 나는 '민생과 민주주의'라는 구호가 어떨까 생각해 본다. 비록 이 용어를 그대로 쓰지 않더라도 이 용어가 지시하는 지점에 착목하자는 말이다. 민생은 보통 사람의 경제적 삶을 말한다. 보통 사람의 경제적 삶이 윤택해지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학은 주객을 전도시켜 경제 성장 만이 모든 경제 정책의 목표인 것으로 말한다. 이러한 담화 구조 하에서 경제 성장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어디인지는 없어지고 만다. 심지어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민생이 파괴되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이 유포된다.

그러나 저성장, 심지어는 0%의 성장이 표준이 되는 이른바 '뉴노멀'이 경제 성장을 통한 경제적 삶의 향상이라는 메시지를 근저에서 무너뜨리고 있다. 따라서 경제 정책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 즉 민생에 다시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도 논란이 많은 용어임에는 틀림없다. 다수의 결정이라는 본질적 특성으로 인해 중우정치로 흐를 수도 있다. 다수의 결정 과정을 거쳐서 파시즘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엘리트가 지배하는 (물론 실제로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회를 옹호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최소한 주권의 소재를 따지는 이념적 수준에서는 그렇지 아니한가. 그래서 국민주권을 부정한 '개돼지'를 말하는 고위 공무원은 파면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개돼지론'이 현실을 반영한 말임도 안다. 즉,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때 대안은 민주주의의 부정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할 주체의 정치적 성숙, 또 이를 위한 제도적 차원의 지원, 즉 사회적, 교육적 프로그램이다.

지금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 사회에서 떠도는, 다양한 대안 정책들을 이러한 기준으로 평가해보자. 이때 브렉시트는 영국 민중들이 민생과 민주주의를 구해달라는 단말마적인 비명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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