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7월 25일~28일)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힐러리 클린턴의 후보 수락 연설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힐러리 클린턴은 후보수락 연설을 통해 "중산층을 위한 경제, 양질의 일자리와 충분한 임금, 등록금과 대출 없는 대학교육" 등 국내 이슈를 중심으로 민심을 얻고자 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두려움을 자극해 분열을 조장하는 불안한 후보"로 규정하고, "국경 장벽 건설 반대, 나토 및 동맹강화" 등을 강조하며 자신이 "능력 있고 안정감 있는 후보"임을 과시하고 자신에게 투표하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일"임도 강조했다.
후보 수락 연설이 전당대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하이라이트임을 보여주듯, 전당대회 마지막 날은 행사의 역량이 총결집된 규모로 치러졌고 대회장 출입증(Credential)을 소지하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행사장 바깥까지 인파로 북적였다. 100일이 남은 대선의 대장정에 오르는 후보를 중심으로 당이 결속하는 외양이 갖추어진 열광과 환호의 밤이었다. 전현직 대통령, 경선 경쟁자, 인기 정치인 등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해 힐러리 지지와 당의 단합을 호소한 어벤저스 급의 전당대회는 이렇게 흥분과 열기 속에 마무리됐다.
4일 동안 전당대회를 참관하면서 한국의 전당대회와 정치문화와 자연스레 비교가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당대회장 안과 밖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뽑지 못하고, '통일주체 국민회의'와 같은 거수기 선거인단으로 대통령을 뽑던 '체육관 선거'가 있었다. 이제는 체육관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대통령을 뽑는 일은 없어졌지만, 정당들의 전당대회는 여전히 '체육관 선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발적이기보다는 지역위원장이나 지인의 권유로 '당원에 가입된' 사람들이 제공된 버스에 올라타 체육관에 가서, 당헌당규의 변경에 형식적으로 찬성 표시를 하고, 당 대표나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연설을 들은 후, 지역위원장에게 지시를 받은 후보에게 투표하고 집에 돌아오는 하루가 전당대회의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자발적인 당원들의 증가와 정책과 가치 중심 정당으로의 이행 노력 등으로 나아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런 체육관 선거의 모습을 벗어났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아직 우리의 전당대회는 정책과 가치, 당헌과 당규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찾아보기는 힘들며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론의 장은 더더욱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목격한 미국 정당의 전당대회는 체육관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당대회는 단순히 후보를 선출하는 행사가 아니라 여러 날 동안 공론의 장과 정치교육의 장이 되었고, 당원들은 치열한 토론과 함께 당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표출했다.
각종 연설과 후보 선출 등이 치러진 장소였던 웰스파고 센터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 지역 곳곳이 전당대회 장이었다. 대표적인 장소가 '필라델피아 컨벤션 센터'였는데, 이곳에서는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인디언' 등 인종별은 물론, '여성, LGBT(성적소수자), 노인, 청소년, 퇴역군인, 자영업자,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별로 조직된 위원회들이 회의를 열어 해당 분야의 이슈를 점검하고, 당사자로서 권익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과 방안들을 논의했다.
각 조직들은 공식적인 회의 외에도 필라델피아 지역의 식당 등을 빌려 구성원 간의 결속은 물론, 정치인들을 불러 해당 이슈에 대한 지지를 다짐받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했다. 필자도 민주당 내에서 아시안(태평양 섬 지역 미국인 포함)들의 모임인 AAPI(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가 개최한 회의와 오찬 이벤트에 참석했는데, 이 행사는 '워싱턴 한인지구 연합회'와 '시민(한인)참여센터' 등 한인단체가 주요 후원자로 나서 한인들의 활발해진 정치활동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행사들은 '다양성의 발현'을 보여주었으며, 전당대회장에서도 다양한 인종구성을 볼 수 있어 백인들의 잔치로 끝난 공화당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러한 조직별 활동뿐 아니라, 전당대회 준비위원회(The Host Committee for The DNC)는 'POLITICAL FEST'라는 정치박람회를 필라델피아 7개 장소에서 열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과정에 대한 전시, 백악관 집무실 체험 등 어린이를 위한 행사뿐 아니라, 여성 정치사와 성적소수자(LGBT) 부스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장도 펼쳐졌다. 전당대회 출입증을 소지한 사람들은 무료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유료(어른 15달러, 청소년과 어린이 5달러)로 개방할 만큼 질적인 면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행사였다. 필자는 국립 헌법센터(National Constitution Center)에서 열린 행사를 가봤는데, 어린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대통령 후보 경선, 대통령 선거, 대통령 취임식, 대통령의 직무 등을 전시해 전당대회가 어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미래의 유권자들에게도 정치에 대한 흥미와 의미를 심어주는 행사임을 보여줬다. 전당대회가 정치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우리 정당들도 직역별 위원회가 존재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장치들을 제도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정책을 알리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총선기간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가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싸고 격론을 벌여 지도부의 방침을 변경시킨 것, 2015년 정책엑스포를 개최한 것은 그 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다양한 계층과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당의 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은 걸음마 수준이며, 각종 조직들도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우리의 정당은 소수 지도부와 계파의 이익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현실임도 부정할 수 없다.
이번 미국의 대선후보 선출은 '샌더스 현상'이 보여주듯 민심과 괴리된 정당과 정치의 위기를 보여줬으며, 수퍼팩(무제한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 반대할 수 있는 정치 자금 제도)과 같은 금권의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정치의 현실도 드러냈다. 이러한 미국 정당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당들은 이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이 차이는 무엇보다 건실한 정당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의 역사와 함께 뿌리를 내린 정당의 존재는 전당대회라는 행사를 전 국민의 축제로 만들고 있었다. 최근 10년간 당명이 10번 가까이 바뀌고, 걸핏하면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혁신의 시늉만으로 위기를 벗어나며, 1인 혹은 명망가 중심의 이합집산, 창당과 합당을 반복하는 허약하고 이름뿐인 정당으로 이런 전당대회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라델피아 전당대회는 민주당만이 행사가 아니었다. 위에 언급한 민주당이 주관하는 행사뿐 아니라 각종 언론사와 단체들은 유력정치인, 전문가, 캠프 관계자 등을 패널로 다양한 주제로 토론회와 좌담회를 열었다. 대표적인 것이 의회전문지인 <더 힐(The Hill)>과 <폴리티코(Politico)>의 행사였는데 전당대회 기간 내내 시내 중심가에 장소를 마련해 미국 정치의 방향, 민주당의 미래, 미국 대외정책, 대선전망 등을 주제로 한 행사를 개최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7월 28일 폴리티코 행사장에서는 '민주당의 미래'를 주제로 패널들의 좌담회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는 버니 샌더스 의원의 30년 동지이자, 최측근 참모로 이번 경선에서 선대본부장을 맡은 제프 위버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행사뿐 아니라 언론사들은 취재 여건이 충분치 않은 언론인, 정치학도,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휴식 및 업무 공간은 물론 다과와 식사까지 제공해 전당대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부담을 줄여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했다.
한 정당의 전당대회가 단순한 후보 선출 대회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공론의 장과 정치교육의 장으로 펼쳐지고, 언론과 시민사회 또한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튼튼한 정당과 역동적인 언론, 자유로운 시민사회가 그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정당들이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는 건실한 정당, 국민의 생활 속에 스며든 정치문화로 전당대회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기대하는 축제가 될 수 있기를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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