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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국민은 개돼지, 3등 국민은 '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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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등 국민은 개돼지, 3등 국민은 '해충'?

[초록發光] 외부 세력보다 무서운 기후 변화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THAAD)를 배치하기로 한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 평화롭던 농촌 지역 성주군에 봉기에 가까운 저항을 불러왔다. 사드의 군사적 유용성부터 전자파 위해성과 삶의 터전에 미칠 부정적 영향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보까지 여러 쟁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성주 투쟁'의 유발자가 정부 당국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다시 '투쟁위원회'가 등장하고 격렬하게 활동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구태의연한 결정-공표-방어(Decide-Announce-Defend)라는 악습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나 미세 먼지 대처에는 복지부동하다가 사드 배치는 점령 전투를 하듯 일사분란하게 처리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개돼지 민중론과 외부 세력론

이 놀라움 속에 지난 7월 22일 파면된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과 사드 배치를 발표한 뒤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정부의 태도가 겹친다. 신분제를 옹호하는 입장을 내뱉은 나향욱.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며 '주권' 행위의 결정 과정에서 성주 군민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이 둘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가 있다.

근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봉건적 인식과 대의 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전체주의적 발상이 동맹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민중'은 본능적으로 정부를 불신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과 민중을 불신한 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개돼지 민중론'이 엘리트 관료의 공직자 윤리를 일탈한 예외적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면, 사드 배치로 촉발된 사태는 정치 공학적으로 풀기 어려운 과제를 던진다. 소위 '외부 세력론'이 그것이다. 건국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그 뿌리는 깊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국가 기관 합동으로 전 방위적으로 움직인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 가운데 외부 세력을 공식적으로 대상화하여 작동한 경우는 1979년 8월 17~30일에 운영된 '외부 세력 침부 실태 특별 조사반'을 들 수 있다.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반장으로 한 이 조사반은 산업체와 농촌 지역 등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종교 단체와 농민 단체를 포함한 사회 조직들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시국의 요청을 외면하고 사회 혼란과 국론 분열을 조성하려는 언동이 있음을 매우 개탄하고 그동안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문제들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관계 당국은 물론, 사회 각계에서도 자발적인 노력과 효과적인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1979년 9월 14일)

전근대는 물론이고 근대 국가 형성과 유지에 이런 식의 외부화는 필연적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외부 세력을 유포하거나 조작하는 것에서 박정희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분명 닮은 점이 있다(북한 역시 미제와 체제 불만 세력을 타도해야할 외부 세력으로 간주한다). 198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민주화 이후부터 지금까지 '외부 세력화'는 끊이지 않았다.

민중 대 국가, 노동 대 자본, 지방 대 중앙, 환경 대 개발의 대립이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건에서 외부 세력이 등장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밀양 송전탑'과 '강정 마을 해군 기지'와 '세월호' 사건들에서 정부의 창조적 작업을 기억해 보자.

이 외부 세력은 그 실체를 찾기가 어렵지만 배후 세력이나 불순 세력이란 의미 부여가 되어 좌파 종북 색깔론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이는 단지 냉전적 프레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주민 등록 소재지"를 기준으로 나뉘는 내부화-외부화는 사건 장소의 국지화와 사건 주체의 고립화를 의도한다.

해당 이슈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확대되어 타 지역의 주민들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하려는, 즉 이슈의 전국화를 예방하고자 함이다. 성주 주민 이외에는 당사자 아님으로 해당사항이 없거나 전문 시위꾼과 반정부 세력으로 분류되어 담론장에서 배제된다.

그렇다고 성주 주민들이 처음부터 대화 상대가 된 것은 아니다. 정부 내부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었고 성난 민심이 밖으로 터지자 뒤늦게 고려 대상이 되었다. 이후 정부는 더 큰 민란으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려고 외부 세력을 만들어냈다. 평소대로라면 다음 순서는 외부 세력과 지역 반대 세력을 엮어서 지역 내부에서 구별 짓고 분열을 유도하고 협상을 제안하는 방법을 쓰게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1등 국민은 돈과 힘을 갖고 있는 권력자이고, 2등 국민은 말 잘 듣거나 말 잘 들어야 하는 개돼지이며, 3등 국민은 박멸해야 하는 해충으로 나뉜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사건을 축소하고 쟁점을 왜곡하기 위해서는 3등 국민이 필요하다. 고로 누군가는 3등 국민이 되어야 한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외부 세력론이 점점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드 배치 문제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보면, 외부 세력론이 더 이상 설자리를 잃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성주가 겪고 있는 부정의에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모든 개인과 단체는 거주지와 상관없이 좋은 외부 세력이 되고, 궁극에는 내외부가 사라지는 동일성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동의를 강요하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모든 권력은 나쁜 외부 세력으로 인식되고, 협상 카드로 제시하는 보상안에 대해서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외부 세력을 구성하고 그 세력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벌레를 선별해 약을 뿌려 잡아 없애면 되는 것인 양 정부는 이를 치안과 행정업무로 다룬다.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이 외부 세력의 집회 및 시위 참여 금지로 확대될지 모를 일이다.

정부는 또한 군사 무기는 국가 안보에 속하고, 국가 안보는 다른 국가와는 상의 하지만 국민과는 상의할 수 없다는 식으로 비정치적인 것으로 강변한다. 그러나 군사 활동은 항시적으로 국민의 생존과 안녕에 직결되기 때문에, 안보 문제는 국민적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사드 배치는 성주만의 문제가 아니며, 성주의 뒷마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도 들어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는 모든 국민과 주민이 제 목소리를 내고 주요 쟁점을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다양한 사회적 장치들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후 변화와 탈군사화

미 국방부는 오래전부터 기후 변화가 미국과 세계가 직면하게 될 가장 위협적인 미래라고 전망하고 준비를 해오고 있다. 기후 변화가 환경과 경제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 측면에서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발생하는 이주와 분쟁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기후 안보 관점에서 군대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당하려는 '녹색 국방' 계획도 세우지만, 대체로 군사적 해결책을 유지하거나 자원 경쟁이나 국경 통제 같은 국수적인 경향을 띤다.

이것이 기후 변화의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군비 경쟁이 심해지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뿐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교토 의정서에는 군사 활동에 대한 어떤 규제도 없다. 온실 기체 배출량을 보고하고 감축할 의무 조항이 없는 것이다. 파리 협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논의되어 앞으로도 군사 활동은 기후 변화 대응에서 열외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기후 변화를 막기 어렵다.

세계 단일 기관으로 석유를 가장 많이 소비하고 온실 기체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은 미군이다. 해외 미군 기지를 포함해 미군의 온실 기체 배출량의 공식적인 데이터는 없다. 몇몇 추정치로 집계될 뿐이다.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Oil Change International)이 2008년에 펴낸 <전쟁의 기후 : 이라크 전쟁과 지구 온난화(A Climate of War: The war in Iraq and global warming)>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4년 동안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면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1억4100만 톤을 해당 기간의 연간 배출량으로 놓고 보면 뉴질랜드 수준이다. 이는 배출량이 적은 139개 국가들을 모두 합친 양과 같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이 지출한 군비만으로 현재 기후 변화 추세를 막는 데 필요한 2030년까지의 전 세계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정의 진영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처럼 평화 군축 운동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지만 기후 변화 대응에도 대단히 효과적이다. 2014년에 국제평화국(International Peace Bureau)은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탈군사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경로를 제안한 바 있다.

이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인도, 한국, 이탈리아, 브라질, 호주, 터키, 아랍에미리트, 캐나다의 군비 지출과 이산화탄소 배출을 비교하면서 군축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이를 위해서는 이 국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가 탈군사화를 지향하고 군비를 기후 재정으로 활용하고 녹색 경제와 녹색 일자리를 활성화시키고 모든 핵무기와 핵 발전을 없애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으로부터 모든 권력이 나오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주체라면, 군사, 에너지, 기후, 이 모든 것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면, 그 낫이 향할 곳은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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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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