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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경제 위기론'의 나비효과

(기자의 눈) '정치위기' 피하려 '경제위기' 말할 때는 언제고

입이 무거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 조찬 세미나에 참석해 "외채 문제와 환율 문제는 표리 관계여서 환율상승 압박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여건이 한동안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다른 경제전문가들도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환경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 혹은 통치의 실패까지 정당화시킬만한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경제위기는 정치위기와 표리 관계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더 정확히 말해 청와대가 통치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이상, 경제위기설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며 경제위기설이 잠잠해지지 않는 이상 정치 안정도 난망하다는 건 지난 모든 정부에서 경험한 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경제위기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경제위기설'이 대단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각종 지표와 시스템이 안정되어있다"고 강조했지만 거의 먹히지 않았다.

보수언론의 여론전이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조선일보>는 '경제 먹구름이 몰려온다'(2002년), '경제위기설에 음모론을 덮어씌우지 말라'(2004년), '경제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2005년), '경제는 무사한가'(2006년) 등의 사설을 통해 5년 간 꾸준히 '경제 경고음'을 울렸지만 가시적 위기는 없었다.
▲ ⓒ문화체육관광부

물론 잠재적 위협에 대한 경고도 언론의 역할이긴 하지만, 보수진영의 '경고위기론'에는 정치적 기획의 의도가 짙었다. 한나라당 몫으로 방송위에 입성한 강동순 방송위원이 지난 2006년 11월 한나라당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나눈 얘기가 그 의도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노무현이는 목을 조이고 뭐 (대외)신인도 떨어뜨리고, 뭐 난 괜찮은 얘기 같다"고 말해 동석자가 "그런데 신인도 떨어뜨리면…"이라고 우려했지만, 강 의원은 "아니 좌파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경제위기설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여지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개혁 정책에 저항하기 위해 야당과 재계, 그리고 언론이 위기설을 증폭시킨다'고 불만을 토로한 노 전 대통령의 항변에도 일말의 정당성은 있었던 셈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조변석개

이명박 정부들어, 특히 최근 나도는 경제 위기설에도 정치적 배경이 엿보인다. 그런데 그 전개는 상당히 다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현 정부 출범 이후 경제위기설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리고 옆에서 추임새를 넣은 인물은 이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강부자-고소영' 비난이 극에 달하면서 지지율 폭락이 시작되던 지난 3월 17일 이 대통령은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이런 위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어쩌면 세계 위기가 시작된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처음 열리고 이 대통령에 대한 온라인 탄핵서명이 100만 명을 돌파한 직후인 5월 6일에도 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안고 있지만, 세계 경제환경은 매우 어렵다"고 '위기론'을 이어갔다.

촛불집회가 대규모로 확산되면서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 5월 22일 '1차 대국민 담화'에서도 "바로 이 시점에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선진국에 진입하느냐, 하지 못하느냐하는 그야말로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6월 30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출입기자들에게 "쇠고기와 남북 문제에 가려 경제상황이 주목을 끌지 않지만 지금 경제는 국난(國難)적 상황"이라며 "경제가 위기상황이라고 하면 경제를 앞세워 국민들을 겁준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현재 상황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위기설로 정국을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새어나오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8일 "위기를 위기라고 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의 협력을 얻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맞섰다.

하지만 '위기 시기에 촛불 같은 문제로 한 눈 팔 새가 없다'는 식의 주장은 청와대가 정치사회적으로 공격적 위치를 점하면서 달라졌다. 지난 상반기보다 각종 경제지표가 더 악화된 현 시점에서 청와대는 "경제위기설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짐짓 딴청을 피운다.

그리고 지금의 이런 대응을 '시장을 안정시켜야 하는 최고 정책책임자의 고충'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마치 지난 1997년 외환위기 구원투수로 투입된 임창렬 당시 경제부총리가 IMF구제금융 요청 이틀 전까지 "IMF 도움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공언한 걸 그런 논리로 정당화했던 것처럼.

국민들의 경제심리를 안정시키는 방식은 상황과 국면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스스로 위기감을 조성해 온 청와대와 정부가 지금와서 '걱정 말라'고 외치는 건 매우 부적절한 방식이다. 정부와 권력자의 조변석개에 신뢰만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는 정치위기의 정확한 반영이기도 하다.

정치위기와 경제위기는 동전의 양면

우리 정치사를 돌이켜보면 경제위기와 정치위기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1979년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과 27%의 물가상승을 기록했다. 당시 국회에서는 신민당 김영삼 총재가 제명당하고 부마 민주화운동이 터져 나오는 등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극에 달해 결국 '10.26'으로 이어지는 격변이 전개되고 있었다. 2차 오일쇼크라는 악재같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와 경제위기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1997년도 마찬가지다. '소통령' 김현철 씨가 구속당하면서 재벌기업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불어 닥친 태국 발 외환위기는 IMF 구제금융으로 직결됐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나 다름 없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가 "사실 '경제위기'는 경제적 용어라기보다 정치적 용어이다"면서 "경제위기는 바로 정치위기다"고 한 건 그런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집권세력에 대한 '신뢰'는 대단히 중요한 내부적 요인이 된다.

김 교수는 "외부 환경이 좋지 않아도 정치적 신뢰가 있으면 국민들은 IMF 때처럼 장롱 속 금이라도 내놓는다. 하지만 신뢰가 깨지면 정책을 만들기도 어렵고 집행하기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문제의 핵심을 '신뢰 상실'에 두고 강만수 장관 경질을 요구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드러내놓고 말을 못할 뿐이지 여권에서도 이같은 인식이 팽배하다. 정치 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증폭된 경제 불안이 정치 불안을 증폭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좀처럼 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감 조성의 주역'인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제 와서 '엄정한 법치'와 '감세-규제완화'라는 무기로 이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는 공안정국을 조성해 약자들의 목소리를 뭉게는 한편, 정부 곳간을 털어 대기업과 부유층의 씀씀이를 유도해 냄으로써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처방이다.

시위자에 대한 집단 소송제 도입이나 고가 주택에 대한 재산세 완화가 병렬 추진되는 '갈라치기'를 정책 조합의 원리로 적용하면서 국정의 신뢰 회복과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두마리 토끼가 이 대통령의 품에 저절로 안기기를 바라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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