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회사한테 예쁨 받아서 뭐하게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회사한테 예쁨 받아서 뭐하게요?"

[작은책] 제주 '여미지 식물원'은 회장님 개인 정원?

제주도 중문관광단지. 꽃과 풀이 가득한 3만 4000평 정원에서 강영이 씨(45세)가 혼자 잡초를 캐고 있다. 관람객들이 물어본다.

"왜 혼자 일하세요?"

어떤 사연일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여미지식물원분회장 김연자 씨(46세)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가 노조원들만 다 해고하고 겨우 저희 일곱 명이 남았는데, 우리끼리 붙어 있는 꼴을 못 보네요."

노조원만 해고하고, 계속되는 구조조정으로 114명이던 직원들이 35명만 남은 회사. 이것이 여미지, 제주말로 '가장 아름다운 땅'에서 벌어진 일이다.

▲ 강영이 씨가 혼자 야외정원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여미지식물원'은 2300여 종 식물과 동양 최대 규모의 온실을 갖추고 있다. 1989년 개원 당시에는 삼풍그룹 소유였다. 그러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후 자본은 해체됐다. 삼풍그룹은 피해자 보상차원에서 여미지식물원을 서울시에 기부했고, 1997년에는 서울시시설관리공단(이하 공단)이 운영을 맡았다. 당시 식물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모두 114명.

고용 불안을 느낀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7년 7월 전 조합원 50명이 서울로 올라와 공단을 상대로 파업 투쟁을 했다. 민주당사도 점거했다. 100일 후 비정규직 포함 전 직원 고용승계를 이루어냈다. 이후 해마다 임금·단체 협상을 체결하며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터에서 일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5년 서울시가 부국개발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부국개발은 고용승계 및 노조와의 기존 단협 외에도 모든 계약 관계를 그대로 승계해 노동자들을 안심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2년 뒤인 2007년, 회사는 정리해고 방침을 내놓았다. 영업부 매출이 부진해 미래의 경영상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서울시 소유였을 때는 시설 관리에 많은 투자를 하며 연평균 20억 원의 흑자를 냈는데, 부국개발은 운영 2년 만에 정리해고를 계획한 것이다.

노조는 인건비 10퍼센트 이상 감소에도 불구하고 영업부 매출은 5퍼센트 이상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즉, 경영상 어려움으로 인한 정리해고 사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노조는 회사와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고 싶었다. 영업부 영업 활성화 방안을 회사에 제시하며 합의를 하고 싶었으나 회사는 거부했다. 그리고 2008년 2월, 회사는 조합원만을 상대로 15명을 해고한다. 거의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남상규 회장은 해고 전 직원 개별 면담할 때 '아직까지 결혼도 안 하고 참 희귀하다', '여미지 아니면 갈 데도 없죠?' 등 미혼 여성노동자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이후 부당해고 소송을 냈고 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리고 2010년 8월 복직했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을 엉뚱한 업무로 뿔뿔이 흩어놓았다.

"저희는 1994년부터 영업부에서 스낵, 음료,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복직하자 식물관리보조 업무와 미화 업무로 내보냈죠."

식물원 야외정원을 3명이 관리하고, 2명이 청소하며, 1명은 유람동차를 운전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혼자서 일을 한다.

"처음 잡초 뽑다가 지렁이가 나왔을 때 엄청 놀랐어요. 지금은 개미, 지렁이하고 대화하면서 일해요. 하하하하."

▲ 조합원들이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각자 멀리 떨어져 일하다 모이는 때는 점심 시간이다. 도시락을 싸 와 노조 사무실에 모여 함께 먹는다.

"2009년에 직원 식당이 폐쇄돼서 같이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같이 매일 밥을 먹으니, 우리끼리 관계가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죠."

처음 50명이던 조합원이 지금은 17명만 남았다. 모두 여성이다. 그리고 해고자 김동도, 양창하 씨가 있다. 특히 김동도 씨는 해고만 세 번, 양창하 씨는 두 번 당했다. 김동도 씨는 초대 지부장으로 투쟁 6년 만인 2013년에 위암이 발병했다. 병이 많이 악화돼 지금은 서울을 오가며 투병 중이다.

김 분회장이 식물원 곳곳을 안내해줬다. 야외 정원은 꽃으로 가득해 정말 아름다웠다. 잡초를 뽑고 있는 강영이 씨가 보였다.

"잡초 제거하는 게 시간이 많이 걸려요. 잡초마다 다 달라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해도 두 포대가 나오고 어떤 날은 네 포대 나오기도 하고요. 관리팀 노무 대리가 슬쩍 와서 작업량을 검사하고 가요."

언뜻 보면 일반 식물과 잡초를 구분할 수 없는데, 강 씨가 작업한 곳을 보니 훨씬 더 정돈돼 보기 좋았다.

이어 일본 정원과 한국 정원을 둘러봤다. 일본 정원을 관리하는 조합원은 오늘 휴무라 없다. 한국 정원으로 가는 길에 청소하는 강혜숙 씨(41세)를 만났다.

"화장실 청소할 때 더럽고 냄새나는 게 가장 힘들어요. 그리고 관람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일일이 분리수거 하는 일은 오래 걸리고요."

한국 정원을 둘러봤다. 연못에 연꽃이 가득 피었다. 길을 더 따라가니 비닐하우스가 나왔다. 박정란 씨(42세)가 분재실과 배양실 식물에 물을 주고 있었다. 역시나 혼자다.

"한여름에는 4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요. 그게 가장 힘들죠. 일을 마치면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나는데 샤워 시설이 없어요. 그리고 혼자서 일하니까 대화할 상대가 없는 것도요."

조금 내려오니 왕벚나무길이 나왔다. 봄에는 벚꽃 터널이 생긴다고, 김 분회장이가 설명했다. 때마침 유람동차가 관객들을 태우고 지나갔다. 유람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나수정 씨(45세)다.

"저 혼자서 운행하니까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힘들어요. 관람객들이 계속 저를 찾으니까요. 예전엔 직원 세 명이 함께 일했거든요."

관람객들은 식물원 입구에서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직원이 눈에 띄지 않으니 물어보지도 못한다. 화장실도 멀리 돌아서 공사 중인 관리동 건물을 이용하는 관람객들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 정원과 이탈리아 정원을 지나 습지원에 도착했다. 김 분회장의 잡초 담당 구역이다. 김 분회장은 업무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온몸으로 해내는 일이에요. 단순 반복되니 지루하기도 해요. 그전에는 단순노무가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죠."

습지원 뒤로 넓은 잔디광장이 있고 여미지식물원이 자랑하는 돔 형태의 온실 식물원이 보였다. 온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1300여 종의 다양한 열대·아열대 식물들이 있다.

"여기는 꽃의 정원이에요. 이 베고니아 꽃들은 손길이 많이 필요한 꽃들인데, 지금은 관리가 안 되고 있어요. 직원 두 명이 온실 전부를 관리하니 되겠어요?"

김 분회장은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전망대가 있는 중앙홀 전시도 예전만큼 관리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서울시가 운영했을 때는 직원 임금도 해마다 올랐고, 평화로웠다. 경영면에서도 기반 시설에 2000년에는 17억 원을 투자하고 해마다 흑자 20억 원을 냈다. 그런데 부국개발이 인수하고부터 회사는 많은 것을 축소했다. 조합원들 임금은 9년째 동결이고, 115명이던 직원은 모두 해고해 30여 명이 남았다.

"처음에는 저희도 이렇게 9년이란 시간이 걸릴 줄 몰랐어요. 회사와 잘해 보려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노사협력프로그램도 참여했고요. 그런데 왜 우릴 싫어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 식물원 청소를 하고 있는 강혜숙 씨. ⓒ작은책(정인열)

노조는 긴 세월을 회사와 투쟁 중이다. 매일 선전전을 하고 집회를 해 왔다. 조합원들만 따돌리고 직원들이 회식을 갔어도, 관리자들하고 눈인사조차 하지 않고 현장 직원들에게 홀대당해도, 진급에서 누락돼도 버텼다. 이렇게 버티는 이유는 뭘까. 조합원들은 당차게 말했다.

"회사한테 예쁨 받아서 뭐하게요? 그나마 이렇게 적은 숫자라도 노조가 있으니까 우리한테 함부로 못하는 거에요."

"해고자에 대한 애정이 커요. 그분들을 나 몰라라 하고 우리만 여기서 일할 수는 없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억울하잖아요. 두 분을 꼭 복직시키는 게 저희 목표에요."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왜 우릴 탄압해서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지…."

남 회장 속내가 뭘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식물원을 인수했는지 궁금해서 홈페이지를 살펴봤다.

'사냥꾼의 세계가 빚어내는 갈등과 경쟁을 벗어나 자연과의 만남을 통하여 치유받고 마음의 안식을 되찾는 사유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식물원을 인수했습니다.'

갈등 해결의 열쇠는 남 회장이 쥐고 있다. 민주 노조를 아무리 싫어해도 이렇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 여미지식물원은 남 회장의 개인 정원이 아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작은책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