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 현상)은 예상치 못한 두 개의 변수로 심화되고 있다. 청와대 공천 개입 파문과 '실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의혹이다.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 카드를 꺼냈을 때만 해도, 지금 당장의 혼란을 넘기면, 사드가 실전 배치될 예정인 내년 말 즈음 야당에 대한 안보 공세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전방위적 사정 정국 조성도 박 대통령의 레임덕 방지를 위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상식 수준에서 지적되곤 했다. 두 개의 굵직한 이슈 모두 관리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차기 대선이 있을 2017년 12월을 기준으로 임기 1년 5개월을 남겨둔 현 시점에서, 정권의 연착륙을 위한 프로젝트가 가동된 것으로 보였다.
'연착륙'을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큰 틀에서 두 축이 작동해야 한다. 친박 그룹과 사정 기관이다. 국회 내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소수의 친박 친위 그룹은 그간 무리수를 둬 가면서까지 전당대회 준비를 진행해 왔다. 비박계 비대위 구성을 저지했고, 서청원 의원의 출마를 관철시켜 친박 단일 후보를 만들려 했다. 친박에 적대적인 그룹이 당권을 잡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 축은 이른바 '4대 권력기관'을 위시한 '사정 라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 정점에 우병우 민정수석이 서 있는 것으로 본다. 양날의 칼이긴 하지만, 사정은 매력적인 통치 도구다. 사정 기관을 장악한 이상 정치권 인사들은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다. 대대적인 '거악 척결' 수사로 대외적 신뢰도 회복에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두 축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관리 가능한, 혹은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외생 변수에 의해 촉발된 위기다. 정국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친박 축', '사정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친박계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윤상현 의원의 지난 4.13총선 공천 개입 파문은 청와대까지 번졌다.
19일 새누리당 관계자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서청원 의원과 맞붙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역구를 변경해달라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의 지역구 변경 문제에, 윤상현, 최경환 의원은 물론, 청와대의 박 대통령 직속 참모까지 간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특히 청와대 개입 파문은 8.9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당내 계파 갈등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그간 "공천 관여는 없었다"고 해왔던 해명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친박 당권 주자를 포함, 핵심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계는 김성회 전 의원의 폭로 이면에 모종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공천 개입 파문으로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서청원 의원의 측근 이우현 의원은 윤상현 의원 등의 녹취록 공개 배후에 비박계가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다"며 "지저분하다"고 비난했다.
다른 한 축인 사정 분야도 흔들리고 있다. 사실관계를 떠나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와 넥슨 측의 수상한 관계가 부각되면서, 우 수석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소인 입장이긴 하나, 당장 자신이 지휘하던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대기업 및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듯 보이는 사정 정국의 컨트롤타워가 내상을 입게 됐다는 의미는 꽤 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 등 사정 기관이 정권과 선을 그엇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벌써 레임덕이 왔다는 게 맞느냐", "<조선일보>는 왜 그러느냐"고 기자들에게 묻는 등, 분위기 파악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정 컨트롤타워가 위축됐다는 것은 정치적 반대파들이 활동하기 좋은 시기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박계의 활동 공간도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은 대권 도전을 시사하고 있고, 한때 친박으로 분류되기도 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전당대회 비박계 후보 단일화를 언급하는 등, 선을 긋고 있다.
현대원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의 제자 연구비 빼돌리기 의혹, 이정현 의원의 보도 개입 의혹 등 곳곳에서 권력 누수 현상은 보이고 있다. 대우건설 사장 낙하산 인사 파문에 친박 인사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와중에, 전직 청와대 춘추관장이 공기업 감사에 안착하는 등 민심을 악화시키는 일들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친박이 무너지고 있다. 사정 칼날은 무뎌질 전망이다. 박 대통령에게 어떤 카드가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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