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
개헌 논의와 더불어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 주장이 계속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모두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를 지난 총선 공약으로 내놓았고, 무소속으로 세종시에서 당선한 이해찬 의원은 지난 6월 20일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 등 37명이 참여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도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을 주장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분권 자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찬성했다.
특히 남경필 지사가 가장 적극적이다. 그는 제헌절에 있었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 세종시 분원 설치는 예산만 낭비할 뿐이라 비판하며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길 것을 재차 주창했다. 연간 200억 원에 달하는 세종청사 공무원의 서울 출장비와 국회에 불려 다니느라 발생하는 각종 행정 비효율을 없애야 한다는 것은 세종시 이전의 현실적 이유로 반복된다. 실제로 세종청사에 전화를 하면 "국회에 보고하러 갔다"며 자리를 비운 공무원이 한둘이 아니다. 낭비가 과다하고 일을 못할 정도라면 국회를 옮기긴 해야 할 듯하다.
그런데 국회에는 공무원만 오는가? 상임위원회가 열릴 때, 국회에 공무원이 넘쳐 나는 것은 사실이다. 예산이나 법안을 설명하기 위해 본청과 의원회관 곳곳에 공무원이 줄을 지어 다닌다. 그렇지만 공무원말고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로 국회를 찾는다. 관광버스를 대절해 국회 구경 온 지역구 유권자도 있고, 견학과 방청을 위해 찾아 온 학생들도 많다.
국회 정문 앞과 그 주변은 수많은 1인 시위자들과 집회 참여자(기자회견 참석자)들로 늘 북적인다. 그냥 잔디밭을 거닐고 국회 본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는 이들도 빼 놓을 수 없다. 의원회관, 국회도서관, 헌정기념관 등에선 일주일에 수십 개씩의 세미나, 토론회, 강연회가 열린다.
포스터를 붙이는 의원회관 게시판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고, 세미나실과 소회의실 예약도 쉽지 않다. 의원실과 의원 연구 단체, 정당이 개최하는 토론회의 주제와 구성은 결코 얕볼 수 없는 수준이다. 요즘 시민 단체나 학술 연구 단체가 주최하는 토론회에 중앙 부처 국장, 과장이나 국회의원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다. 의원회관 토론회는 다르다. 전문가, 공무원, 시민 단체 활동가와 이해관계자, 국회의원이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회는 참가비도 없고, 누구에게나 공개된 것들이다. 훌륭한 '정보 교류의 장'이고 '시민 교육의 장'인 셈이다. 여기에 참석해 보면 주요 경제 정책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현안이 어떻게 처리될지, 각종 규제들이 어떻게 변화될 지 예상해 볼 수 있다. 만약 일주일 동안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세미나와 토론회만 돌아다녀도 엄청난 정보를 얻게 된다.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미국에서 한 적이 있다. 워싱턴 DC의 엘(L) 스트리트에 모여 있는 많은 싱크 탱크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는 이들이 모여 세미나와 토론, 강연을 한다. 우리나라처럼 제본된 자료집을 제공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브루킹스연구소처럼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곳은 사후 녹취 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나는 대학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수업보다 세미나가 몇 배 더 유익했다. 워낙 세미나가 많이 열려서 세미나 일정을 정리해 유료로 서비스 제공하는 단체가 있을 정도였다. 주로 낮에 열리는 세미나들이었지만 싱크 탱크들이 대체로 모여 있었기에 관련 분야 연구자, 기자, 의원 보좌진이 모였다. 물론 일반 시민도 얼마든지 참석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었고, '회전문'을 돌아 자리를 옮겨 갈 이들이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토론회 내용과 위상, 횟수를 두고 본다면 대한민국 국회 의원회관이 워싱턴 DC 엘 스트리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토론회 현장 분위기는 솔직히 많이 다르다. 낮에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토론회에까지 직접 참석할 수 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관련 분야 전문가라 하더라도 어떤 토론회가 열리는지 알기 어렵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이미 열렸던 세미나 자료집을 일부 다운로드 받을 수 있지만 의원회관에서 개최되는 세미나 일정을 전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국회사무처 홈페이지에서도 의원실 세미나 안내는 이뤄지지 않는다. 개별 의원실 홈페이지나 의원회관 게시판을 직접 확인하거나 의원실 메일링리스트에 등록되어 보도 자료를 받는 수가 있을 정도다.
국회 정문에서 의원회관 입구를 거치는 동안 '안내'보다 '검문'에 가까운 대우를 받기 일쑤여서 다시 오기가 싫다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관계 기관장이 보낸 축하 화환이 일반 청중보다 많은 경우가 드물지 않다. 특정 이해 관계 집단이나 지역구 유권자가 단체로 방청하는 경우에는 청중 사정이 그나마 낫다. 물리적 접근성이 결코 나쁘지 않음에도 심리적 접근성은 여간 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의도에서 사정이 이러할진대 세종시로 국회가 옮겨 간다면 의원실 주최 토론회는 사실상 영상으로만 접하게 될 것이다. 세종시가 아무리 국토 가운데라 하더라도 서울 여의도보다 접근하기 쉬울 수 없다. '접근'만이 아니라 '개방'은 더 문제다. 안 그래도 어려운 상임위원회 방청은 정말 제대로 마음먹어야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지금도 상임위원회, 특히 소위원회 방청은 지나치게 어렵다. 작년(2015년) 11월 참여연대는 '열려라 국회, 통하라 정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민 방청단 활동을 진행했다. 전체 회의는 모두 방청이 허가되었으나 소위원회는 16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보건복지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만 허가되었다. 불허 이유가 '방청석 부족'인 상임위원회도 5개나 되었고, 10개 상임위는 소개 의원 제도를 운영해 일반 시민의 방청을 제한했다.
영국 의회가 선착순으로 위원회 회의를 방청할 수 있도록 하고, 독일 의회가 온라인 사전 예약으로 본회의 방청을 가능케 한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민의를 전달하는 중요 수단인 집회와 시위는 국회 앞 100미터 내에선 불가능하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볼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거리에서" 집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집시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세종시로 옮겨 가면 국회 앞 집회는 지금만큼도 보이지 않을 것이 뻔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앞 다투어 국회 세종시 이전을 주장하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세종청사 공무원이 서울을 오가며 거리에 쏟아 붓는 시간과 비용 또한 분명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보통 국민에게 국회가 너무 멀고, 여전히 높다는 사실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 게 우선 아닌가라고.
공무원과 기관 대관 업무자로 가득 찬 본청 상임위원회 앞 복도를 지나면서, 동원된 청중만 있거나 방청객이 없어 휑한 의원회관 세미나실을 보면서, 의회 담벼락 앞에서 기자회견 형식을 빌리거나 1인 시위 아니면 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이들 곁을 지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력한 정치인들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자'고 외칠 뿐 국민에게 '열자'는 소리는 거의 내지 않고 있다. 국회가 설령 세종시로 옮기더라도 여전히 담은 높고, 벽이 두껍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국회 세종시 이전 논의가 유감(遺憾)인 이유다.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기에 앞서 국민에게 제대로 '개방'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마땅하다. 그게 더 급하고, 그게 더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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