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이 결국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노선 갈등'을 촉발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이후 침잠했던 당내 의견 대립이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을 따르는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현역 의원 17명은 연명으로 사드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차기 당권 주자들이 잇달아 사드 반대 입장을 밝힌 데 이어서다. 게다가 이날 오전 당의 최대 주주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격랑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관련 기사 : 문재인 초강수…"사드 재검토, SOFA 개정 검토")
민평련 소속 기동민, 김민기, 김영진, 김한정, 김현권, 설훈, 소병훈, 심재권, 오영훈, 우원식, 위성곤, 유승희, 유은혜, 이인영, 인재근, 홍의락, 홍익표 의원과 노영민, 유기홍, 이목희, 이호웅, 장영달, 최규성 전 의원은 13일 오전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협력을 위협하는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제목의 공동 성명서를 냈다.
민평련 의원들은 "사드 배치는 남북관계 악화는 물론,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조 약화 및 동북아 지역의 군비 경쟁 등을 초래함으로써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은 사드 배치를 이유로 자신들의 핵 개발 및 장거리 로켓 실험을 정당화시키며, 군사력 강화에 주력하면서 추가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를 약화시키고 유엔 제재 조치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소극적 또는 비협조적 자세를 취한다면 이는 사드 배치에 따른 안보적 이익보다 실이 더 크다"는 지적도 했다.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관계 개선 그리고 한국 경제와 한중관계 발전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사드 배치는 잘못된 결정이며, 정부는 원점에서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사드 배치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그 효용성 등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아울러 "사드 배치의 타당성과 결정 과정의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해 국회 청문회 개최를 요구한다"며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정기국회 예산 편성에서 사드 관련 예산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명서 발표 후 설훈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가 반대 입장을 막는 것 같은데, 대외적으로 당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의총이 가장 합리적 과정이 될 것이다. 의총을 열어야 한다"고 당에 요구했다. 설 의원은 "우리는 국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한 기자가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비준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설 의원은 "그건 잘 모르겠고, 우리는 비준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재강조하기도 했다.
차기 더민주 대표를 뽑는 8.27 전당대회 출마자들도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추미애 의원이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을 즉각 재검토해야 한다"고 한 데 이어, 송영길 의원은 이날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것(사드 배치 결정)은 우리 국가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굴복해서 되었기 때문에 된 게 아닌가"라고 했다.
송 의원은 "사드가 배치되면 사드에 대한 통제권은 전부 미군이 갖는 것이고, 우리 대한민국이 국익에 따라 이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권한도 전혀 없다"면서 "저희가 제1야당이니까 정부 입장을 존중한다는 분위기가 일부 있는 거 같은데, 제가 생각할 때는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인 더민주의 '김종인 지도부'는 당 내외로부터의 2중 압력에 직면한 모양새다. 전날 진행된 당 소속 의원 간담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밖에서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흉상과 영정을 모시고 있다면 사드에 반대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관련 기사 : 국민의당, 더민주에 '사드 공세' 강화)
그러나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이날 오전 비대위 회의 공개 발언에서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그는 전날 <한겨레>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덕에 가능했다"며 "미군이 (사드를) 가져다 놓겠다고 결정하고 (우리 정부와) 협의해 놓았다. 우리가 찬성이냐 반대냐 따져야 할 차원을 넘어서 버렸다"고 했었다.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는 전날 의원 간담회에서의 논의 결과가 전달됐지만, 김 대표는 '사드 배치 반대는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재경 더민주 대변인은 비대위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논의 결과 비대위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대책 마련을 위해 원내에 기구를 설치하고, 국회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한 절차를 밟기로 했다"며 "(우상호) 원내대표가 이를 책임 있게 이끌어갈 것"이라고만 했다.
이 대변인은 "별도 설치되는 '원내 기구'에서 당론이 결정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 문제는 추후에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졸속 결정했다고 해서 우리 당도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입장을 결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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