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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비닐 천막 하나로 버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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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비닐 천막 하나로 버티고 있을까?

[기고] 동양시멘트, 알고 기억하기

삼표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의 이마빌딩 앞에는 동양시멘트 해고 노동자의 노숙 농성이 진행 중이다. 노동자들은 뙤약볕이 내리쬐다가도 비가 쏟아지는 변덕스러운 요즘 날씨를 비닐 천막 하나로 버티고 있다. 동양시멘트의 부당 해고 이후 벌써 500일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사건의 경위를 정리해 본다.

동양시멘트 공장은 24시간 내내 가동되었다. 형식적으로는 4조 3교대 근무로 1일 8시간씩만 일하면 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1일 16시간 근무가 일반적이었다. 1일 24시간을 연속으로 근무하기도, 잔업만 월 200시간을 채우기도 했다. 잔업을 거부하려 해도 그 만큼 임금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가 시키는 만큼 일을 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하여 밤 12시까지 일하고 다시 다음날 아침 7시 40분까지 출근하는 것이 16시간 근무다.

노동 시간뿐 아니라 노동 환경도 문제였다. 한밤중에 산 속에서 중장비를 운전하고, 인공적으로 깎은 절벽 아래에서 아슬아슬하게 작업을 하는데도 안전을 위한 어떤 대비책도 없었다. 게다가 형식적으로 동양시멘트의 하청 업체 소속이었던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그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이 이런 부당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자신들이 하청 노동자가 아니라 동양시멘트의 노동자라는 것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고 고용노동부는 위장 도급을 인정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과를 통보받은 동양시멘트는 즉시 하청 업체와 도급 계약을 해지했고, 하청 업체는 소속 노동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근로 조건 개선으로 가는 첫 단추를 끼우기도 전에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게 된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위 해고를 부당 노동 행위 및 부당 해고라고 판정했지만 동양시멘트는 이행 강제금만 내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소송을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는 노동자들과 교섭하는 대신에 조합 탈퇴를 조건으로 일정 기간 고용할 것을 제안하며 노동자들을 회유했고,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탈퇴하게 되었다. 동양시멘트는 노동조합의 단체 행동에 대하여 16억 원에 달하는 손해의 배상을 노동자에게 청구했고, 법원은 그 가압류 신청을 인용해주었다. 회사와 노동자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을 때 검찰은 노동자들만을 기소했고, 법원은 노동조합 탈퇴자들에게는 집행 유예를, 나머지 노동자에게는 실형을 선고했다.

결국 고용노동부의 직무 유기, 회사의 불법 행위 및 그에 대한 법원과 검찰의 방조가 맞물려 결코 용인할 수 없는 현재의 사태를 만든 것이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당함을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밝힌다.

▲ 석회석 광산.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

그런데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부당 해고를 당한 지 500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단지 투쟁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투쟁은 장기화되었고,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러하듯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타협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언론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회사와 정부는 더욱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더욱 힘이 빠질 것이다. 83명의 조합원 중 현재 23명만이 남아있다. 그들은 고소 고발과 구속을 두려워하고 막막한 생계를 걱정하며 가족들과의 갈등에 가슴 아파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이에 동양시멘트 투쟁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요구한다. 모든 것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현재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일 것이다.

오는 7월9일(토)~7월10일(일)에는 500일 동안 투쟁하고 있는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해변 가족 캠프'가 삼척에서 열린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힘차게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가족 캠프이다. 우리가 함께 싸우고 있고, 노동자들과 손잡고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캠프에 참여하여 알릴 수 있길 바란다.

장기 투쟁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하이디스, 콜트콜택의 해고자들은 이미 함께 하고 있다. 투쟁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꾸준히 목소리를 낼 것이니, 그 목소리를 들으면 된다. 잘 들리지는 않겠지만 찾아서 듣는 수고 정도는 감수하기를 바란다.

알고, 기억하고, 연대함으로써 이대로 장기투쟁의 늪에 빠질 수 있는 동양시멘트 사태가 조금이나마 일찍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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