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0년부터 중-조 국경 지역을 다니면서 수없이 북한 식당에 갔고, 그곳에서 다양한 남북 만남을 목격하였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화는 남북 젊은이 사이의 전화 통화이다.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2013년 나는 '압록강에 발 담그고 과일을 먹자'라는 모토로 지인과 함께 중-조 국경을 여행했다. 마지막 날, 다롄(대련) 공항에서 일행 가운데 한사람이 북한식 냉면을 먹으면서 북한 여성 종업원과 함께 손잡고 합창을 했던 중국 단둥의 북한 식당에 전화를 했다.
"그냥 궁금했습니다. 북한 식당에 전화를 하면 너무나 노래를 잘하던 그 여성 종업원과 통화가 가능한지. 그런데 너무나 쉽게 바꾸어 주더군요. 그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프지도 말고 늙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그래서 저도 그러자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화 내용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해 그는 단둥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 눈인사를 나누었지만 거기까지였다. 1년 뒤, 나는 그에게 그녀가 북한으로 돌아가자마자 시집을 갔고 딸을 낳았다고 전해주었다.
이와 같이 북한 식당에서의 남북의 만남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중국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은 남북의 특별한 만남에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긴장한 마음으로 북한 식당에 간다.
어떤 손님은 처음 기대와는 다른 차가운 여종업원의 태도에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넉살 좋은 한국 사람은 그곳에서 대접을 받기도 한다. 가이드의 상술에 메뉴판보다 비싸게 음식을 먹기도 하고, 한국 소주 가격에 익숙한 그들은 "술값이 비싸다"고 말한다. "원래 중국에서 음식 값보다 술값이 더 많이 나온다"는 현지인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냥 기대했던 냉면이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다"라고 이구동성 이야기하면, 나는 "사실 대부분 북한 식당 요리사는 중국 사람이다"라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한다. 북한 여종업원의 공연을 보고 나서도, 한국 사람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린다.
북한 종업원이 일하는 식당은 북한 식당이자 중국 식당
이처럼 중국의 북한 식당은 한국 사람에게 그 동안 민간 차원의 남북 만남을 통해서 애증을 확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 정부는 2016년 대북 제재의 연장선상에서 이런 북한 식당을 주목했고, 한국 언론은 대북 제재 효과가 어떻게 북한 식당의 영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개성공단에 이어 북한 식당도 또 하나의 휴전선이 되기를 희망하는 모양새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해외 식당 130여 개를 운영해 연 평균 1000만 달러(약 135억 원) 정도를 상납받고 있다며 현재 절반 이상의 식당이 상납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 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2016년 4월 10일)
"정부가 해외 북한 식당의 이용 자제를 권고한 후, 북한 식당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중국 동북 3성의 북한 식당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습니다. 10곳 중 1곳이 폐업했고 다른 식당들도 손님들이 급감했다고 합니다. (…) 단둥의 북한 식당 15곳 중 이곳을 포함해 3곳이 폐업했습니다. (…)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 국면 속에 현지인과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KBS <뉴스 9>
2016년 대북 제재 이후, 나는 단둥에 네 번 다녀왔다. 북한 식당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단둥의 북한 식당 현황과 너무나 다름에 당황스럽다. 북한 식당과 관련되어 한국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가 모르고 있고 놓치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있다.
한국 언론이 겨울철에 문 닫은 모습을 취재하면서 폐업을 했다고 보도하던 K 식당은 단둥이 여행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H 식당은 중국 손님으로 가득했고, 어림잡아 1000여 명의 손님이 식사를 하면서 북한 여종업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단둥 북한 식당의 규모는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 약 15개가 아니다. 북한 여성 종업원이 일하는 약 25개의 식당이 있고, 손님의 대부분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중국 사람이다. 주 요리는 중국 요리이고 북한 요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그들은 보통 한국 사람보다 몇 배의 요리와 술을 주문한다. 때문에 매출에서 한국 손님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다. 최소한 단둥에서 한국 손님이 가지 않으면 북한 식당이 망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수다.
북한 여성 종업원이 근무하고 1000여 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두 개의 식당 가운데 하나는 북한 식당이 아닌 북한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 식당으로 명성이 높다. A 호텔은 중국 사람이 사장이지만 식당과 조식 서빙은 북한 여성 종업원이 담당한다. 이처럼 북한 식당은 중국 자본과 북한 노동력이 결합된 형태가 주를 이룬다. 단둥 사람은 "북한 식당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중국 식당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와 똑같다"라는 말을 한다.
남북 만남의 공간을 하나 더 잃는다는 의미는?
2016년 단둥 북한 식당의 현주소는 대북 제재의 효과가 미치지 않고 있고, 미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북한 식당을 만남의 공간에서 또 하나의 휴전선으로 만들면서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나는 간판이 사라진 식당을 찍은 뒤, 100여 미터를 걸어서 똑같은 식당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 식당 앞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북한 식당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나에게 조선족 A는 한마디 한다.
"단둥과 신의주 사람들은 압록강의 물을 함께 마시고 살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중국과 거의 붙어있는 황금평의 북한 주민과는 서로 농사철 품앗이도 하였다. 그러니까 이웃 동네가 아닌 한 동네 사람처럼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20년 전부터는 단둥의 한국 사람도 이런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왔는데, 2010년 5.24 조치와 이번 2016년 대북 제재 조치 때문에 그들만 힘드네! 한국 사람이 북한 식당에 가지 않는다고 변하는 것은 없을 것 같은데!"
그에게 할 말이 없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나는 휴전선이 아닌 공유의 성격이 강한 중-조 국경 지역, 압록강에서 또 하나의 국경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살고 있다. 떠나기 전, 나는 단둥역에 위치한 2016년 초 개업한 선물 가게 안의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한국 맛"을 강조하는 찰떡은 "NORTH KOREA TASTE"와 "朝鮮(조선)"의 글자가 선명한 쇼핑백에 담겨 있었다.
단순 실수라고 치부하기에는 국경을 구분하지 않는 단둥의 문화가 그대로 녹아있다. "과연 이 지역에서의 국경은 무슨 의미일까?"를 고민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주변은 평양행 국제 열차를 타기 위한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으로 붐비고 있다. 그 중에는 서양의 젊은이도 보였다. 한국 국적인 나만 평양행 국제 열차를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글의 일부는 (사)어린이어깨동무의 <피스레터> 창간 준비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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