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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정치 혐오'가 낳은 보좌진 '마녀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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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정치 혐오'가 낳은 보좌진 '마녀 사냥'

[기자의 눈] 누가, 왜, 정치혐오를 부추기는가?

국회의원들의 보좌진 친인척 채용 문제가 일파만파다. <TV조선>이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딸 인턴 채용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후, 이슈가 확산되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지난 28일 "친인척 채용 금지"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힌 게 화근이었다. 서영교 의원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딸에 대한 특혜 의혹에 집중이 됐었다. 그러나 이를 "친인척 채용이 문제"라는 식으로 몰고간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그러자 유탄을 맞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친인척 채용 사실이 하루가 다르게 드러나고 이들은 순식간에 목이 잘렸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실이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20일에서 29일까지 24명의 보좌진이 무더기로 날아갔다.

국민의당은 "우리 당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 그런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8촌 이내 친인척 채용 등이 법적 기준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속 의원 중 한 명이 형수의 동생을 채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8촌이나, 사돈이나,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민 눈높이'라고 하면 문제가 되는 게 현 상황이다. 해당 의원은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에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면직처리를 하겠다고 했다. 해명도 충실히 실었다. 국민의당이 "우리 당은 (다른 당과 달리) 친인척 채용이 없다"는 말을 통해 양당을 싸잡아 비판하는 행태가 없었다면, 이런 사실이 알려질 길도 없었을 것이다.

이른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문제이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야말로 무차별적이다.

화면 갈무리


주로 보수 언론이 이미지화 하는 '일 안하고, 세금 축내고, 친인척 고용하고, 정부와 기업에 갑질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이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정치적 우월성을 얻고, 유권자의 정치 혐오를 부추겨 부수를 늘리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세금 도둑'이 된다. 이는 국회의원을 줄이자는 과격한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회의원 1명 당 드는 비용이 7억 원에 육박한다는 내용을 대문짝 만하게 싣는다. 1년에 7억 원 들여서 100억 원의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1년에 7억 자체가 문제인가?

2006년 8월 29일자 <조선일보>에 길이 남을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권기재 전 청와대 행정관이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선정 개입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이 신문은 권 행정관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이 "본지 취재 결과 같은 고향마을의 20촌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1면에 보도했다. 단지 20촌 관계라는 것만으로 신문 1면을 차지할 수 있다면, 지금 국회는 같은 성씨를 모조리 조사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

이 광풍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치 혐오다. 국민의당 A 의원의 보좌진이 친인척이라는 제보가 들어와 확인해보니, 이미 20년 간 국회에서 활동해 왔던, 전문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비서였다. A 의원이 국회의원이 아닌 시절에도 보좌했던 '의리파'였다고 한다. 새누리당의 B 의원은 서영교 의원 논란이 있는 와중에 최근 친인척 7급 비서를 면직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 사실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 비서가 의원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알지만 몇 촌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해당 의원은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안호영 의원실 비서관 안 모 씨는 억울한 케이스다. 그는 안 의원과 6촌지간이지만, 정당을 넘나들며 전문성을 인정받아 사실상 전문 보좌진으로 활동해왔던 인사였다. '노크 귀순'을 밝혀내 군의 안보 태세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는 보좌진의 월급, 국회의원의 월급 등으로 수치화해 비교할 수 없는 성과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년간 검증받은 능력과 경력을, 특정 의원과 '특수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날려버릴지 않을까 불안에 떨면서 일하는 보좌진도 있을 것이다. A 국회의원 보좌진의 경우도 그럴 것이다.

2008년 한 언론은 박선숙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의 조카 채용을 '이색 경력'으로 소개했다. 조카가 수행비서를 하니, 심적으로 편하고, 여러 이점이 있더라는 인터뷰 내용도 실렸다. 당시에는 '미담'이었던 상황이 지금은 '부덕'한 것이 돼 버렸다. 보좌진 친인척 채용은 사례별로 다양하다. 서영교 의원의 경우 명백히 부당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경우도 많다. 보다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오히려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의 보좌관 월급 상납과 같은 경우를 더 주시해야 한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 역시 월급을 돌려받는 방식의 '정치 자금 확보'를 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인척은 내부고발자가 되지 않는다. 실제 보좌관 직을 걸어놓은 인사가 일을 하지 않고 있어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경우는 왕왕 있어왔다.

지금 20대 국회는 경쟁적으로 '특권 내려놓기 경쟁'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당도,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선명성 경쟁'은 국회의 제살 깎아먹기다. '마녀사냥'은 정치권이 시작했지만, 언론이 부추긴 측면이 있다. 일을 잘 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유권자의 의무다. 이는 특권과 구분돼야 한다. 일도 안하는 데 월급만 축낸다? 하지 말라는 일까지 너무 열심히 해서 문제가 됐던 대통령도 있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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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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