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 투표 결정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져 있다. 43년 만의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한 영국 국민 '정치적 결정'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들은 왜 예상되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선택'을 했을까? 영국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김보영 영남대학교 교수가 현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단초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가 종료된 23일 오후 10시, 유럽연합 잔류가 우세하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듣고 잠든 영국은 다음 날 아침에 다소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 들었다. 투표자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어제 조사에서 잔류가 52%, 탈퇴가 48%로 나왔지만 오늘 아침 공식 결과는 오히려 탈퇴 52%, 잔류 48%. 정반대로 뒤집어진 것이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전날 여론 조사 발표 후부터 치솟기 시작한 파운드화는 투표함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폭락을 시작했다. 잔류가 상당히 우세할 것이라고 생각한 뉴캐슬(Newcastle)에서는 잔류가 겨우 앞섰고, 탈퇴가 다소 우세할 것이라고 전망된 선더랜드(Sunderland)에서는 탈퇴가 크게 앞섰다. 분위기는 급반전 됐고,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사실 탈퇴와 잔류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여론 조사를 보면서도 탈퇴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았다. 잔류 진영이나 탈퇴 진영이나 이것이 영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방향이라고 주장했지만 탈퇴의 경우 적어도 일시적인 경제적 타격은 피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제와 안보 불안 경고에도 브렉시트 결정한 영국 국민
영국 정부는 물론이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주요 동맹국 지도자들, 국제통화기금(IMF)부터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 등 주요 경제 기구와 기관들 모두 그렇게 진단했고, 심지어 마지막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수장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안보에도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이번 국민 투표는 '감성적으로는 탈퇴', '이성적으로는 잔류'라는 분위기가 많았다. 반이민 정서가 높다고 하더라도 보다 분명해 보이는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영국 국민은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그것도 최근 여느 선거보다도 높은 투표율을 보이면서 말이다. 사실 투표 당일 보여지는 높은 투표 열기는 잔류 쪽에 유리한 듯 보였었다. 탈퇴일수록 고령이고 적극적 투표 의사층이었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을수록 잔류 쪽이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것이다.
왜 영국 국민은 경제적 불안, 안보 불안을 감내하면서도 탈퇴를 선택했을까. 그 답은 이 결과에 최대 수혜자로 부상한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 나이젤 패라지(Nigel Farage) 대표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유럽연합 탈퇴가 공식 발표된 직후 의회 앞에서 "영국의 주류 정당은 그동안 이민자들로 인해 병원 약속이 밀리고, 학교에 자리가 없고, 소득이 떨어지는 대중들의 고통을 외면했다"고 일갈했다.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물론 그 발언에서 결정적으로 틀린 한가지가 있다. 대중들의 고통의 원인은 이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가 무상으로 운영하는 영국 병원이, 지방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가 어려워지는 것은 현 정부의 극심한 긴축 재정에 원인이 크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민자는 그렇게 세금 혜택을 받는 것보다 그들이 내는 세금이 더 많다는 것이 여러 통계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또 이민자가 임금에 주는 영향도 최저 임금 수준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여러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 집권 보수당은 바로 그 긴축 재정을 하고 있고, 현 야당인 노동당은 이전 집권 끝에 긴축 재정으로 이어진 경제 위기를 촉발하였을 뿐 아니라 어떻게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국민 투표 캠페인 중에 양 진영이 모두 공통되게 듣는 말 중 하나는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 주류 정당들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영국 국민들은 터져 나오는 경제적 위험에 대한 주류의 경고보다 차라리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전 총선들보다도 높은 투표율은 주류 정당 중 선택을 하게 되는 기존 선거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민심까지 드러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주류 정치가 수용 못한 불만이 반이민 정서로 표출
하지만 기존 정치가 이들을 외면하는 동안 그 분노는 이민자와 같은 엉뚱한 희생양으로 향하고 있다. 이번 결과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번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최근 미국의 트럼프를 비롯하여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극우 정치와 맞닿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어떻게 이를 풀어가야하는지에 대한 함의도 없지는 않다. 사실 탈퇴 진영이 이번 선거 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내세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의 국가 무상 의료인 NHS를 살리자는 것이었다. 매년 납부하는 엄청난 유럽연합 분담금을 NHS에 사용해서 더 나은 복지를 만들자는 것이 TV 광고에도 쏟아지고 선거 운동 버스 전면에 인쇄된 메시지였다.
물론 분담금 절반 이상은 돌려받거나 어차피 국내에 지원되는 돈이고, 탈퇴를 해도 단일 유럽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분담금 지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결국 말이 안되는 것이었지만 탈퇴 진영의 공통된 주장은 세계화로 인해 악화된 일자리와 복지를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서구 복지 국가의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대공황과 세계 대전을 경험한 서구는 무너진 경제와 불안정한 삶을 모두 되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복지 국가를 건설하였고, 황금기를 누렸었다. 하지만 세계화된 경제에서 지속성에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
서구 복지 국가가 또다시 직면한 애초의 질문
하지만 이제 다시 서구 사회는 세계화된 경제 아래 불안정한 경제와 무너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대안을 요구 받고 있다. 새로운 복지 국가와 같은 대안을 찾지 못하는 한 지금과 같은 극우의 부상으로 더 불안해진 세계는 그 대가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 동안 고속 성장으로 사회를 유지해왔지만 저성장 아래 각종 극단화되어가는 사회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질문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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