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와대 분위기를 두고 나오는 지적이다. 하긴 그런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취임 전후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하고 굵직한 대국민 메시지를 쏟아냈었다. 초등생 납치사건이 나자 직접 일선 경찰서로 달려가 경찰서장을 질타하기까지 했었다.
현안이 있는 자리에는 항상 대통령이 직접 달려갔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제대통령'은 하다못해 "하루에 통행량이 220대뿐인 톨게이트도 있다"는 지적까지 잊지 않을 만큼 꼼꼼했고, 부작용을 우려해야 할 만큼 지나치게 부지런했다.
MB가 사라졌다?
그런 이 대통령이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공식일정을 최소화한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공식일정이 있더라도 모두발언은 생략하거나, 아예 기자들에게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가 사후에 대변인이 대신 전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모두 '촛불정국' 이후 달라진 점들이다.그의 '말'이 대통령 당선이후 지금까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오히려 촛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었다. 이 대통령이 '직접소통'에 능한 달변가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도 새삼스러울 게 없는 얘기다. '사과'를 앞세워야 할 대국민담회에선 '괴담'이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후 시정연설에서는 '정보전염병'이라는 직설적인 비난까지 퍼부었다. 당연히 반발은 더욱 거세게 일었다.
그의 '눌변' 역시 대통령으로서는 약점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기 청와대 참모진들을 이 대통령이 직접 소개했던 한달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이 대통령은 당시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3차례 걸쳐 '비서실장'이라고 불렀었다.
강윤구 사회정책 수석을 두고는 '사회교육과학 수석', '사회과학 수석', 정진곤 교육과학문화 수석에게는 '사회교육 수석', '교육과학 수석'이라고 몇 차례에 걸쳐 잘못된 직함을 사용했다. 말 끝을 불분명하게 얼버무리는 습관도 여전했다. 당시 대통령의 이러한 모습은 TV 생중계를 통해 고스란히 전국의 안방까지 전해졌다.
그래서일까. 이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은 부쩍 줄었다. 일부분이라도 언론에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되는 행사는 일주일에 1~2번에 그친다.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다.
이어지는 대통령의 '침묵'…'신중함'이냐 '꼼수'냐
일각에서는 이런 침묵을 두고 "대통령이 신중해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은 바로 대통령의 '침묵'이 갖는 성격 때문이다.
대통령의 직접적인 대국민 소통시도는 확실히 줄었다. 그러나 대신 '이명박식 정책'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청와대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최근 "8월 중 공기업 선진화의 방향과 원칙이 나올 것으로 본다"면서 민영화의 불씨를 되살리고 나선 게 단적인 예다. 여권 내에서 상대적으로 신중한 편인 박재완 수석마저 '돌격대'로 변신한 모양새다. 9월 중에는 관련법안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또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당정은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 각 부처별로 공론화과정을 거쳐 '기관별 선진화 실행계획'을 수립해 추진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산하에 '공기업 선진화추진 특별위원회'를 설치키로 했다. 각 공기업의 상황과 경영상태에 따라 민영화-통폐합-기능 재조정-경영 선진화 등 4가지 방안을 정해 이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8~9월이 '민영화 정국'이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은 그래서 나온다.
한 청와대 참모는 기자들과 만나 "지난 주 워크숍에서 이 대통령의 모습이 많이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에게서 '확신' 같은 것이 읽혔다"고 말했다.
비서관급 이상을 대상으로 한 당시 워크숍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가 왜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어떤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는지 '초심'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하기도 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단 '침묵모드'를 유지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이명박식 정책추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침묵에서 '신중함' 대신 막무가내식 '돌격 앞으로'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솔직해지지 못할 바에는…그냥 쉬시라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조만간 닷새 일정으로 떠날 예정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휴가를 사흘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통령 본인도 최근 참모들에게 "지금 국민 모두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내가 한가하게 휴가를 가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독도 파문 등의 외교적 난제, 고유가-물가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최악의 경제여건 등이 아무래도 눈에 밟히는 모양이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게 몸에 밴 '경제대통령'으로서는 그럴 만도 하겠다.
하지만 휴가를 줄이면서까지 이런 표리부동한 '침묵모드'를 이어갈 바에는 차라리 머리를 비우고 일주일 정도라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무작정', '열심히', '오래' 일하는 것과 일을 '잘'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엉덩이가 들썩거려 도저히 안되겠다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속내를 솔직하게 국민들 앞에 내 보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소통'을 시도하길 바란다. 그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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