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주가 옳았던 걸까.
롯데그룹 비리가 지난 10여 년간 활발하게 진행된 기업 인수합병(M&A)과 긴밀히 엮여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M&A의 귀재', '금융통' 등으로 불렸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 때문이다. 신 회장이 주도한 중국 투자에 숨어 있던 뇌관들이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지난해 신동주 전 일본 롯데 홀딩스 부회장이 폭로했던 내용과 맞물려 있다. 당시 신 전 부회장은 동생인 신 회장이 주도한 중국 투자의 손실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했었다. 신 회장의 경영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의 근거였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0년 중국 홈쇼핑 업체 '럭키파이'(Luckypai) 인수 사례가 거론된다. 당시 롯데는, 롯데홈쇼핑코(Lotte Home Shopping Co. LHSC)라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럭키파이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약 1700억 원이었다. LHSC는 대표적인 조세 회피 지역인 케이맨제도에서 설립됐다.
그런데 LHSC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1643억 원이었다. 지난 1년 동안의 손실 규모가, 럭키파이 인수 가격과 맞먹는다.
1700억 원 가운데 1208억 원이 영업권
이런 회사를 왜 인수했을까. 인수 당시에도, 럭키파이는 적자 기업이었다. 그런데 롯데 측은 1700억 원을 들여 회사 지분을 사들였다. 이 가운데 1208억 원이 '영업권'으로 잡혔다. 영업권이란, 일종의 권리금 개념이다. 자산 가치와 인수 가격 사이의 차이인데, 인수하는 측이 얹어주는 '웃돈'인 셈이다.
첨단 기술기업 등을 인수할 때, 영업권을 높게 쳐주는 경우가 있다. 유형 자산은 적지만,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1700억 원짜리 회사를 인수하면서 영업권을 1208억 원으로 잡았다면, 회사를 인수한 측이 성장 잠재력을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럭키파이는 천문학적인 영업권에 걸맞은 성장을 했나. 아니다. 롯데가 인수한 뒤에도 계속 적자였다. 원천기술 등 잠재력이 있는 무형 자산을 보유한 회사라고도 볼 수 없다. 그냥 홈쇼핑 업체일 뿐이다. 심지어 롯데는 경영권조차 행사하지 않는다. 롯데 측은 소수의 주재원만 파견했을 뿐,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고 있다.
판단 착오, 혹은 비자금 조성
이를 놓고, 크게 두 갈래 해석이 나온다. 첫 번째는 판단 착오다. 신 회장이 중국 홈쇼핑 시장의 잠재력을 과대평가했고, 몇 가지 실수가 겹치면서 중국 현지 기업에게 좋은 일만 해줬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자금 조성 목적이다. 검찰은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 부실기업을 실제 가치 이상으로 인수한 뒤 차액을 빼돌렸을 가능성이다. 그러자면 럭키파이 기존 경영진과의 공모가 필수적이다. 럭키파이 기존 경영진에게 일정한 보상을 한 뒤, 인수 금액 가운데 일부를 돌려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전자라면, 신 회장은 경영 무능력자가 된다. 후자라면, 경제사범이 된다.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당초 폭로했던 내용은 전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신동빈 회장의 경영능력은 과장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거였다. 이달 말로 예정된 일본 롯데 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주로 이 대목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무능' 프레임 피하려 롯데 계열사에 부담 떠넘겼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선 외통수에 걸린 셈이 됐다. 거래 액수를 부풀리는 건, 경제범죄의 흔한 유형이다. 법적 논란이 일면, 거래 당시에 판단을 잘못했다고 둘러댄다.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해서 비싸게 사들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예상이 빗나갔다는 게다. 이 경우 판단 착오일 뿐, 범죄는 아니라는 논리로 변호한다.
그런데 지금, 신 회장은 이런 방식으로 자기변호를 할 수 없다. 범죄가 아니라 무능이었을 뿐이라고 변호하는 순간, 신동주 전 부회장의 공격에 노출된다. 롯데그룹 차기 총수 자격을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경영이 어려워진 럭키파이가 지난해 600억 원을 차입하는 과정에서 롯데 계열사들이 지급 보증을 섰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배임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신 회장이 굳이 롯데 계열사에게 부담을 떠넘긴 배경은, 앞서 언급한 첫 번째 가능성과 맞물려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회장의 중국 투자 실패를 거론했다. '무능' 프레임에 걸리지 않으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럭키파이를 지원해야 했다. 결국 럭키파이 기존 경영진에게만 좋은 일을 한 셈이다.
무능력자와 범죄자, 신 회장은 이 가운데 어디로 향할까.
신동주는 웃을 수 있나?
한 가지 더.
이번 수사를 계기로,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다시 뒤집기에 성공한다면, 그는 무사히 롯데그룹 총수가 될 수 있을까. 그 역시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제2롯데월드 건설 등 정경유착으로 인한 특혜로 볼 수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동주 전 부회장 주변에도 이명박 정부와 가까웠던 이들이 많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 당시,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이 신 전 부회장의 참모 역할을 했었다. 민 회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에 산업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당시 산업은행의 행태에 대해서는, 지금 다양한 비판이 제기된다.
신 전 부회장이 한국어를 아예 못한다는 점도 주요 변수다. 실질적으로 한국 롯데를 장악하기는 어렵다. 과거 기아자동차 2대 총수였던 김상문 전 회장을 떠올리게 된다. 김철호 창업자의 장남이다. 일본에서 자란 탓에 한국어에 서툴렀다. 이런 상태로 기아자동차 경영에 참가했으나, 조직 장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기아자동차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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