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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화 바람, 브렉시트로 터지나?

유럽을 휘감은 '트럼프의 그림자'

오는 23일 영국과 유럽이 갈림길에 선다. 영국의 EU(유럽연합) 잔류냐 탈퇴냐를 묻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가 이날 실시된다. 여론조사가 투표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박빙 양상으로 치닫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언급한 "세기의 도박"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영국은 왜?

영국인들에게 '하나의 유럽'에 대한 반대 정서는 뿌리깊다. 영국과 유럽은 별개라고 여긴다. 유럽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인데다 과거 세계를 호령한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 이른바 '유럽 회의주의'다.

'유럽 속의 영국'이냐 '영예로운 고립'이냐를 묻는 국민투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5년에 유럽경제공동체(E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67%가 잔류를 선택했다. EEU는 EC(유럽공동체)를 거쳐 28개국이 가입한 현재의 EU로 커졌다. 5억 명이 넘는 인구,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한다.

EU가 세계 최대의 정치‧경제 블록으로 성장하는 사이 EU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영국인들의 반감도 커졌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2010년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2012년엔 스페인으로까지 위기가 번졌다. 남유럽 재정위기에 부유한 EU 회원국들의 재정 분담금이 늘었다. 영국은 독일 다음으로 많은 분담금이 책정됐다.

EU에 부당한 재정분담금을 내느니 그 돈으로 차라리 학교 예산이나 영국인을 위한 복지 수준을 올리자는 주장이 퍼졌다. 여기에 동유럽에서 유입되는 이주노동자들, 시리아 사태를 계기로 폭발한 난민 문제가 겹쳤다. 이들이 영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주장이 대중들에게 먹혀들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반(反)EU 정서에 속절없이 밀렸다. 궁여지책으로 지난해 5월 총선에서 EU 내 지위 변화를 위한 협상을 통한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보수당의 분열을 막고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도박이었다. 그는 지난 2월 EU와의 협상에서 이민자 복지 혜택 축소, EU 제정 법률 거부권 등 '특별한 지위'를 얻어낸 뒤 'EU 잔류' 캠페인을 이끌어오고 있다.

하지만 직접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국민투표는 양날의 칼이 됐다. EU 탈퇴 여론이 급증했다. 보수당의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일찌감치 캐머런 총리와 반대편에 서 EU 탈퇴파를 이끌고 있다. 브렉시트 찬반 양론으로 갈린 보수당은 내분 상태다. 브렉시트가 현실이 되면 캐머런 총리는 실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브렉시트는 영국판 '트럼프 현상'?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인 마크 레너드는 "이번 투표가 이민자 문제에 관련된 것이라면 탈퇴파가 이길 것이고, 경제적 위험에 관한 것이라면 잔류파가 이길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경제 논리로 따지면 영국이 EU 탈퇴로 얻을 이익은 별로 없다. 영국 재무부는 EU 탈퇴시 2030년까지 영국 GDP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U는 영국 수출의 45%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무역장벽으로 수출이 큰 타격을 입는다.

또한 EU 국가들 및 다른 50여개국과 자유무역협정도 새로 맺어야 한다. 그러나 EU 탈퇴 도미노를 우려하는 나라들이 영국과 순순히 FTA를 맺어줄지 불투명하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데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인 홍역도 감내해야 한다. 스코틀랜드는 브렉시트가 되면 영국에서 분리하는 독립투표를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스코틀랜드는 EU 잔류 여론이 우세하다. 북아일랜드도 EU 탈퇴 시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묻는 주민투표가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떨어져나가면 영국은 '리틀 잉글랜드'로 쪼그라든다. 이처럼 브렉시트 찬성 여론이 높아가는 까닭을 영국 내부의 정치‧경제적 손익계산서에서 찾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유럽 전역에선 경제 위기의 원인을 나라 밖으로 돌리는 극우정당과 정치인들이 창궐한 지 오래다. 자국민 우선주의를 앞세운 극우 진영의 포퓰리즘이다. 브렉시트는 정확히 그 맥락에 놓여있다.

지난 5월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정당의 후보로 나서 근소한 차이로 패한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는 반(反)이민자 정책으로 지지를 모았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트럼프'로 불렸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적대감을 부추기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에서도 극우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테러 위협도 극우파가 고립주의를 내세우는 이유 중의 하나다. 지난 3월 벨기에 브리쉘 테러가 발생하자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영국 독립당은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 조약과 느슨한 국경 통제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선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이 정당지지율 1위를 달린다. 국민전선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국민전선 역시 실업률 상승과 테러의 원인을 이민자와 난민에게 돌려 이들에 대한 자국민들의 적대심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인기를 얻는다.

이런 경향은 자유무역을 신봉해 온 전통적인 보수정당의 노선과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유럽통합 때문에 자국민들의 삶의 질이 나빠졌다고 합창한다. 이런 주장이 세계화에 대한 대중들의 누적된 피로감,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을 타고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브렉시트가 '영국판 트럼프 현상'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반대로 EU를 신자유주의의 전초 기지라고 비판해 온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당의 공식 입장으로 브렉시트 반대, '좌파적 잔류'를 택했다. 코빈은 1975년 국민투표 때 EEU 탈퇴를 주장했으며 지난해 총선 전까지는 EU를 "고리대금업자"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월 "EU가 투자, 일자리, 노동자와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 나는 여전히 (영국이 EU의) 구성원으로 남을 필요가 있다는 걸 확신한다. 유럽의 개혁 및 진보적 변화를 위한 강력한 사회주의적 근거가 있듯, EU에 남는 것에도 강력한 사회주의적 근거가 있다"고 했다.

그는 14일엔 영국 최대 노조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해 보리스 존슨 등 EU 탈퇴파를 겨냥해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브렉시트가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 앞에 극우적 브렉시트만은 막으려는 노력이다. 여론조사에서 브렉시트 찬반 입장을 표하지 않은 부동층 중엔 노동당 지지층이 상당수라는 분석이 있다.

그래도 기묘한 조합이다.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선 캐머런과 코빈이 손을 잡고, 노동계가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골드만삭스와 함께 브렉시트 잔류를 설득한다. 그러나 이 연합전선이 EU 붕괴의 도화선이나 다름없는 '영국판 트럼프 현상'을 막아낼 수 있을지 현재로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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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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