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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민 투표, 그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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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민 투표, 그 오해와 진실

[민교협의 정치시평] 기본 소득, 전 지구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스위스의 기본 소득 국민 투표가 한 때 뉴스를 탔다.

결과는 압도적 부결이었지만 어쩐지 스위스의 기본 소득주의자들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하다. 보도로는 월 300만 원 수준의 기본 소득에 관한 투표로 알려졌지만, 스위스에 15년을 살았고 국제노동기구(ILO)에 있는 이상헌 박사의 언급에 의하면 정확히는 헌법에서 "모든 국민이 기본 소득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를 명시할 것인가에 대한 투표라는 것이다.

월 300만 원이라는 것은 스위스 기본 소득주의자들이 스위스에서 기본 소득 정책을 편다면 월 300만 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라는 주장에서 유래되었다. 월 300만 원은 약 2500프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임금 층의 최저 임금이 약 3000프랑이라고 하니 우리 수준으로 번역하자면 약 100만 원 정도의 수준일 듯하다.

아무튼 복지가 잘 된 스위스에서는 저소득층에게 여러 명목으로 이 정도 규모가 지원이 된다고 하고, 재정의 추가 소요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스위스의 상황에서 국민 투표 부결의 원인은 무엇일까? 부결의 주된 이유로는 노동 유인의 감퇴로 인한 생산력 저하와 인근 국가에서 기본 소득이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위스만 시행할 경우 대규모로 유입될 이민이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본 소득 지급 시 노동 유인이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은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 일반적인 저소득층 복지의 경우 일정 소득이 되면 보조금이 중단되므로 그 지점에서 근로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복지 함정이 존재하지만,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소득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복지 함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 번째 이유가 아마도 핵심적인 이유가 될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기본 소득주의자들은 지구적 기본 소득을 주장하기도 한다.

핀란드도 내년(2017년)에 기본 소득을 시행하려고 하는데 핀란드의 경우는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프로그램인 반면, 스위스에서 언급된 기본 소득은 소득 유무를 떠나서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 중에서는 스위스의 기본 소득 정책이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기본 소득, 즉 원래의 기본 소득 철학과 일치한다.

사실상 스위스의 경우 복지가 잘 되어 있고 기본 소득 시행 시의 필요 재원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기본 소득 관련 투표의 핵심은 재원이라기보다는, 복지가 시혜냐, 권리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점은 개입주의적 자본주의와 함께 출현한 복지 국가 복지 제도의 철학을 뒤 흔드는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이 기본 소득의 지지자로 바뀌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 자체의 변화다. 지난 2015년 6월 29일, <슬로우뉴스>라는 곳에서 '알고리즘 사회와 노동의 미래'라는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이 흥미로운 것은 기본 소득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으면서 토론을 듣다 보면 자꾸 기본 소득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포럼의 주제는 현재의 기술, 특히 정보 기술(IT) 변화가 노동에 어떤 효과를 초래할까 하는 문제였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IT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없어진다, 즉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한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런데 사실은 일자리의 종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기계와 컴퓨터가 단순 노동을 대체했는데,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중고급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노동으로 주목하는 것은 알고리즘을 위한 노동(Workers for Algorithms)이다. 마치 산업 혁명 때 이전의 숙련 노동이 기계에 종속된 탈숙련 노동이 되는 현상이 다시 변주되어, 컴퓨터 프로그램에 종속된 노동자가 등장한다. 구글의 검색 엔진 성능을 좋게 하기 위해 구글 알고리즘에 데이터를 관리 공급하고, 아마존의 클라우드 소싱 기반에서 일하는 클라우드 노동자는 사실상 시급 1~5달러에 해당하는 급료를 받고 있다.

공유 경제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우버의 노동자는 고용자가 없다. 우버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중계할 뿐이기 때문에 생산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평판을 쌓아가야 한다. 그래서 우버의 노동자는 노동 쟁의를 할 수가 없는 구조에 들어서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를 중계하는 중계자의 수수료 체계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

프리케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대안이 생각될 수 있다. 계약직을 억제하고 정규직을 확대해야 한다. 새로운 노동 관계의 정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새로운 노동 관계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해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상황이다.

우리 앞에 놓인 사회가 어떠할지, 그리고 변화가 가속화할 때, 실제로 질적 임계점을 넘는 상황이 올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구체적 정책을 입안하기도 쉽지 않을 터이다.

특히 쟁점이 되는 것은 실업이 기본이고, 취업이 특권이 되는 그런 사회가 올 것인가의 문제다.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동시에 기본 소득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자연스러울 법하다. 기본 소득은 이제 먼 미래의 유토피아도 아니고,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기본 소득을 공론화시켜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길이 될 것이며, 이 길에서 인간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미래공동체 사회를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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