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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학을 죽이는 나라,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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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학을 죽이는 나라, 미래가 없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대학 해체와 국가의 종말

제국을 운영했던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거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중국과 현대 세계의 제국인 미국은 우리와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 이 차이를 학문과 연결지어 살펴보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제국이었거나 제국인 나라, 제국이고자 하는 나라는 세계를 해석하고 그들이 당면한 현재를 해명하고 체계 짓기 위한 이론적 틀을 스스로 만들어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을 형성하지도 못하거니와 설사 물리적으로 제국을 만들어도 제대로 통치할 수 없음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제국의 역사에서 이는 예외 없이 적용되는 사실이다. 근대 역사에서만 보아도 유럽 제국이 그러했으며, 지금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한때 제국이고자 했던 일본조차도 제국을 지향했을 때 무엇보다 먼저 제국대학과 그들의 제국을 위한 이론 체계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했다. 탈아입구론이나 근대초극론 등은 이런 맥락에서 생겨난 이론 체계였다. 또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이론적 선행 작업이 정한론으로, 이후 내선일체, 대동아공영권 등의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유럽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수천 년 이어오던 유가 철학의 명분과 이론, 그 천하 체계를 포기한 중국 현대사는 너무도 분명하게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 중국은 어떤 천하 체계론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아니 우리는 어떤 이론 체계를 고민하고 있는가. 지금 한국 사회가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전환에의 요구가 절박한 현실이 되어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재벌 기업에 종속된 국가와 관료,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법과 언론이 정당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함은 나만이 느끼는 일이 아닐 것이다.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일상화된 나라,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반이 넘는 나라, 아니 노동 자체가 소외되고 배제되어 죽어가는 나라에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가. 저출산과 헬조선, n포 세대 등의 비명과 여성 혐오를 비롯한 각종 혐오 현상은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극명한 표지이다.

제국의 이론은 고사하고라도 자신이 처한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뇌하지 않는 집단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일까. 너무도 궁금하다. 그러면서도 온통 경제 성장에 대해서만 조급증을 내고 있다. 아니면 한 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추악한 장난과 종북 타령 따위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협박만이 난무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에서 물리적인 제국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경제에 따라 재편된 제국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치와 문화를 제국주의 논리로 운영하는 것이 현대 세계의 실상이다. 제국의 논리에 편입된 나라는 그나마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는 생존조차 위협받게 된다. 분단된 한반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슬람 세계나 아프리카 국가들을 돌아보라. 그런데도 이 세계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음은 이들 제국주의적 체제를 유지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인식이다. 철학을 비롯한 학문 영역에서는 물론, 경제 체제에서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지적, 금융 자본주의와 다국적 기업의 한계를 비판하는 작업에서 우리는 이런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생태 위기와 에너지 위기 문제는 그 자연적 한계가 드러나는 모습일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어떤 세계 인식을 공유하면서 이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있는가. 세계사적 맥락과 세계 체제와 연결지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이론화하는 작업은 누가 수행하고 있는가. 도대체 어떤 나라가 자신들의 현재를 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지향할 이론적 작업을 외면하고, 또 이런 집단을 해체하면서도 국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구한말의 혼란과 치욕적 식민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일본이 미국의 흑선에 의해 강제로 개항한 것과 조선이 일본을 통해 강제된 근대를 맞이한 사건 사이에는 겨우 20여 년의 간극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이후 30년 동안 일본과 조선은 유럽 제국에 대응하는 데서 엄청난 차이를 지녔으며, 그 결과가 이 땅의 수많은 민중의 삶에 고스란히 배여 들었다. 징용과 징병으로 무죄하고 죽어간 기백 만의 조선인들, 여전한 현재의 고통으로 남아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에 살았던 고만고만한 민중들의 삶에도 어떠한 고통과 폭력이 가해졌는지를 돌아보라. 어찌 그 당시 이 나라를 통치했던 집단과 그들에게 협조하면서 자신들의 영화만 누렸던 이들에게 진저리를 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지금 이 나라의 통치 집단이야 그럴 리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현재의 정치와 사회를 돌아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대학만을 두고 보면 이런 생각은 결코 지나친 우려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대학은 죽어가고 있으며 곧 학적 기능이 마비될 것이다. 경제논리와 사익만을 생각하는 관료집단이, 학문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이 한 푼 지원금으로 대학을 마음껏 요리하고 있다.

2014년 기준 고등 교육 예산은 총 11조 원이었다. 여기서 경상비 성격의 예산을 제한 나머지 2조6600억을 교육부는 대학 재정 지원 사업금으로 운영했다. 그것이 'LINK 사업', 'ACE 사업' 등등이었으며 올해부터는 수천억 원이 지원되는 'PRIME 사업'과 'CORE 사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몇 년째 수조 원을 투입한 이런 재정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죽어간다는 소리는 더 커지고만 있다.

그런데도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으며, 그 정책의 효과를 평가했다는 소식도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 정부가 이 사업을 통해 대학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으며 교육부 고위 관료들 대부분이 퇴임 후 교육 관련 단체에 재취업했다는 이야기만 파다하다. 법조 전관예우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교육부 전관예우이다. 대학을 평가해서 지원하는 이 사업은 누가 평가하는가? 이 명백한 정책 실패는 누가 책임지고 있는가. 이론을 생산하는 집단이 죽어간 이후의 결과는 과연 어떠할까.

대학과 대학의 지식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체계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정립하며, 그 근거를 제시하는 중요한 집단이다. 그런데 그런 집단이 영혼 없는 사익 관료와 정치 집단에 의해 죽어가고 있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 지식을 다만 몇 푼의 돈으로 통제하는 데 성공한 나라에서 국가 해체의 기억은 다만 추억으로만 남을 것인가. 우리에게 제2의 제국주의적 충격과 식민의 시간은 결코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일까. 지금 이 사회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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