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 의사가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5.25 제주 발언'에 대해, 야권에서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속내야 어떻든, 겉으로는 '아직 임기 중인 현직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 정치인'으로 자리매김되는 게 옳으냐'는 차원의 원론적 비판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6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제 '제주 발언'은 외교관으로서 가장 강력한 의미의 대권 시사 발언"이라며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남아 있는데 이렇게 성급하게, 설사 (본인이 대선 출마를) 계획하고 있더라도, 당사국인 한국에 들어와서 이렇게 강한 톤의 대권 출마 시사를 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반 총장의 향후 정치적 전망과 관련해 "최근 1년의 움직임을 보거나, 또 충청권 대망론 같은 것들을 보면 친박은 사실 대권 후보가 무주공산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그쪽(새누리당)으로 기울어지는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가 대선에 나온다면 새누리당 후보로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지금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살맛이 나지만, 그래도 대권 후보라는 것이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며 "친박에서도, 비박에서도 그렇게 용이하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반기문 목장의 혈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에서 반 총장을 옹립한다고 하더라도, 비박에서는 강한 검증과 함께 경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 과정에서 (반 총장이) 정치권의 태풍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남산 위의 소나무가 꺾일까, 아니면 그대로 북풍한설에 견뎌낼까 하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면서 "야권으로서는 한 번 겨뤄볼 만한 후보가 나타났다. 오히려 우리는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겨뤄볼 만한 후보'라고 하긴 했지만, 지난 20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 총장은 문재인-안철수 등 야권 주자들과의 가상 3자 대결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반기문, 문재인-안철수 가상 3자대결서 1위) 이 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반 총장이 출마할 경우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마할 경우를 비교해 보니,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의 지지율은 거의 변동이 없었던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대표의 지지율은 7%포인트나 빠지는 것으로 나왔다. (반기문 38.0% - 문재인 34.4% - 안철수 21.4%, 문재인 35.8% - 안철수 28.8% - 오세훈 27.9%.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개원을 앞둔 20대 국회에서 원내 1당 자리를 차지할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도 반 총장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더민주는 당 공식 논평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피선거권이 있다면 누구든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며 "반 총장의 언급이 대선 출마를 시사한 것인지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유보적인 입장만 냈다.
박광온 수석대변인 명의의 이 논평에서 더민주는 다만 "유엔 사무총장을 임기 중에 정치적 논란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책임있는 나라의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라고 '반 총장'이 아닌 '새누리당'을 비판의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반 총장) 본인 희망대로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잘 마치도록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정장선 더민주 총무본부장은 이날 기독교방송(CBS) 인터뷰에 나와 반 총장에 대한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정 본부장은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가 다 지켜보는 자리 아니냐. 그런데 사무총장께서 임기 중에 국내 정치의 중심에 끼어드는 것이 과연 지금 시기적으로 옳으냐"며 "반 총장은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굉장히 소중한 분이기 때문에 좀 우려된다"고 했다.
특히 정 본부장은 <프레시안>이 지난 23일 국내에 최초 소개한 1946년 제1차 유엔 총회 결의안을 언급하며 "결의안을 보면, 사무총장은 각국의 비밀을 획득할 수 있는 직위이기 때문에 퇴임 직후에는 어떤 정부 직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며 "이런 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마 반 총장께서 깊이, 많이 생각하실 부분"이라고 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반기문, 대선 출마하면 UN총회 결의안 위반)
진행자가 '유엔 사무총장 퇴임하고 대통령 등 직위를 맡은 전례가 있다'고 질문하자 정 본부장은 "한 두세 건이 있는데, 대개는 퇴임 4~5년 뒤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 바로 직후에 한 예는 별로 없다"고 반박했다. 정 본부장의 말대로, 1946년 결의안에서 현재 논란이 되는 부분은 '퇴임 직후'를 언제까지로 봐야 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관련 기사 : 2016년말 퇴임하고 2017 대선 출마, '퇴임 직후'인가 아닌가?)
더민주 이춘석 의원도 평화방송(PBC) 라디오에 나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피선거권이 있기 때문에 출마를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 의사"라면서도 "그런데 지금 아직도 임기 중에 있는 유엔 사무총장이, 임기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에 들어와서, 특정 정치 세력과 연대해서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태도가 옳은지에 대해서 조금 부정적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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