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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미래연구원 설립 무산, 차라리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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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회미래연구원 설립 무산, 차라리 잘 됐다!

[기고] 20대 국회에서 다시 제대로 논의하자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다시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소위 '상시청문회법')을 청와대는 '행정부 마비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어버이연합과 청와대 커넥션, 가습기살균제사건 등 수많은 현안들에 대해 국회 청문회를 열어 조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법의 취지를 위배한 시행령의 수정을 권고"하는, 상식적 수준의 국회법 개정조차 거부했던 이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번에도 다시 거부권 행사가 예측되는 이유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 통과에 정의화 국회의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국회의장은 로봇이 아니다"라며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그간 정의화 의장은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와 감시를 일관되게 강조해 왔고, 국회 스스로 국민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경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국회미래연구원 설립 또한 그런 맥락에서 제안되었다. 정 의장은 마지막까지 국회미래연구원법 제정을 양당에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법은 2015년 10월 12일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원회를 끝으로 다시 다뤄지지 못했고, 19대 국회 '임기만료 폐기'로 사실상 마무리된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잊혀질 운명이 된 셈이다. 안타까운 일인가? 꼭 그렇진 않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정의화 의장은 국회의장 취임 이후 계속 향후 10∼20년을 대비할 수 있는 초정파적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국회의장 의견제시 형태로 국회운영위원회에 국회미래연구원법 제정을 제출했다. 법제정이 지연되자 작년 9월에는 의장 직속 미래전략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번 주에 미래전략보고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도 "단일한 싱크탱크가 아니라 정부와 시민, 이익단체를 연결, 조정하면서 의견, 생각,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싱크넷'이 필요하다"며 정의장과 뜻을 함께 했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법제정이 어렵게 되자 정 의장과 박 사무총장은 별도의 정치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을 국회 밖에 설립키로 했다.

국회에 '미래'를 다룰 독자적 연구원을 설립하는 문제는 당위와 현실 모두에서 논란이 있다. 해외 여러 나라들이 '미래'를 다루는 기구와 연구소를 국회 안팎에 두고 있긴 하다. 미국평화연구소나 우드로윌슨센터, 핀란드의회 혁신기금(Sitra), 핀란드의회 미래위원회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고 할 수도 있다. 또한 국회예산정책처나 입법조사처가 중장기적 전략과제나 미래연구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말을 부정하긴 어렵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하지만 19대 국회에 제출된 국회미래연구원법안은 "일단 만들고 보자"는 성격이 강하다. 만들기만 하면 어떻게든 조직을 키울 수 있고, 적절히 운용할 수 있다는 (임기 2년을 마치고 떠날 국회의장이나 사무총장이 아닌) 사무처 관료들의 자신감이 묻어 있다. 마치 몇명으로 시작한 금융위원회 사무처가 300여 명으로 늘어 사실상 부처 노릇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명색이 '미래'를 다룰 국회미래연구원을 19대 국회 임기 말에 얼렁뚱땅 만들 수는 없다. 국회사무처가 해외 관련기관을 소개하고, 한차례 공청회 개최와 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몇 번 논의하는 정도로는 당연히 불충분하다. 국회가 겨우 60억 원을 초기 출연해 만드는 재단법인으로 할 수 있는 연구는 아무리 '싱크넷'을 내세워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한국개발연구원 한해 정부 출연금만 400억 원이 넘는다). 박사급 연구자들에게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케 하는 방식은 이미 정당연구소와 시민사회 기반 독립 민간 싱크탱크들에서 시도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의 성과보다 한계가 더욱 분명하다.

아마 20대 국회에선 인공지능 관련 법안들이 등장하기 시작할 테고, 21대 국회에서 다뤄질 법안과 현안질의 상당수가 그와 관련된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 에너지, 통일, 저출산과 고령화, 지방소멸, 인공지능 등의 문제를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선도하는 건 물론 따라잡기도 쉽지 않다. 과거처럼 행정부는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정당이 제몫을 못하고 있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렇기에 엄청난 자원과 막강한 권한을 갖춘 국회라면 할 수 있고, 국회라면 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회의장과 사무총장 주도로 2년 만에 국회미래연구원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려 든 것은 그닥 '미래적'이기보다, 외려 '과거적' 행태였다. 미래를 대비하는 국가 차원의 정책지식 생태계의 구축과 국회의 역할에 대한 치밀한 검토와 충분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했다.

질문해 보자. 부처로부터의 독립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한 채 관료와 정권에 휘둘리는 국책연구기관을 그대로 두고 국회미래연구원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 해법인가? 비정규 박사들의 불안한 신분과 국회사무처 관료들의 빠른 승진기회가 맞물려 작동하는 국회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의 폐해가 반복될 우려는 없는가? 정당연구소에 지급되는 수십억원의 국고보조금 가운데 일부라도 미래연구에 사용되도록 하고 이에 대한 경쟁과 검증이 이뤄지도록 하는게 낫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면서 국회가 '미래'를 다루는 방법을 20대 국회에서 새로 검토해 보자. 그것이 굳이 국회미래연구원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미래일자리위원회를 국회 상임위원회로 둘 것을 제안했다. 국회사무처도 (가칭)미래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둘 것을 중장기적 과제로 제시했다. 충분히 검토 가능한 대안이다. 핀란드 의회의 미래위원회는 좋은 사례이다. 차제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체제도 근본적으로 검토하자. 현재 연구회는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으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관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상임위원회에서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감시와 활용은 모두 취약하다. 그렇다면 연구회 체제를 없애고 상임위원회별 연구기관으로 소속을 재편하는 방법도 그려볼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업무 상당 부분을 기획재정부가 아니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국회사무처와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등 국회입법지원기구의 위상과 역할도 재조정하고,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정당연구소 또한 미래연구를 의무사항으로 삼고 결과를 공개토록 하자. 미래를 둘러싼 정당 간 경쟁과 검증은 얼마든지 치열하게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19대 국회 전반기 때 국회 예산·재정개혁 특별위원회가 있었다. 여기서 예결위 상설화를 포함한 다양한 제도개혁안을 만들어 냈다. 그처럼 20대 국회 개원 후 (가칭)미래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미래의제와 중장기 전략과제 연구를 위한 과제를 검토하자. 대신 개별 의원실 보좌진과 사무처 전문위원 수준의 지원방식을 넘어 미래의제 연구를 담당할 정당연구소 연구자와 외부 전문가들의 결합을 처음부터 기획하자. 2017년 대선을 거치며 진행되는 경제인문사회체제의 개편과 정부조직법 개정까지 반영해 20대 국회 하반기에 '국회'와 '미래'의 결합방식에 대한 결론을 만들어 내 보자. 그것은 상임위원회일 수도, 별도의 연구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19대 국회에서 국회미래연구원법 제정이 무산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다. 교섭단체 간 협의에 의해 연구 과제를 선정하는 낡은 방식은 다양한 미래에 대한 상상과 준비를 오히려 제약할 것이 분명하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박형준 사무총장의 '국회'와 '미래'에 대한 충심은 일단 <새한국의 비전>을 통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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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시민의 바람과 물결이 만드는 '새로운 정치'를 꿈꿉니다. 시민적 기풍과 세력이 만드는 '다른 정치'를 기대합니다. 홍일표 박사는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한겨레경제연구소, 국회 등에서 일했고, <기로에 선 시민입법>, <세계를 이끄는 생각 : '사람'과 '조직'을 키워라-미국 싱크탱크의 전략> 등의 저서와 시민운동과 싱크탱크, 정치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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