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은 원자 폭탄을 넘어서 수소 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제2차 세계 대전부터 동서 냉전이 불붙는 196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를 생생히 복원한 리처드 로즈의 <수소 폭탄 만들기>(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가 원서가 출간된 지(1995년) 21년 만에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사실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던 책이기도 했습니다. 1986년 원서가 나오자마자 호평을 받으며 퓰리처상을 받은 <원자 폭탄 만들기>(문신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후속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원자 폭탄 만들기>는 1995년 국내에 소개되어 역사, 과학, 르포르타주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서술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죠.
<프레시안>은 5월에 같이 읽을 책 가운데 하나로 로즈의 <수소 폭탄 만들기>를 추천합니다. 아, 1100쪽이 넘는 분량에 압도된 나머지 선뜻 책에 손이 안 간다고요? 보통 사람이 읽기엔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요? 그래서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먼저 읽은 두 독자의 가이드 독후감을 준비했습니다. (사실 이 책은 한 편의 첩보 스릴러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합니다.)
두 번째 독후감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썼습니다. 정욱식 대표는 '평과 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로 만들고 나서 한국의 대표적인 평화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가 '슈퍼 폭탄'의 딜레마에 빠진 한반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수소 폭탄 만들기>를 읽었습니다.
"세 차례의 지하 핵 실험과 첫 수소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핵 강국의 전렬에 당당히 올려 세우고 미제의 피비린내 나는 침략과 핵 위협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게 한 자랑찬 승리를 이룩하였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수소 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함으로써 한반도 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물론 북한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폭발 규모가 10킬로톤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대개 메가톤급에 달하는 수소탄의 폭발 규모와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이에 근거해 한미 정보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허풍을 떨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수소탄 개발 논란은 10여 년 전에도 있었다. 북한은 2002년 말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자 "핵폭탄은 물론이고 그거보다 더 강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국과학자협회(FAS)를 중심으로 북한이 수소탄 개발을 암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나는 2005년 6월에 평양에서 북한의 한 인사와 이 문제를 놓고 대화한 적이 있다. 다음은 그 대화의 한 대목.
"그런데 북측이 몇 년 전에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게 뭔가요?"
"하하하, 정 선생한테만 알려드리지요. 그건 우리 인민들의 일심단결입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허무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 허무 개그에는 의미심장한 게 내포되어 있었다. '슈퍼 폭탄'으로 불리는 수소탄의 가공할 공포가 바로 그것이다. 이 공포심에 사로잡히면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전문가 집단인 미국과학자협회가 즉흥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슈퍼 폭탄'에 내재된 편집증과 과시욕
2002년의 사례가 일부 과학자들의 편집증을 보여준 것이라면, 최근 상황은 '슈퍼 폭탄'에 내재된 김정은의 과시욕을 잘 보여준다. 김정은이 수소탄이라는 '상징 조작'을 통해 과시하려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외부의 적들로 하여금 '북한이 혹시'라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우리도 핵강대국'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외부의 두려움은 억제력의 기반이 되기도 하고, 강압 외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내부의 자부심은 체제 결속의 자원이 되고, 이를 근거로 병진 노선을 합리화하는 기재로 이용된다. 실제의 성과 여부와 관계없이 '슈퍼맨'이 되려는 김정은의 머릿속에는 이러한 생각들로 가득할 것이다.
수소탄이 한반도 상공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오늘날, 리처드 로즈가 쓴 <수소 폭탄 만들기>(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접했다.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원자 폭탄 만들기>의 후속편 격이다. 첩보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 전개에 몰입 당하기도 했고, 한반도 핵 문제에 시사점을 주는 대목에선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이 책의 핵심적인 요지는 냉전과 핵무기의 상호 작용에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동지였던 미국과 소련이 냉전으로 빠져든 데에는 미국의 비밀 핵개발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주효했다. 미국은 '절대 무기(원자 폭탄의 별칭)'를 손에 쥐면 전후 질서에서 소련보다 우위에 설 것으로 확신했다.
자발적이든, 포섭된 것이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로부터 '거대한 비밀'을 전해들은 소련의 스탈린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갖게 되면 피격당할 것'이라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살당한 것을 보곤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편집증을 갖게 되었고 그 편집증은 '우리도 빨리 만들라'는 지시로 이어졌다.
예상보다 5년 정도 빨리 소련이 원자 폭탄 실험을 하자, 이번에는 미국이 편집증적 공포에 사로잡혔다. '소련이 먼저 슈퍼 폭탄을 만든다면'이라는 가정은 서방의 종말과 동의어처럼 간주되었다. 이에 반대하는 과학자에겐 재갈을 물렸고, '슈퍼 폭탄'을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
원자 폭탄에선 미국에게 밀렸던 소련도 수소 폭탄에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네가 먼저 보유하면 내가 끝장난다'는 공포심은 태평양과 사막 곳곳에서 작은 태양과 거대한 버섯구름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그 속엔 '내 것이 더 강하고 많지'라는 과시욕이 담겨 있었다.
공포심과 과시욕이 융합되면서 이성의 목소리는 설자리를 잃었다. '그건 만들어봐야 소용없다'는 현실적인 호소도, '그건 너무나도 반인도적 무기'라는 인간적인 호소도 이적 행위나 다름없는 것으로 취급됐다. '더 강하고, 더 빠르고, 더 멀리, 더 많이!' 올림픽 구호를 연상시키는 핵 군비 경쟁이 냉전 시대를 지배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에 미국과 소련은 둘이 합쳐 7만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책의 부제처럼 "20세기를 지배한 암흑의 태양"이 늘어나면서 '핵겨울(nuclear winter)'라는 말이 지구촌을 배회했다.
"병 안에 든 두 마리의 전갈"
리처드 로즈는 미소 냉전이 끝나고 집필에 들어간 <수소 폭탄 만들기>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핵무기가 조만간에 전 세계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목적과 용도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무기는 파괴 수단으로서 이미 오래전에 그 용도를 상실했다."
이 문장 안에 수소 폭탄을 비롯한 핵무기의 역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용도는 많지만 그 용도를 상실했다'고 말이다. 용도의 핵심은 핵 억제력에 있다. 그런데 억제력은 능력과 의지의 조합이다. 능력이 강할수록, 유사시 이걸 사용할 의지가 확고할수록 억제의 목적이 달성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믿음 역시 상호 작용을 수반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여전히 '경고 즉시 발사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반면 핵무기는 사용하는 순간 그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된다. 적의 땅에 피어오를 버섯구름은 내 땅에서도, 내 친구의 땅에서도 피어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반도의 현실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 여차하면 상대방을 몰살하겠다는 힘의 과시로 위태롭기 그지없는 평화, 아니 정확히 말해 정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말한 "병 안에 든 두 마리의 전갈"이야말로 남북한의 신세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정녕 길은 없을까? 냉전의 종지부를 찍은 미하엘 고르바초프의 지혜 속에 그 길이 있다.
"너를 불안하게 만들어야 내가 안전해진다는 것은 착각이다. 네가 안전해져야 나도 안전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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