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한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와 무엇에 대해 말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몸동작, 목소리 크기, 속도, 억양 등에 따라 말의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같은 단어라도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한다. 사람마다 대화의 스타일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마음에 있는 바를 그대로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에둘러 말하기도 한다. 아마도 남녀 간의 소통이 어려운 이유도 그런 것들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이러한 소통 방식의 차이를 문화적인 차원으로 확장해서 '저맥락(low-context)' 문화와 '고맥락(high-context)' 문화라는 개념으로 구분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저맥락 문화권의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인데, 독일인들은 생각한 대로 말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그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중국인의 고맥락 문화
반면에, 대표적인 고맥락 문화권에 사는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해석해야 한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맥락 문화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 개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서 독일인이라면 분명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것이고, 만약 상대방이 그것을 해주면 좋고, 해주지 못하더라도 합리적인 이유를 말하면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원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이기 때문에 돌려서 말할 수밖에 없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듣고 원하는 것을 해주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해주지 못하더라도 알아주기만 해도 관계는 나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못 알아들었다면 아마 속으로 어떻게 그걸 모르냐고 상대방을 책망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국인들의 대화는 간단하지 않다. 가끔 고수들의 대화를 접할 때는 예술의 경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삼국지에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고사가 있다. 유비(劉備)가 제갈량(諸葛亮)을 얻기 위해 그가 사는 초가집을 세 번 찾았다는 이야기인데 이 고사에서 중국식 소통의 방식을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비는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갔지만 처음 두 번은 만나지 못하고, 세 번째에 가서야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허탕을 친 두 번의 방문도 사실은 이미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 방문이야 무작정 찾아갔으니 제갈량이 부재중일 수도 있지만 유비가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회신을 보냈어야 하는 것이 당시의 예였다. 이미 제갈량은 유비에게 완곡한 거절의 뜻을 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관우와 장비가 마뜩치 않은 심정인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두 번째 방문은 좀 더 심하다. 그때 유비는 수하를 통해 제갈량이 집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출발했는데 초려에 도착했을 때 또 여행을 떠난 것이다. 원문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상황으로 봐서 유비의 수하는 분명 제갈량이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또 조만간 오실 거라고 언질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떠났다는 것은 더욱 확실한 거절의 뜻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두 번째 방문에서 유비는 편지까지 남기고 왔는데 제갈량은 답장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거절의 화답을 한 것이다.
세 번째 방문에서는 낮잠을 자면서 유비를 반나절이나 세워놓았으니 이런 무례가 어디 있겠는가. 유비는 어떤 무례를 감내하고라도 제갈량을 얻겠다는 의사를 행동으로 전달했고, 제갈량이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오간다. 그리고 천하를 위, 촉, 오로 나누어 다스리는 이른바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의 구상이 탄생했다.
그 때 유비는 제갈량을 선생이라 불렀고, 제갈량은 유비를 장군이라 불렀다. 그리고 제갈량이 천하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유비에게 헌신할 것을 결심하게 되면서 유비는 주공(主公)이 되고 제갈량은 군사(軍師)가 됐다. 후에 유비가 황제를 칭한 후에는 제갈량의 칭호는 승상(丞相)이 된다. 삼고초려란 그런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두 사람 간의 긴 대화였던 것이다.
중국인의 대화 : 정보 교환이 목적이 아닌 관계 정립을 위한 과정
이렇듯 중국인에게 있어서 대화의 목적은 정보를 교환하거나 무엇을 토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일단 관계가 정립되면 서로 간에 해야 할 일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 에둘러 표현하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함축적인 표현을 쓴다. 무언가 실수를 해서 상대방의 체면에 손상을 입히게 되면 좋은 관계를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또 다른 고사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보면 유비, 관우, 장비가 젊은 혈기에 별 다른 깊이 있는 대화도 없이 형제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세워진 관계는 평생을 두고 변하지 않아서 유비가 황제를 칭했을 때에도 관우와 장비는 유비를 형님이라 불렀다. 그들은 삼국지 전편을 통해서 천하대업이나 중요한 작전 계획에 대한 대화를 별로 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 사이에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논어> '자로(子路)'라고 했다. 이름이란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에서 보이는 것처럼 관계의 명칭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말씀은 관계가 정해지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그렇게 되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비가 제갈량과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그렇게 애쓴 이유도 관계가 정립된 다음에야 비로소 순조로운 대화 혹은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중국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무의미하게 겉도는 내용에 당황하거나 어색함을 느끼곤 한다. 이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중국인들이 하는 대화의 목적 중에 관계 정립을 위한 대화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거나 결과를 얻기 위해 조바심을 내지 말고, 서로의 우호적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지루하고도 지난한 과정을 기다리겠다는 여유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개인 간의 대화에서든 비즈니스 협상에서든, 나아가 외교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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