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은 만사를 '김대중 노무현 탓'으로 돌리며 국정을 농단하던 자들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성취와 좌절을 뛰어 넘는 전망을 주지 못한 야당에 대한 경고였다. 여당은 확실하게 패배했으나 야당은 조건부로 승리했을 뿐이다.
이 글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노무현 정부 때문에 생겼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조차 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지 못했는지 뼈저리게 성찰하자는 글이다.
2014년 9월, 나는 환경부 장관으로부터 자료 부존재 통지를 받고 매우 당황했다. 당시 검찰은 무책임하게도 수사를 방치했고, 피해자 모임이 외롭게 싸우던 때였다. 환경부 장관은 "환경부 소관 법률에 가습기 살균제 제품 제조 판매 허가 규정이 없으므로" 허가 유해성 심사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유독 물질이 한국에서 유통될 관문을 열었다. 환경부는 1997년에는 옥시 가습시 살균제(보건복지부 백서 인용)의 유독 화학 물질(PHMG) 제조를, 그리고 2003년에는 세퓨(Cefu)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물질(PGH) 수입을 유해성 심사에서 통과시켜 주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4개월이 되지 않은 2003년 6월 10일이었다. 그날 대한민국 관보는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 화학 물질"이라는 이름의 고시를 실었다. 국립환경연구원장은 "세퓨(Cefu)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 성분으로 알려진 "PGH" 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 화학 물질"로 고시했다. 동시에 '2003-3-2357'이라는 고유번호를 부여했다. 이로써 "PGH" 물질은 한국이라는 국경에 진입해서 유통될 자격을 합법적으로 취득했다. (옥시 성분 PHMG는 앞의 글 참조. ☞바로 가기 : '나쁜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만들었다)
지금도 서울 광진구에 있는 자본금 5000만 원의 한 작은 식품 도소매 및 무역을 하는 회사가 위 "PGH" 물질을 덴마크와 유럽에서 수입하기 위해 국립환경연구원에 <수입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회사가 낸 심사 신청서에 첨부된 유럽의 자료에는 이 물질을 "흡입시 신선한 공기를 마실 것", (After inhalation: Take the person concerned to fresh air) "연소 가스를 마시지 말 것"(Do not breathe in flue gas) 이라고 되어 있었다. 동물성 실험 결과 독성이 없다는 자료도 첨부되었으나 흡입 독성 실험은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신청서에는 당시 법령(유해화학물질 시행규칙 2조 1항 1호)에서 심사 신청서에서 반드시 기재하도록 한 <주요 용도>가 <주요 농도>로 둔갑해 있었다.
그리고 환경에 배출되는 주요 경로로 "spray or aerosol 제품 등"에 첨가한다고 했다. 그리고 "기타, water, flavor 등"이라고 손으로 썼다. (이 신청서는 장하나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음) 그러니까 방향제 등 '스프레이'나 '에어로졸' 등으로 대기에 분사되어 사람에게 흡입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물론 이 업체가 누구의 부탁으로 어떠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이 물질을 수입했는지 지금은 모른다.
노무현 정부의 국립환경연구원은 이 물질의 유해성 심사 단계에서 흡입 독성에 대해 주의를 가져야만 했다. 그러나 2003년에 이 물질은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로 고시되었다.
나는 이 관보 고시 하나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서울에서 갓난아기들이 호흡고통을 호소하는 집단 질환이 발생했지만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지 못했다. 그리고 애경 가습기 메이트의 성분(CMIT/MIT)이 계속 사용되도록 방치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부터 자유로운 정부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뼈저린 것은 왜 노무현 정부조차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공산품 안전관리법이 있었음에도 참사를 막지 못했냐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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