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조선인이 자동차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1912년경이다. 일본인과 조선인이 합작한 오리이자동차상회가 자동차 임대업을 시작했다. 이후 공업화 시기를 지나며 한반도는 빠른 속도로 자동차의 땅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인 1940년에는 전국에 약 1만 대의 자동차가 굴러다녔다. 자동차는 순식간에 신문물의 상징이자, 강성한 외국 제국주의의 첨병이 되었다. 지주들은 자동차 사업가로 변신했고, 젊은 한량들은 기생을 자동차에 태우고 팔도를 유람했다.
"서울 장안에는 하루에도 수업시 '아스팔트' 우으로 구으러단이는 신형 '씨보레' 유선형 자동차가 이 거리에 쏘단이는 시정인들의 말쑥말쑥한 옷자락에 몬지를 피우며 달아나고 있다. 요즈음에 와서는 장안에서 누구누구하는 명사들이란 거지반 자가용 자동차를 한 대쯤은 가지고 잇다. 이 분들이 사유하고 있는 자동차 가격을 알아보면, 최창학 1만3천원(지금 돈 15억6000만 원), 민대식 8천원(9억6000만 원)." (<삼천리> 1936년 6월호)
한국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1955년 재생 자동차인 시발자동차가 양산되며 한국산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1962년에는 정부 정책으로 시민을 위한 자동차 '새나라'가 나왔고, 1967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처음 조립한 차량 '코티나'가 선보였다. 1970년대 들어 정부는 중화학 공업을 지원했고, 이때 수출을 목표로 한 브리사, 제미니, 포니 등이 나왔다.
1980년대 들어 중산층이 탄탄해지면서 마이 카 열풍이 일었다. 엑셀, 르망, 프라이드 등이 가정을 사로잡았다.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날렵한 모양의 자동차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스쿠프는 실용성보다 디자인을 강조한 차량이었고, 1992년 나온 기아의 첫 고유 모델 세피아는 무엇보다 디자인을 강조한 차량이었다.
1980년대 들어 중산층이 탄탄해지면서 마이 카 열풍이 일었다. 엑셀, 르망, 프라이드 등이 가정을 사로잡았다. 디자인이 중요해졌다. 날렵한 모양의 자동차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스쿠프는 실용성보다 디자인을 강조한 차량이었고, 1992년 나온 기아의 첫 고유 모델 세피아는 무엇보다 디자인을 강조한 차량이었다.
<자동차, 시대의 풍경이 되다>(이문석 지음, 책세상 펴냄)는 현대자동차 디자이너 출신의 저자가 자동차 디자인의 변화를 중심으로 자동차 기술 변천사를 중심으로 풀고, 이에 한국 현대사의 변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덧붙인 책이다.
저자의 성실한 조사 덕분에 조선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그림 자료가 이해를 돕는다. 조선인들이 생전 처음 보는 자동차에 놀라 마치 괴물을 보듯 도망치는 장면, 일제 강점기 포드자동차의 신문 광고 등은 쉽게 접하기 힘든 자료다. 이들 자료는 당시 시대상은 물론, 당시 사람들에게 자동차가 어떤 의미였는가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한국 전쟁 이후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자연히 자동차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문물이 된다. 전후, 한국에 당장 필요한 건 이동수단 자체였다. 디자인이고 성능이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전후 한국의 모습은 시발자동차로 대표되는 재생 자동차의 모습과 겹치는 까닭이다.
1970년대 들면서 자동차가 국산화하자, 드디어 디자인 고민이 자동차에 묻어나기 시작한다. 포니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부터 책은 더 풍부하게 배치한 당시 광고 자료를 바탕으로, 그리고 당시 국내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 도면을 곁들여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게 바뀌는 당대 시민의 욕망을 그려낸다.
자가용 대중화, 마이 카 시대는 자동차 광고를 극적으로 바꿨다. "이제는 세계 최신 승용차와 비교하십시오-멋이라면 '포니 엑셀', 품위라면 '프레스토'"라는 당시 현대자동차 광고는 중산층으로 진입한 한국인의 욕망을 집약하는 광고 문구다.
쏘나타와 프린스는 더 큰 자동차 소유 욕망을 지니게 된 한국인을 타깃으로 했다. "멋과 개성이라면 역시 프린스"라거나 "갖고 싶었던 '쏘나타',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졌어요"라는 광고문은 고성장하던 한국인이 그에 걸맞게 부풀어오른 욕망을 자동차로 드러내려던 당시 모습을 집약한다.
자가용 대중화, 마이 카 시대는 자동차 광고를 극적으로 바꿨다. "이제는 세계 최신 승용차와 비교하십시오-멋이라면 '포니 엑셀', 품위라면 '프레스토'"라는 당시 현대자동차 광고는 중산층으로 진입한 한국인의 욕망을 집약하는 광고 문구다.
외환 위기 이후 자동차 시장도 변화한다. '국민차' 티코는 상징적이다. 1991년 국내 최초로 탄생한 경차 티코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나온 마티즈는 얇아진 지갑 두께를 상징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차는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제 사람들의 욕구는 다양해졌고, 과거와 달리 자기 표현 수단으로서 자동차는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가 외국인 디자이너를 영입해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하는 디자인 철학을 정립한 게 대표적 예다.
직접 자동차 제조업계에서 일했고, 누구보다 디자인을 잘 아는 전문가가 쓴 책이기에 이 책은 자동차 디자인의 변화 과정을 세밀히 짚어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전문 영역에 함몰되지 않고 자동차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국 시민의 변화하는 삶의 궤적도 추적 가능하게끔 설명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물론, 한국 현대사를 약간 다른 시각에서 거칠게 훑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안성맞춤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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