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성장과 창조 경제
이병한 : 작년(2014년)부터 'Big Idea'라는 이름으로 독립 100주년(2065년)에 대한 청사진을 제안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자동차 없는 싱가포르를 만들자는 제안이 가장 솔깃하더군요. 칼럼만 읽고서는 싱가포르도 교통 체증이 상당한 줄로 알았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캄보디아와 필리핀에 다녀왔는데요. 프놈펜과 마닐라도 차가 엄청 밀리더군요. 하노이나 자카르타는 이미 악명이 높고요. 어디서도 감히 운전대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사정이 훨씬 좋던걸요. 세계에서 가장 바쁘다는 창이(Changi)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길도 무척 쾌적했습니다. 도로는 널찍한 반면에, 차들은 그리 붐비지 않았고요. 덕분에 잘 가꾸어져 있는 가로수들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셈이죠. 그래서 더더욱 자동차 없는 사회를 제안하신 배경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만하면 살만한 도시 아닌가 싶거든요.
키쇼어 :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50년 후에도 변함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땅값이 가장 비싼 나라 중의 하나이기도 하죠. 제가 알기로는 모나코를 제외하고 어떤 나라도 단위 면적당 지가가 싱가포르보다 높지 않습니다. 싱가포르는 또 인구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그 유명한 방글라데시보다 사실은 싱가포르가 더 높아요. 게다가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이 극히 희박하죠. 즉, 싱가포르는 거의 완벽한 의미의 '도시 국가'입니다. 모든 국민이 '도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녹지가 풍부합니다. 도심에서도 울창한 나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리콴유 전 수상의 선견지명입니다. 잿빛 콘크리트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고 말하셨죠. 그래서 영토의 절반은 자연 상태로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토지의 절반만 거주 및 상업 등 인간 활동의 영역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도시 국가의 생물 다양성이 미국 전체보다도 풍부합니다.
이병한 : 저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이며 가든 바이더베이(Garden by the Bay)에 다녀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문자 그대로의 '자연'이라고 하기는 힘들더군요. 가든이라는 말처럼 '잘 관리된 정원'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 '정원'의 이미지야말로 싱가포르라는 나라 전체의 은유 같기도 했고요.
키쇼어 : 싱가포르는 작은 영토에 높은 인구 밀도라는 조건의 구속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더욱 토지를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도로 건설은 이미 한계에 달했어요. 이미 영토의 12%가 도로입니다. 이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일 것입니다. 그간의 도시계획도 도로를 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가 중심이었죠. 상징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터널을 뚫는답시고 옛 국가도서관을 허물었어요. 효율적인 도로망을 구축하기 위해서 싱가포르의 정신적 중심을 훼손한 것입니다. 이래서는 싱가포르의 장래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은 자동차에 대한 수요 자체를 줄이는 것입니다.
이병한 : 관건은 어떻게, 인데요.
키쇼어 : 자동차 소유는 여전히 '싱가포르 드림'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모든 싱가포르 인들이 이 꿈을 실현한다는 것은 싱가포르의 악몽을 의미합니다. 싱가포르는 미국과 같은 대륙 규모의 국가가 아니거든요. '마이카(My Car)' 문화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이자, 20세기형 대중사회의 산물입니다. 서둘러 깨어나야 합니다. 전혀 몰랐던 사실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 50년간 정부에서도 일정한 대책을 세웠습니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자동차 가격이 가장 비싼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도로 이용료 또한 매우 높게 책정했죠. 그래서 다른 동남아 도시들과 같은 대혼잡을 피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책의 역설이 발생했어요. 자동차의 상징적 가치가 더욱 증폭된 것입니다. 그 자체로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 되어버렸거든요.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한국 차들이 별반 인기가 없습니다, 유럽산 고급차들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아요. 기존 정책의 한계입니다. 더욱 과감하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병한 : 대안은요?
키쇼어 : 욕망의 전환입니다. 가치의 변화입니다. 지금 당장은 허황하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은 싱가포르인들이 자동차 소유의 꿈을 접는다고? 당신이 도달한 부와 지위와 권력을 알려주는 가장 쉬운 방편이 자동차인데도? 그러나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맨해튼에서 10년간 살았습니다. 싱가포르보다 더 작고 더 복닥거리는 섬이죠. 어느 날 저녁에 시티뱅크 최고경영자와 그의 아내가 거리에서 택시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분명 그는 미국에서, 아니 지구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일 것입니다. 원한다면 수십 대의 고급차도 살 수 있겠죠. 그러나 맨해튼에 살면서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훌륭한 대중 교통망 때문입니다. 지하철과 버스와 택시가 최적의 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언제든 원하는 곳에 짧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어요. 뉴욕의 블룸버그 시장 역시 백만장자이지 않습니까? 그 또한 지하철로 출퇴근했습니다.
즉, 21세기의 선진국은 가난한 사람들도 자동차를 소유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부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곳이 진짜 선진국입니다. 1960년대 히피족을 흉내 내자는 것도 아닙니다. 도시 문명, 근대 문명에서 도피하고 탈출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는 해법이 아닙니다. 싱가포르가 어디로 갈 수 있나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도시 문명을 재탄생시키는 것입니다. 도시 생태를 재생시키는 것입니다. 혁신적인 친환경적 공공 교통망을 제공함으로써, 사적인 이동수단의 필요를 제거해 가야 합니다.
그 점에서 싱가포르는 지난 50년 실패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중교통망을 만들지 못했어요. 토론토, 런던, 파리, 베를린은 물론 도쿄나 홍콩보다 순위가 뒤집니다. 인구 증가에 보조를 맞추어 더 훌륭한 지하철, 더 촘촘한 버스 노선, 더 편리하게 이용 가능한 택시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보태어 전기 자동차의 공유 체계를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이병한 : 그 대목이 가장 흥미롭던데요. 조금 더 설명해 주시죠.
키쇼어 : 앞으로는 자동차를 몰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자는 것이죠. 아침에 집을 나와서 숲길을 따라 걷다가, 전기 자동차들이 있는 정류장으로 갑니다. 스마트카드로 전기차를 빌려서 학교나 회사까지 운전합니다. 그리고 직장의 정류장에서 재충전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공용 자전거'처럼 '공용 자동차'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허무맹랑한 꿈도 아닙니다. 기술의 발전이 놀랍습니다. 특히 싱가포르 같은 소규모의 도시 국가에는 최적입니다. 전기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테슬라의 테스트 시장으로서도 싱가포르가 안성맞춤입니다. 실은 테슬라가 싱가포르에 진출했었어요. 그런데 1년도 못되어 철수했습니다. 충전소와 환경세 등 인프라 및 정책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재정비해서 테슬라와 합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싱가포르에서는 매일 100만 대의 자동차가 운행 중입니다. 스마트 전기차 시스템이 도입되면 30만 대로 현재의 교통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요. 경제적으로 이익일뿐더러, 생태적으로도 이득입니다.
대안적인 공공 교통망을 제시함으로써 싱가포르를 자동차 소유가 없는 세계 최초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20세기를 지배한 마이카 문화와는 다른 욕망과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러면 싱가포르는 21세기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그 외적 성장에 비하여 내적인 만족감, 행복지수에서 성취가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차 없는 사회는 행복에 한층 가까운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아스팔트를 땅과 숲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녹지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행복감도 높아집니다. 잠시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지수는 낮아집니다. 그럴수록 싱가포르는 더 건강하고 더 생태적인 도시가 됩니다. 천식환자는 줄어들 것이고, 암 발병도 감소할 것입니다. 더 조용하고 더 평화로운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세계에서 가장 유능하고 창의적인 인재들에게 더 매력적인 도시가 될 것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살아보고 싶다, 일해보고 싶다, 라는 욕망을 자극할 것입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게 더 나을까요? (웃음))
이병한 : 아니요. 충분히 근사한 비전입니다. 한국에도 '녹색 성장'과 '창조 경제'라는 말이 있는데요. 싱가포르에 더 어울리는 개념 같습니다.
키쇼어 : 앞으로 아시아에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2020년이면 17억이죠. 2065년이면 얼마가 될까요? 이들이 지난 세기처럼 자동차를 소유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는 타들어 갈 것입니다. 대안이 있고, 실현가능하다는 것을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부터 몸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이동 수단을 전기화함으로써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모범 국가의 상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싱가포르는 小國(소국)입니다. 장차 중국과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보다 경제 규모에서 작아질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필연적 추세에요. 그렇다면 싱가포르는 이제 소프트파워를 더욱 키워야 합니다. 주변국들이 뒤늦게 마이카 열풍에 휩쓸리고 있을 때, 다음 세계, 다른 세계를 열어가는 혁신의 전위가 되어야 합니다. 싱가포르의 다음 50년의 비전도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의 나라로
키쇼어 선생이 주장하는 것은 공공 교통망의 향상에 그치지 않았다. 요는 행복지수를 높이자는 것이다. 더 이상 경제 성장이 국가의 목표가 아닌 것이다. 행복 증진이야말로 국책의 으뜸이다. '행복의 나라로'가 구호가 된다. 부국과 강병이라는 20세기형 戰國(전국) 시대의 생존술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성장에서 성숙으로, 발전에서 행복으로, 정치/경제에서 문화/생태로. 그래서 소국이라는 점이 도리어 장점이 된다. 새로운 '소국주의'의 실험장이다.
물론 지난 50년처럼 정부 주도의 탑다운(top down) 방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싱가포르 항공사, 창이 공항, 싱가포르 항만공사 등 지난 세기 싱가포르의 성취를 상징하는 것은 하나같이 정부 정책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50년은 정부와 민간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깨어있는 시민의 협력과 협동이 필수적이다.
자동차 소유 없는 싱가포르라는 대담한 청사진은 첫 번째 시민 참여형 국가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라는 20세기형 과제에 성공했던 싱가포르가 과연 전 지구적 과제에 공헌하고 세계의 공익에 기여하는 21세기형 선진국의 전범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未來(미래) 국가
싱가포르는 애당초 이민 국가로 출발했다. 역사가 부재한 '상상의 공동체', 人工(인공) 국가였다. 21세기 재차 인구 유입이 활발하다. 현재 인구 증가의 4분의 3이 이민이다. 자연 증가를 훨씬 앞지른다. 이미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총인구의 4분의 1이 외국인이다. 영주권자도 갈수록 늘고, 그들의 자녀들도 늘고 있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독립 100주년인 2065년이면, '싱가포르 국민'들의 비중이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국민과 비국민이 절반씩 어울려 사는, 미래형 국가가 되는 것이다. 국민, 영토, 주권이라 했던 근대 국민 국가(Nation-State)의 3요소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민에게 주권을 부여했던 근대 민주주의의 전제 또한 요동치고 있다.
이미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변했다. 더 이상 국민이냐 외국인이냐를 따지지 않는다. 거주민(resident)이냐, 비거주민(non-resident)이냐가 새 기준이다. 싱가포르가 가장 과격한 형태이기는 하겠지만, 아마도 21세기 중반이면 거의 모든 국가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국민들만의 '사회 계약'으로 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도 남 나라에서 살고, 남도 내 나라에서 산다. '우리나라'를 이루는 나와 남의 경계가 갈수록 흐릿해진다. 즉 떠돌이(cosmopolitans)와 토박이(heartlanders)들의 유동적인 사회 계약으로 유연하고 탄력적인 국가를 거듭 갱신해가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모든 국가들이 '제국'화 되어간다. 과연 싱가포르는 '미니어처 제국'이었다. 그래서 東과 西, 古와 今이 만나는 네오 르네상스 도시를 연상시킨다. 이슬람 모스크와 천주교 성당과 힌두 사원과 불교 절과 도교 사원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차이나타운의 풍경이 상징적이다.
하루는 몇몇 한국 교민들을 뵈었다. 리틀인디아에서 저녁을 먹고, 아랍스트리트에서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들의 직장은 시애틀에 본사를 둔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현지의 직장 상사는 인도 사람들이란다. 한국과 인도의 IT 인재들이 싱가포르에서 '아시안 잉글리시'로 소통하며 미국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언뜻, 어렴풋이, 미래가 보였다. 19세기는 브리티시 잉글리시(British English)의 전성기였다. 20세기는 아메리칸 잉글리시(American English)의 절정기였다. 21세기는 아시안 잉글리시(Asian English)가 대세일지 모른다.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국가가 미국이 아니라 인도와 중국이 될 공산이 매우 크다.
"동은 동, 서는 서. 그들은 결코 만나지 못하리(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win shall meet)"라고 읊은 것은 19세기의 키플링이었다. 그러나 토착화된 영어(Broken English)를 통해서라도 동과 서가, 또 동과 동이 만나고 연결되고 있었다. 영국식 근대적 세계관이 그들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에서 경쾌하게 전복되고 있는 것이다.
실은 나도 싱가포르에서 인도인 친구를 만났다. 하노이에서 요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거처를 싱가포르로 옮겨 일하고 있었다. 영어가 통하고 리틀인디아가 있어서 살기에 훨씬 편하다며 함박웃음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최첨단의 IT 산업과 인도에서 비롯한 고전적 영성 산업이 싱가포르에서 오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만난 지식인이 바로 이 주제, 근대의 막다른 곳에서 아시아의 영성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깊이 천착하고 있는 분이다. 인도 출신의 저명한 중국사학자, 프라센짓 두아라(Prasenjit Duara)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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