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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패, 다음 정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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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패, 다음 정부는…"

[정세현의 정세토크]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대담 <2>

북한 핵 문제가 2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인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학교 교수는 지난 4월 3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대담에서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북핵의 발단을 보면 한국이 주도해서 남북관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국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북핵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은 북미 관계에 있다.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하려면 할수록 꼬이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그저 손 놓고 미국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 진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은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며 북미 관계, 평화협정 등 근원적 해결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북핵 문제에서 한국의 가장 큰 역할이 여기에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핵 문제는 북한 문제의 한 부분이다. 북핵에만 '올인'해서 해결이 안 되면 이제는 사고방식을 바꾸어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한국은 남북관계의 다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국이 해야 할 책임은 미국의 대북 압박 강도를 낮추고 그걸 가지고 북한 설득해서 '우리가 미국을 이 정도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너희도 그렇게 악만 쓰지 말고 타협적으로 문제를 풀자'라고 말하고, 중국한테는 '우리가 이 정도 해놨으니까 너희가 의장국으로서 역할을 해라'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핵 문제를 이유로 사실상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마저 닫아버렸다.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셈이다.

이에 대해 진 교수는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며 "문제의 핵심은 한국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상대가 아닌 무너뜨려야 할 폭정 집단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대북정책이 정말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지향하고 동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은 동독의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강대국들의 전략이 한반도에서 갈등과 충돌을 빚는 고리를 끊으려면 남북관계 개선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일정 부분 개선되면 한국의 운신 폭도 그만큼 넓어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 왼쪽부터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정기훈

프레시안 : 진징이 교수님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남한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 2013년에 실행했던 3차 핵실험의 경우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남한이 문제 발생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과 동시에 문제 해결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진징이 :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하려 하고 그런 의도에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 나왔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역시 북핵 해결을 우선순위에 놓고 대북 정책을 펼치고 있죠.

그런데 북핵의 발단을 보면 한국이 주도해서 단순히 남북 관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지난 8년 동안의 경험이 이를 입증합니다. 한국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북핵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은 북미 관계에 있습니다.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하려면 할수록 꼬이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며 북미 관계, 평화협정 등 근원적 해결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북핵 문제에서 한국의 가장 큰 역할이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세현 : 남한이 역할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물론 진 교수 말대로 북핵 문제는 북미 간 문제입니다. 그런데 1,2,3차 북핵 위기가 각각 양상이 좀 다릅니다.

1차 때를 보면, 1992년 김용순 당시 북한 국제담당 비서가 뉴욕에서 아놀드 켄터 미국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을 만났습니다. 김 비서는 켄터 차관에게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테니 자신들과 수교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걸 거절했고 이후 1992년 미국은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에 북한이 이를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감행했습니다. 1차 핵위기는 미국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2차 핵 위기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이 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제네바 합의로 인해 추진되던 경수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미국이 북한을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3차 핵 위기인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2009년 오바마 정부 1기 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내놓은 해법의 골자는 9.19 공동성명의 4항이었던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협의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힐러리 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이 세 가지를 해주겠다고 했었죠. 첫째가 미북 수교, 둘째가 평화협정 체결, 셋째가 경제 지원이었습니다. 오바마 정부 출범 초기인 2009년 2월 13일에 처음 이 얘기를 했고, 1차 북 핵실험 이후 7월 23일과 11월 21일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런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비핵개방-3000'을 내세우며 북한의 선(先)비핵화를 요구한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결국 진전을 보지 못했죠. 그러면서 북핵 문제 관련해서 미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게 돼버린 겁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기훈


한국 정부는 미국에서 나오는 '중국 역할론'에 의존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사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 역할론이 아닌 '한국 역할론'이 나와야 하고, 북한의 선(先)행동이 아닌 미국의 선행동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북한에 회담에 나오면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받으면 한국이 남북 간 대화를 통해서 북한을 6자회담에 나오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과거 6자회담 제안은 미국이 했지만 이를 성사시킨 것은 한국이었습니다. 9.19 공동성명이 나올 때 남북 대화가 잘 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긴밀한 남북 관계를 통해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나올 수 있도록 한국이 배후에서 열심히 노력한 겁니다.

한국 역할론은 북한이 이른바 '핵 카드'로 받아내려는 반대급부를 한국이 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국이 선행동을 하도록, 대중 압박 정책의 일환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이 이 강도를 줄이도록 설득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국이 해야 할 책임은 미국의 대북 압박 강도를 낮추고 그걸 가지고 북한을 설득해서 "자, 우리가 미국을 이 정도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너희도 그렇게 악만 쓰지 말고 타협적으로 문제를 풀자"라고 말하고, 중국한테는 "우리가 이 정도 해놨으니까 너희가 의장국으로서 역할을 해라"라고 말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이후 박근혜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드 배치 협의를 발표했고 개성공단을 중단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진징이 : 개성공단 폐쇄를 두고 북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는데,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밑바탕에 북한을 끝장내겠다는 의지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북한의 '폭정 종식'을 선언한 의지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북한을 대화 대상이 아니라 쓰러뜨려야 하는 상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드러낸 셈입니다. 한쪽으로는 무너뜨리려 하며 다른 한쪽으로는 핵을 포기하라는 식인데 북한이 듣겠습니까?

▲ 지난 3월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8차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폭정을 중지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북핵 문제는 결국은 미국이 나서서 풀어야 합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을 중국이 이뤄줄 수 없습니다. 북미 수교는 말할 것도 없구요. 북한의 안보 안정도 중국이 보장해줄 수는 없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하기 어려운 원인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왜 이렇게 나올까요? 한반도 핵 문제가 미국의 전략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북한으로 시작되는 한반도 긴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아태 재균형' 정책이 가능했던 겁니다.

북핵은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냉전이 종식된 후 생긴 힘의 불균형과 공백을 메우는 역할, 또 하나는 북한의 안보를 지키는 역할, 마지막으로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한 카드로서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세 가지 기능이 역기능으로 전환돼버렸습니다. 북핵이 북한의 안보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로, 미국과 대결로 나아가는 요소로, 나아가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요소로 등장했습니다. 한국은 북핵을 남북 간 문제로 보지만 이미 북핵은 그 자체를 훨씬 초월하여 제반 동북아 문제로 부상했습니다.

다른 한 시각에서 볼 때 북핵 문제는 북한 문제의 한 부분입니다. 북핵에만 '올인'해서 해결이 안 되면 이제는 사고방식을 바꾸어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남북관계의 다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현 정부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가 아닌 무너뜨려야 하는 폭정 집단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통일 대박론'도 결국 북한이 무너지면 접수한다는 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모두 처음부터 북한을 접수하면 되는 상대로 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각각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일단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북한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장성택의 처형 이후, 김정은이 장성택까지 죽이는 것을 보면 저 체제도 끝장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한국이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나서서 북한을 더 강하게 압박하면 북한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기대가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정기훈

그런데 한국의 대북정책이 정말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지향하고 동경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은 동독의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박근혜 정부가 하는 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대북 제재를 피부로 느끼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이 김정은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한국에 대한 적개심이 커질 수밖에 없고요. 그렇게 되면 통일이 되더라도 다시 분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북한 급변 사태나 붕괴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문제는 대북 정책이 북한의 "붕괴"라는 가설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실패한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박근혜 정부, 북한의 영속 도와주고 있어

프레시안 : 이번 총선을 봐도 그렇고, 남북 문제가 정치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남북 문제의 사활적인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는 북핵 문제를 남한에 대한 안보 위협으로만 보고, 동북아 시각에서 보는 정치 지도자가 거의 없습니다. 이것도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진징이 :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받아든 성적표를 보면 남북 관계를 통해 뭔가 잘했어야 했던 거 아닌가 싶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이 정부의 성패는 남북 관계에 달렸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의 뿌리는 남북관계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보충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관계와 남북 국내 정치가 선순환을 이루어야 하는데, 남북 관계가 국내 정치에 악용되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기회, 공간, 비전은 남북 관계에서 나옵니다. 북한과 '제로섬' 게임을 하면 영원히 끝이 없습니다. 남북 관계는 결국 공생·공멸의 관계입니다.

정세현 : 남북 관계를 잘 풀어나가면 군사적 긴장을 줄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민생 쪽으로 예산이 투입될 수 있습니다.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는, 돈이 나오는 원리가 있는데 이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처럼 가는 겁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관계는 안정화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진징이 : 남북 관계는 경제로 풀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수령 유일 지도체제'인데, 시장 경제가 확산되면 북한 사람들도 돈에 충성하게 됩니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이른바 '돈 맛'을 알게 되고, 시장경제에 충성하면 사회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북한과 교류하고 북한에 시장경제 요소를 주입시켜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적개심만 키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세현 :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겉으로는 북한을 망하게 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영속을 도와주고 있는 셈입니다. 북한이 죽지도 못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한반도, 결국 내년 한국 대선에 달렸다

프레시안 : 미국 대선이 올해 연말에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당선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런데 미국 대선이 북핵 및 동북아와 관련된 미국 정부의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기훈
정세현 :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인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대북 정책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의 문제가 있는데,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힘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1993~94년의 중국은 무시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클린턴 정부는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고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NPT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기대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네바 기본 합의만 봐도 그렇습니다. 당시 이 합의는 김일성 주석 사후에 만들어졌습니다. 미국은 46억 달러의 공사를 보장해놓고 남한에 70%의 자금을 대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어차피 북한이 망하면 너희(남한)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상을 했는데 그 이후에 한국에 정권 교체가 벌어지면서 김대중 정부 집권 이후 경수로 사업이 본격화됐습니다. 그 때 남북 관계가 좋았고, 미국을 설득하면서 넘어갔습니다. 한중 관계도 좋았고요.

그런데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습니다. 또 당시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2013년 시진핑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09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60주년 기념식에서 중화부흥을 선언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을 언급했고 태평양이 충분히 넓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는 카드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러한 카드를 찾아보니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문제보다도 훨씬 유용했던 것이 북핵이었습니다. 다른 문제들에 비해 국제적인 명분도 확실하게 챙겨갈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따라서 힐러리 클린턴이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해나가려면 북핵 문제에 있어서 우위를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다음 정부가 과연 북핵 문제를 해결할지, 아니면 오바마 정부처럼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북핵을 쓸 것인지는 지금으로써는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임 시절인 2009년 수교와 평화협정 문제를 앞세워서 북핵을 해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 기대를 걸었지만 지금은 그 때와 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8년 동안 중국의 위상이 계속 높아졌기 때문에 수교와 평화협정 문제를 묶어서 해결하려 했던 힐러리의 입장이 그대로 유지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진징이 : 미국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나와도 중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힘겨루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상호 어떤 자리매김을 하는가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일환의 하나로 한반도 정책 변화가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오히려 내년 한국 대선 결과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중지를 집요하게 요구해오고 있고 중국도 이를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미 군사 훈련이 이제는 하나의 산업이 돼서 미국이 절대 중단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에 이야기를 꺼내기도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북핵 문제 해결도 힘들어집니다. 훈련이 군산복합체에게는 일종의 무기 전시장, 박람회장 같이 돼버렸다고 합니다. 미국으로서는 훈련을 진행하는 것에 전략적·경제적인 이점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설득하려는 나라가 없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경쟁 관계이기 때문에 앞장설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 문제에서도 남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정기훈

정세현 :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가장 우선순위는 중국입니다. 대북 정책은 한참 아래에 있습니다. 북핵 문제가 미국에게 우선순위가 별로 높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대통령이 작심을 하고 미국 대통령을 끈질기게 설득하면, 한국이 하자는대로 미국을 끌고 올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중 정책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은 한국의 요구대로 남북관계를 밀어줄 수도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한국에게는 상당한 플러스가 되는 겁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끝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틈바구니에서도 남북 간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은 피할 수 있습니다.

진징이 :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지정학적 피해를 본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고래싸움에 시달리는 것은 남북으로 분단되었 때문입니다. 분단됐기 때문에 강대국들이 개입할 수 있는 빌미와 구실을 제공하는 겁니다.

강대국들의 전략이 한반도에서 갈등과 충돌을 빚는 고리를 끊으려면 남북 관계 개선밖에 없습니다. 남북 관계가 일정 부분 개선되면 한국의 운신 폭도 그만큼 넓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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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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