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굴기(倔起)하는 시대다. 온 세계가 중국을 바라본다. 중국을 학습하고, 중국어를 배운다. 중국의 큰 영향을 받는 나라인 한국이 중국을 학습해야 할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인 중국, 중국인을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기초를 탄탄히 하는 방법의 하나는 한자다. 한자는 중국 문명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중국인의 사고 체계를 담은 그릇이며, 중국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12개 한자로 읽는 중국>(장이칭 지음, 이인호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은 중국 역사를 수놓은 12개 왕조 이름의 의미를 분석하는 특이한 콘셉트의 책이다. 중국사회과학원 교수인 저자가 CCTV의 인문학 프로그램 <백가강단>에서 진행한 강연 '한자의 암호를 해독하라, 중국 왕조의 이름을 중심으로'의 내용을 정리했다.
왜 왕조인가. 중국인은 예부터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황제의 이름은 세상에 공표하고, 백성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할 정도였다. 이를 피휘(避諱)라고 했다. 존귀한 천자의 이름은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었다. 이 정도니 나라 이름을 지을 때도 심사숙고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왕조의 이름은 당대 중국인의 사고를 적극적으로 반영했음이 틀림없다. 왕조의 이름을 지은 이유를 따라가면, 자연스레 현대 중국인의 사고 체계를 추리할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책을 읽기 전에 필히 명심해야 할 내용이 있다. 중국은 대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갖가지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은 저 숱한 민족은 중국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인 저자 역시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여기는 게 좋다. 실제 책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부분인 중국 최초의 왕조 하(夏)나라 국명의 연원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과거 중국인이 오랑캐라 부르며 업신여긴 북방 민족이 본래 화하(華夏)족, 즉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한족과 같은 뿌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 사학계에서 최근 서진(西晉) 이후의 혼란기를 오호십육국이라고 하지 않고 남북조 시대로 부르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오랑캐가 본토에 쳐들어온 혼란의 시기가 아닌, 중국 대륙이 남조와 북조로 쪼개어진 시대라는 의미로 고친 셈이다(당연히 옛 중국인에게 오랑캐 취급을 받았던 한국인이 이 시대를 오호십육국으로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 사학계에서 최근 서진(西晉) 이후의 혼란기를 오호십육국이라고 하지 않고 남북조 시대로 부르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오랑캐가 본토에 쳐들어온 혼란의 시기가 아닌, 중국 대륙이 남조와 북조로 쪼개어진 시대라는 의미로 고친 셈이다(당연히 옛 중국인에게 오랑캐 취급을 받았던 한국인이 이 시대를 오호십육국으로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은 한자의 어원인 갑골문자를 뿌리에 두고, 풍부한 역사서에서 발췌한 개별 한자의 어원을 추적해 하-상-주-진-한-양진(兩晉)-수-당-송-원-명-청으로 이어지는 각 나라의 국명이 어떤 뜻을 지녔는가를 풀이한다(남북조시대를 다룰 때 굳이 남조인 진(晉)나라만 다루고 북위 등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자의 중화 사상을 추정 가능하다).
하(夏)나라는 최근 유적지로 추정되는 궁터 발굴에 성공하면서 역사의 무대에 오른 중국 최초의 세습제 왕조다. 즉, 선양(禪讓)이 아니라 가계도를 따라 왕권을 내리물림한 중국 최초의 국가다. 자연히 중국의 출발점이다.
하(夏)는 여름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갑골문의 어원은 그렇지 않다. 어원은 사람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을 가리킨 말이 아니다. '가운데 지역의 사람'을 뜻했다. 즉, 하나라 건국 당시 夏는 중국인이었다. 서쪽으로 허난 성(河南省, 하남성) 서부와 산시 성(山西省, 산서성) 남부, 동쪽으로 허난 성, 산둥 성(山東省, 산동성)과 허베이 성(河北省, 하북성) 경계, 남쪽으로 후베이 성(湖北省, 호북성), 북쪽으로 허베이 성에 이르는 이른바 '중원' 지역의 사람이 당시 중국인이었다. 당시부터 그들은 이 세계를 세상의 중심이라 여겼다. 그래서 하나라는 중국인의 나라, 곧 세계의 중심 국가였다. 이를 국가명으로 정했다. 중화의 뿌리는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화하족이라는 명칭도 바로 여기서 왔다.
중국 왕조는 사회 최상층의 종교 집단이기도 했다. 종교는 의례의 기틀 위에서 제도화한다. 중국의 왕은 예부터 제사장이었다. 이 기틀을 만든 나라가 상(商)나라, 다른 말로 은(殷)나라다. 중국 사학계에서는 아예 '은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상(商)의 갑골문은 제사를 치르는 탁자를 뜻한다. 따라서 상은 곧 임금을 뜻하는 제(帝)와도 일맥상통하는 단어다. 제(帝) 역시 장작을 쌓아둔 모습에서 따온 단어다. 장작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 이를 주관하는 자가 곧 황제였다. 상나라는 국가 명에 제사의 의미를 담음으로써 이제 확고한 왕권을 만방에 공표했다. 제사의 의미가 강해졌으니 자연히 10개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12개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왕가의 양식이 되었다. 현대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음양오행의 개념을 포함한 이 아이디어를 적극 차용한 상 왕조 지배기는 동아시아 왕조 문화의 기틀을 잡은 시기다.
현대 중국의 명칭인 '차이나(China)'를 세상에 알린 진(秦)나라 역시 강력한 동아시아 문명의 뜻을 국가 명에 품었다. 시황제는 전국 시대의 혼란기를 끝내고 10년 만에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병사를 먹일 군량도 필요했다. 진나라는 혜택을 입은 곳에 자리했다.
진나라는 기원전 900년경 주 효왕이 진비자(秦非子)에게 하사한 땅에서 기원했다. 이곳은 위수(渭水), 곧 황하의 가장 큰 지류가 흐르는 땅이었다. 위수는 간쑤성(甘肅省, 감숙성) 동부에서부터 800리를 흘러 황하 본류로 섞인다. 이 지역은 지금도 중국의 4대 평야로 불리는 '관중(關中) 평야'다.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 서쪽으로는 산관(散關), 남쪽으로 무관(武關), 북쪽으로 금쇄관(金鎖關)이 둘러싼 천혜의 요지다. 진나라는 거대한 평야에서 나오는 막대한 쌀을 외부의 침입을 불허하는 관문으로 보호해 군사를 키웠다. 그 힘으로 대륙을 통일했다.
서평에서는 이 정도로 중국 역대 왕조의 기초 개념이 된 세 가지 국가 명을 소개해도 충분하리라. 현대 중국인이 스스로를 일컫는 한(漢)의 어원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세계와 교류하며 세계적 제국을 꿈꾼 당(唐) 제국의 국가 명은 어디서 왔는지, 왜 금(金) 제국이 청(淸)으로 국가 명을 바꿨는지를 따라가는 건 흥미로운 중국사 여행이자 언어 여행이다.
저자는 중국의 고전을 풍부하게 인용하고, 언어를 분석해 옛 사람의 사고 체계를 되살린다. 단순히 나라 이름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해당 국가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가를 풀어내기도 한다. 지역 명이 아닌, 특정 언어의 뜻을 추구한 최초의 통일 국가 원(元)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책을 보면 현대 중국인의 사상을 피상적이나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음양오행과 같은 동아시아적 사고가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도 실감할 수 있다. 책은 중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주며, 이를 통해 수천 년간 중국 문명권 국가였던 우리를 이해하는 실마리도 준다. 중국을 봄으로써 우리의 역사를 볼 실마리도 얻었다.
책을 보면 현대 중국인의 사상을 피상적이나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음양오행과 같은 동아시아적 사고가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도 실감할 수 있다. 책은 중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주며, 이를 통해 수천 년간 중국 문명권 국가였던 우리를 이해하는 실마리도 준다. 중국을 봄으로써 우리의 역사를 볼 실마리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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