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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 인공호흡 말고 가슴 압박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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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 인공호흡 말고 가슴 압박만 하세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일반인 위한 포괄적인 응급 의료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심장은 산소가 녹아 있는 혈액을 온몸으로 내뿜어주는 펌프 같은 역할을 한다. 심장이 멈추면 산소의 공급도 멈추고, 인간의 생명은 산소 없이 5분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처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심장이 정지되었을 때 시행하는 응급 처치가 '심폐 소생술'이다.

일반인을 위한 심폐 소생술 가이드라인

흔히들 심폐 소생술이라 하면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응급 처치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외부에서 심장을 압축시켜 강제로 혈액을 순환시키는 처치이다. 가슴 압박으로 발생되는, 정상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불과한 혈액 순환만으로도 뇌의 손상을 지연시키고 심장이 다시 뛰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심장마비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심폐 소생술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각국이 이를 위한 교육이나 홍보 등 여러 노력을 진행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이드라인 제정이다. 전문가들이 표준화된 심폐 소생술 시행 방법을 결정하고, 이를 일선 현장에 권장해 심폐 소생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

유사한 노력이 국내에서도 진행 중이다. 대한심폐소생협회(KACPR)가 국내 실정에 맞는 심폐 소생술 가이드라인을 지난 2006년 제정했고 이후 5년 주기로 개정하고 있다. 올해도 대한심폐소생협회는 새로운 '심폐 소생술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우선 심장 질환에 대한 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기존의 가이드라인에서는 의학적 치료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했었다. 지난 십수 년간 국내 심장마비 환자의 생존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심장마비 환자 중 심폐 소생술을 통해 생존하는 절대적인 비율은 여전히 낮다.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심장마비의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일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내용이 적극 반영되었다.

▲ 소방관이 초등학생에게 심폐 소생술을 가르치고 있다. ⓒ연합뉴스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119로 신고하세요

새로운 가이드라인에선 신속한 119 신고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기존에는 쓰러진 사람의 반응과 호흡을 확인 후 119에 신고할 것을 권장하였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호흡을 관찰하고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행위이다. 그 결과 심장마비 상황에 대한 인지가 늦어져 가슴 압박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 어깨를 두드리면서 "괜찮으세요?"라고 소리치고, 이에 반응이 없다면 호흡 확인 과정 없이 바로 119에 신고하라고 권고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119에 먼저 전화 신고를 권고한 점도 변화이다. 기존에는 소아에게 발생한 심장마비의 경우 2분간 심폐 소생술을 먼저 시행한 다음에 응급 의료에 신고하도록 권고하였다. 이는 소아의 심장마비는 성인과 달리 숨을 쉬지 못하여 발생한 심장마비가 가장 흔하므로, 신속한 인공호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의학적 근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소아의 경우 성인과 다르게 심폐 소생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교육하기 매우 어렵다. 이제는 거의 모든 국민이 휴대폰을 보유하고 있어 즉시 신고도 가능하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소아 역시 성인과 동일하게 신속한 119 신고를 우선하도록 권장한다.

119에서 신고를 받는 응급 의료 전화 상담원(Dispatcher)의 역할도 강조되었다. 응급 의료 전화 상담원은 심장마비 환자의 초기 응급 처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성원으로, 심장마비 환자와 신고자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응급 의료 전화 상담원은 신고자를 통해서 환자의 의식과 호흡 양상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장마비 상태 여부를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심장마비 상태로 판단될 경우 신고자에게 '전화 도움 심폐 소생술'을 지도하여 119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인공호흡 없이 가슴 압박만 시행하도록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가슴 압박만을 시행하는 '가슴 압박 소생술(hands-only CPR)'을 제안한 점이다. 최근 연구들은 심장마비 시간이 길지 않을 경우 가슴 압박만을 시행한 경우와 인공호흡과 가슴 압박을 동시에 시행한 경우에 생존율의 차이가 없다고 보고한다.

또한 일반인은 심폐 소생술 교육을 받은 후에도 인공호흡을 정확히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인공호흡하기를 꺼려해 아예 심폐 소생술을 시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에 비해서 '가슴 압박 소생술'은 인공호흡을 하지 않기에 일반인도 쉽게 시행할 수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일반인 구조자의 경우 기존의 심폐 소생술 대신 '가슴 압박 소생술'을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정리하면, 새로운 가이드라인은 적용 가능성에 중점을 두었다. 높은 휴대폰 보급률을 바탕으로 신속한 119 신고의 중요성과 119 응급 의료 전화 상담원의 역할을 강조하고, 소아의 경우도 성인과 동일하게 '119 신고 우선'을 적용했다. 또한 일반인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호흡 확인이나 인공호흡은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사실, 심폐 소생술 가이드라인은 적용 가능성이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가이드라인은 다른 국가의 심폐 소생술 가이드라인에 비하여 완성도가 높아 보인다. 국내의 여러 사회적 요인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제정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수 년 동안 정체 상태인 심장마비 환자의 생존율이 다시 오르기 기대한다.

언제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걸까?

응급 의료체계 전반에서 사용되는 가이드라인은 심폐 소생술 한 가지만 있을까? 심폐 소생술 가이드라인만이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만, 신속하고 표준화된 처치를 중시하고, 일반인의 직간접적 참여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응급 의료 체계의 특성상 여러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국내에서도 표준 지침, 운영 지침, 업무 지침 등 수많은 '지침'이 이미 공표되어 응급 의료 체계 전반에서 사용 중이다. 지침의 수가 너무도 많아서 관련 종사자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지침들은 적용 대상이 의료인만으로 한정되어 있고, 내용도 전문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일반인 입장에서 응급 의료 체계를 어떻게 이용할지, 어떤 방식으로 응급 의료 체계에 참여할지,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의 부재는 응급 의료 체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연합뉴스

대표적인 예로 119 신고 과정을 보자. 119 신고는 응급 의료 체계를 최초로 활성화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적절한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체 응급 의료 체계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119에 신고를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시민의 대다수가 막연하게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119에 신고하면 된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관련 규정을 뒤져봐도,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있는 '응급 환자는 십 수 가지의 응급 증상이 있는 자를 말한다.'라는 언급이 전부다.

그 결과 119 신고의 기준이 개인마다 다르게 되었다. 극심한 가슴 통증이나 의식 저하 등의 이유로 119 구급대를 요청하는 경우가 다수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단순 감기 증상을 이유로 병원 이송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 술에 취한 일행을 무조건 병원에 데리고 가자는 사람도 있다.

기준이 없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다. 구금자의 찰과상 소독을 위해서 매번 119 구급대를 요청하는 경찰서도 있고, 입소자의 외래 진료를 위해서 매달 이송을 요청하는 요양시설도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119 구급대가 이를 제한할 수단은 거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 약 처방이나 입원 대기 등 응급실 본연의 목적과 상관없이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 질병의 위중한 정도와 상관없이 대학병원 응급실로만 몰리는 환자들 등 적절한 가이드라인의 부재가 전체 응급 의료 체계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이런 환경에서는 응급 의료 서비스의 표준화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도 없고,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의 몫이다. (☞관련 기사 : 응급실 찾는 경증 환자들, 도대체 왜?)

변화한 응급 의료 체계에 맞는 가이드라인 필요

응급 의료 체계는 국민의 건강 및 안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종의 사회복지 체계이다. 효과적인 전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반인, 119 구급대, 의료 기관 등 각 주체별 조건에 맞게 서비스의 종류를 설계해야 한다. 윤리, 문화, 교육수준, 법, 의료 환경 등 각종 사회적 요건도 고려되어야 한다. 응급 의료 체계 운영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내 응급 의료 체계는 괄목할 만하게 성장하였다.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첫 선을 보였던 119 구급대가 이제는 전국 어디서든 당연히 있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 몇몇 병원에서 수련의(인턴) 중심으로 운영되던 응급실이 지금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항시 근무하는 41개의 권역 응급 의료 센터와 101개의 지역 응급 의료 센터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화된 응급 의료 체계에 조응하는 체계적인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요하다.

(김대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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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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