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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고, 맞고, 성희롱…환자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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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욕 먹고, 맞고, 성희롱…환자가 무섭다

[토론회] 정신 보건 종사자의 외침에 박원순은 응답할까?

#1. "선생님이랑 섹스를 해야 내 병이 나아요." 조현병(정신분열병)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던 대상자가 혼자 근무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을 찾아왔다. "우리는 연인 사이가 아니며 나는 당신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설득을 해 봐도, 대상자는 막무가내였다.

책으로 만들어져 있는, 센터 매뉴얼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았으니 우선 사무실부터 정리하고 나가겠다"고 설득하고 일단 대상자를 내보냈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112와 119, 보건소까지 모든 곳에 전화를 했다. 우리의 위험성에 대해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2. 정신보건전문요원으로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입사한 지 3개월쯤 지났을 때, 초기 면담을 위해 센터를 찾아 온 50대 남자가 있었다. 담당 선생님도 나와 함께 입사한 1년차 요원이었다. 상담 도중 갑자기 동료 선생님이 창백해진 얼굴로 상담실을 나왔다. 대상자 혼자 상담실에 있는 것이 걱정돼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실을 바라봤다.

상담실 유리창 넘어 대상자는 바지와 속옷까지 벗은 채 자위 행위를 하고 있었다.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괜찮냐는 동료 선생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나중엔 수치스러웠고 기분이 매우 나쁘기도 하면서 무서웠다. 그날 이후 비슷한 체격의 남성 뒷모습만 봐도 당시 상황이 생각나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졌다.

#3. 2년 전 나는 임신 중이었다. 센터에서 대상자들과 함께하는 송년회 자리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던 회원도 참석했다. 평소 화를 내지 않던 조용한 회원이었는데, 갑자기 송년회 장소였던 뷔페에 비치된 와인 병들을 무단으로 가져가려다 식당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쫓아가 와인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그 회원의 행동을 제지했더니, 갑자기 그 회원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여러 차례 때리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그날 일을 남편에게 얘기할 수 있었다. 남편은 당장 그만두라며 화를 냈다. 지금도 남편은 말한다. "전화로 욕도 자주 듣고, 이유 없이 소리 지르는 분들과 웃으며 대화해야 하는 그런 직업이 뭐가 좋냐"고, "심지어 맞고 다니면서도 이 일을 계속 할 거냐"고….

#4. 조현병을 앓고 있는 17세 여자 대상자는 담배를 혀로 끄고,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들의 다리를 다 부러뜨리고 죽이고 방에 불을 지르는 소녀였다. 갑자기 옷을 벗고 차도로 뛰어들던 그 대상자에게는 아버지밖에는 가족이 없었다. 매일 매일 그 집에 찾아가 입원 등 치료를 받으라고 설득했지만, 대상자도 아버지도 막무가내였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한지 두달쯤 지난 어느날, 그 소녀의 아버지가 센터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센터 입구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싫다는데 왜 귀찮게 하냐. 우리 딸을 그냥 놔둬라. 다 불질러 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는 센터 입구에 신나를 뿌리기 시작했다. 경찰을 불러서야 상황이 종료됐다.

'서울시 정신 보건 사업의 질 제고와 공공성 확충 및 종사자 노동 조건 개선 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나온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의 증언들이다. 서울시의 광역형 2곳, 각 자치구 25곳의 총 27곳에서 일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의 노동조건 실태와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25일 마련됐다.

서울시의 정신보건 사업은 20년 동안 진행돼 왔지만, 현재 358명에 달하는 종사자들이 어떤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조사된 바가 없다. 이는 서울시가 대부분의 센터를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고 있는 환경의 탓도 크다. (☞관련 기사 : "상담자 자살했는데 또 '자살 상담'…괴롭다")

일 하다 68%가 폭언 경험, 10%는 폭행 당하는 직업…평균 근속은 3.9년 불과

이날 토론회에서 소개된 증언들은 아주 특수한 케이스라고 보기는 힘들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지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약 2주간 센터 노동자 252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업무 수행 과정에서 67.9%가 폭언을 경험했고, 9.8%가 폭행을 당했으며, 58.3%가 신변 위협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당한 경험은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92.2%)에 비해 다소 낮지만, 실질적인 폭행의 비율은 다산콜센터(3.5%)의 3배 가까이 된다. 특히 대상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비율은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 종사자의 25.9%가 경험해, 서울시 공공부문(19.3%) 평균이나 보건의료노동자(5.3%), 사회복지사(6.4%)보다 높다.

종사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은 3.9년이었다. 이는 2012년 조사에 비해 1.2년 늘어난 상태지만, 동종업계 평균 근속 기간이 5.8년인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짧은 수치다.

직장 생활 만족도 실태 조사를 보면, 전체적으로는 43.8점으로 나타나 서울시 공공부문 종사자의 45.5점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고용 안정성 부분에 대한 만족도는 17.5점으로, 서울시 공공부문 종사자(33.2점)들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1년 내 이직을 희망하는 비율은 31.3%로 2012년 조사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나, 김종진 연구위원은 "정신건강증진센터 종사자의 이직 문제는 유사 전문직과 비교하면 몇 가지 함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3교대 사업장인 병원 사업장의 보건의료 노동자(62.5%)와 비교하면 적은 비율이지만, 사회복지사의 이직 의향(22.3%)과 비교하면 여전히 10% 포인트 높은 수준인 것이다.

특히 이직 의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 동종업계로의 이직을 희망하는 비율은 46.6%로 사회복지사(66.2%)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정신건강 관련 전문직이라는 '직종별 노동 시장'이 형성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동종업계로 이직하지 않으려는 부정적 경향이 확인된다"고 분석했다.

상근하지 않는 센터장과 비정규직인 종사자들…"개인 사업자 위탁은 편법"

폭력과 폭언, 성희롱에 수시로 노출돼 있는데다가 이들은 고용마저 불안정하다. 서울시 정신보건증진센터 27곳 가운데 22곳이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는 곳은 물론이고, 서울시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센터 역시 대부분의 종사자가 비정규직이다.

정신보건간호사로 은평구정신건강증신센터 팀장인 손상희 씨는 "센터에 와서 결혼 6년 만에 어렵게 임신을 했고 3번이나 유산의 위험성이 있어서 입원 치료를 하면서도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일이 너무 좋았고, 그만두면 다시는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버텼다"고 말했다. 손 씨는 "그런데 최근 들어 자꾸 고민이 되는 부분은 처음 센터 입사 했을 때부터 하던 고민이 지금도 지속된다는 것"이라며 "나는 비정규직이고 고용을 보장받지 못한 채 진정 좋아하지 않은면 할 수 없는 이 일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버텨 왔던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단순 민간 위탁이 아니라 각 센터의 수탁 기관은 위탁 운영 기관에 속한 개인이다. 서울시에는 심지어 단 한 명의 정신보건전문요원 출신 센터장도 없다. 상근하는 센터장이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센터장들이 별도 기관에 소속된 직원이기 때문이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각 센터 수탁 기관이 법인 및 기관이 아닌, 위탁 운영 기관의 개인(정신과 전문의)이 독립 개인 사업자로 수탁하는 형태인데 이는 사실상 현재의 민간 위탁을 재위탁하지 못하도록 한 서울시 민간 위탁 관련 조례 운영 규정과 지침을 어긴 편법적 경영 문제로도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또 "법인이나 기관이 아닌 개인 사업자로 위탁을 하는 것은 고용 불안정성을 더 높인다"고 지적했다.

"20년 동안 얹어진 사업은 셀 수 없는데 종사자 인원은 똑같다"

고용 형태도 안정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센터장을 맡았던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첫째로 인력 투입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백종우 교수는 12년 간 서울시의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년 전 처음 시작한 서울시의 정신보건 사업에 그동안 얹어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우울증, 중독, 자살, 소아 등 추가된 사업은 많은데 종사자 인원은 2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백상숙 연세대학교 의료법윤리학 연구원도 호주의 사례와 서울시의 사례를 비교해 우리의 인력 부족 실태를 평가했다. 백상숙 연구원은 "인구 10만 명당 정신보건의료인이 호주는 131명으로 그 중 46명이 지역 기반 정신 보건 서비스에 종사하는 데 반해, 서울의 지역기반 정신보건의료인은 인구 10만 명당 5.1명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서울 시민의 30.6%가 일상 생활 중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서울 시민 중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우울감을 경험한 비율도 8.1%나 된다. 하지만 서울시의 정신 보건 예산과 비중은 2014년 대비 2015년에 오히려 0.9%포인트 줄어들었다.

이런 문제점은 서울시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온 박유미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정신 건강의 예방과 치료, 지역사회 재활과 사례 관리의 연계는 앞으로 어떤 문제보다 크게 다뤄질 것"이라며 "예산과 인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유미 과장은 "지금까지는 인프라 구축, 사업 지침 설계,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됐다면 앞으로는 당사자와 종사자, 전체 서울 시민에게까지 퍼져 나가는 사업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체계 재편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박 과장은 그를 위해서는 중앙 정부 차원의 국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정된 서울시의 예산만으로 당장 27개 센터의 종사자 처우 개선이나 인력 확충 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박원순 시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중앙 정부에게 공을 넘기고 있는 모양새지만, 기본적으로 서울시 자체의 결단이 필요한 상태라는 데는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었다.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위원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사업이 추가되면 그에 걸맞게 예산도 확대되고 인력도 확대되고, 행정 정책이나 체계도 변화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정신 보건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공급체계가 못 따라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일정 정도는 행정적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시정신보건지부는 27개 센터장들을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계획이다. 문제는 각 센터장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과 권한이 사실상 없다는 데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박태주 서울시 노사민정 모델 위원장이 지속적으로 "박원순 시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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