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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블랙 호크 헬기 보유한 中 인민해방군, 전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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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블랙 호크 헬기 보유한 中 인민해방군, 전투기는?

[김태호의 중국 군사 세계] 중국군의 러시아 첨단무기

중국군은 어떤 첨단 무기와 전력을 갖고 있을까? 중국은 왜 외국의 무기 체계와 군사 기술을 도입할까? 이는 중국군의 전력과 취약점 그리고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안보에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가?

이 글은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다만, 몇 가지 유의할 사항이 있다.

첫째, 대부분의 국가 간 무기, 군사 기술 이전은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특히, 중국의 경우는 정부가 공개한 정보 외에는 모두 '국가 기밀'로 분류된다. 둘째, 무기 거래가 비공개이다 보니 이에 대한 외국의 오보(誤報)와 억측이 난무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계약' 시기와 '이전' 시기 간의 간극이 있는데, 이를 혼돈할 경우 수량이 이중 산정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복수의 신뢰도가 높은 자료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중국 군사 세계'에서는 중국군의 최첨단 전력을 구성하고 있는 러시아제(製) 무기 체계, 플랫폼, 군사 기술 등을 공중, 해상, 지상으로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다. 집필의 역점을 도입 내역뿐만 아니라 그 배경에 두어 독자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다만, 동 분야는 중-러 군사 협력 중에서도 조사하기가 어려운 문제에 속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전문가가 많지 않다. 그러나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우리나라 관세청의 표어와 같은 자세로 임하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징수한다!"

중국의 외국/러시아 무기 도입 배경

중국이 최초로 외국의 무기를 대량으로 도입하고 생산한 시점은 18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편 전쟁에서 패배한 후 청조와 자강(自强) 운동의 지도자들은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오로지 '우수한 비밀 무기'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중국도 이 같은 무기만 있으면 외세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지속되는 전쟁 패배로 인해 무기 외에도 훈련 강화, 군수 공장 설립, 군사 교관 채용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오래된 역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당시 서방 및 일본 제국주의 국가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무기 체계가 중국에 유입되었고, 이는 중국군의 무기 발달사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다 본격적인 외국 무기의 유입은 공산당 창당 연도인 1921년부터인데, 특히 1945년 일본의 패망 및 국민당군과의 내전 기간(1946~1949년)에 이뤄졌다. 1949년 10월 1일 국가 설립 당시 중국군이 노획한 무기 및 장비는 소총 316만정, 기관총 32만정, 야포 5만5000문, 전차 622대, 장갑차 389대, 군용기 189대 그리고 소형 함정 200척이었다.

숫자로는 상당한 것처럼 보이나 거의 대부분이 심한 노후화, 구형화를 겪고 있었고,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특정 무기 체계 및 부품의 제조국이 워낙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949년 10월 1일 개국 축하 군사 퍼레이드에 대해 미국의 한 군사 전문가는 "오랫동안 보기 어려운 미 군수품(hardware)의 대규모 공공 전시다"라고 논평한 바 있다.

사실, 동 퍼레이드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한 가지만 소개하면 중국 공군은 1949년 11월 11일을 공식 창립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동 퍼레이드의 축하 비행 당시 중국 공군에는 조종사가 없었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마련한 것이 포로로 잡힌 국민당군 조종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조종사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기는 장착되지 않았다. 필자가 추정컨대 분명 조종사 가족들이 볼모로 잡혀 있었을 것이다.

국민당군과의 내전 기간 중에도 미국은 공산당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무위로 끝났고, 당시 세계 정세의 양극화로 인해 중국은 소련에의 '일변도(一邊倒)'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국가 성립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발생한 한반도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중국인민지원군'의 미명 하에 중국이 개입했는데, 당시 소련의 MiG-15기를 포함한 군수 물자 지원은 무상이 아니라 임대 형식으로 대여했기 때문에 전쟁 후 중국은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약 2년 전에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가 전투기를 배경으로 여군 조종사와 찍은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그 전투기가 바로 MiG-15기이다! 조종사 자신보다 훨씬 더 '연로'한 전투기를 모는 것이 어떻게 자부심으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인지의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전투기는 실전에서는 '날아다니는 관'에 가까운 것이다.

1950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체결된 '중-소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으로 인해 1950년대 중국과 소련은 '밀월(honeymoon)' 관계를 유지했고, 소련은 중국에 군사 교관 파견, 중공업 및 군수 공업 청사진 및 엔지니어 외에도 전투기(MiG-19(중국형 J-6), MiG-21(J-7), 잠수함(로미오 급), 미사일 등을 제공했다. 이후 중소 분쟁 기간 중 소련 측은 그 기간 동안 중국 내에 있는 256개의 기간 산업 공장을 건설하거나 설계도면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베이징 외곽에 있는 중국 항공 박물관에 있는 J-6 전투기. ⓒwikimedia.org

문제는 1950년대 소련과의 군사 협력 하에서도 중국이 국내 군수 산업 기반 구축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의 군수 산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1959~1960년 중국 내 소련 군사 고문 및 기술자의 완전 철수 및 중-소 분쟁의 시작으로 인해 중국은 자력으로 현대화된 무기 체계를 생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당시 중국 지도부는 초보적 소련 방위 산업을 모두 폐기하고 다른 기반으로 새로 시작할 의도가 있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옵션이었다. 왜냐하면 이를 지원할 국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남은 방법은 초보적 소련식 방위 산업 기반의 활용, 간헐적으로 획득한 외국 무기 체계의 '역공학(reverse-engineering)', 자체 개발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것뿐이었다.

1970년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은 제한적이나마 미국의 무기 체계(예, S-70 블랙 호크 헬기) 및 기술 지원(J-8 전투기 개량)을 받을 수 있었으나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로 인해 서방의 경제, 외교, 군사적 제재를 받게 되었다. 중국은 서방, 특히 미국의 군사 제재로 인해 군 현대화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소련/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모색하게 되었다. 참고적으로 천안문 사태로 인한 중국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군사 제재는 현재(2016년)까지도 유효하다.

무기 체계는 '동구형'과 '서구형'으로 분류하는데, 동구형 무기 체계는 단순 무기의 다량 사용, 조작이 간단하고 실전 내구성이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또 무기 발전도 점진적이며 지상 무기가 해상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소련/러시아, 동유럽, 중국 그리고 북한의 무기 체계는 동구형으로 분류된다.

이에 비해 서구형은 무기 체계 자체가 디지털화되고 조작 및 정비가 복잡하다. 무기 개발도 점진적이 아닌 혁명적 발전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비교적 고가이고 디자인도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다. 특정 임무 및 목적을 위한 체계로서 군종이나 세대 간 혼합 사용이 아닌 전체 체계의 활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 서유럽, 일본 및 한국의 무기 체계는 서구형이다.

상기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중국의 소련/러시아제 첨단 무기 도입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또 동 기간 중 중국과 소련/러시아 내에서는 양국 간 군사 협력에 대한 회의론과 신중론이 제기되었으나 가장 근본적으로 러시아 국력의 쇠퇴 그리고 중국의 부상은 양국 간 군사 협력 그리고 무기 이전을 촉진시키는 거시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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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현대중국연구소장 겸 한림대만연구소장을 맡고 있고, 국방부와 해군의 자문위원이다. SSCI 등재지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3事(人事, 外事, 軍事)이다. "Sino-ROK Relations at a Crossroads" "China's Anti-Access Strategy and Regional Contingencies" 등 150여 편의 논문이 있고,<동아시아 주요 해양 분쟁과 중국의 군사력>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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