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타이완)의 전략적 중요성과 함께 고려해야 할 점은 한국과 대만(중화민국) 관계의 역사성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대학원에 대만 전공 석사 과정이 있는데, 입시 면접 때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한 최초의 국가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미국이라 대답한다. 그러나 정답은 중화민국(즉, 대만)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1919년) 이후 계속된 독립군의 활동을 지원하고, 한국 전쟁 시 연합군에 물자를 지원한 '전우국가(戰友國家, 공식명임)'는 모두 중화민국이다. 당시는 중화민국이 '중국'이었다.
1971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로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었고, 미국과는 1979년 1월 공식 수교 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1992년 8월 24일 외교 관계를 체결했고, 중화민국(대만)과는 그 전날 단교했다.
간략히 말해, 중국의 입장은 중화인민공화국(PRC)이 '중국'을 대표하기 때문에 중화민국(ROC)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반면, 중화민국(대만)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세워진 아시아 최초의 공화정으로서, 1949년 성립한 중화인민공화국(즉, 현재의 '중국')이라는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대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정체성 논쟁은 '92 합의(九二共識)'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대만의 현재적 중요성은?
이 이슈에 대해 보다 균형적이고 정확한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한중, 한-대만 간의 주요 통계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2014년 2354억 달러, 2015년 2274억 달러)이고, 대만은 한국의 제7위 교역 대상국(2014년 308억 달러, 2015년 287억 달러)이다. 작년 한국은 중국과 469억 달러(2014년 552억 달러)의 교역 흑자를, 대만과는 47억 달러(2014년 6억 달러)의 교역 적자를 기록했다.
투자는 신고액 기준으로 2015년 한국에 대한 중국의 투자액 20억 달러, 중국에 대한 한국의 투자액 43억 달러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에 대한 대만의 투자액은 약 2억 달러, 대만에 대한 한국의 투자액 4400만 달러로 모두 크지 않은 규모다. 2015년 한국의 전체 투자 중 중국은 미국에 이어 2위이며, 대만은 53위이나 전체 투자 금액은 역시 크지 않다.
한국과 중국 간의 인적 교류, 즉 상호 방문은 2014년 이후 1000만 명을 넘고 있는데, 2015년 1042만 명, 2014년 1031만 명이었다. 한국과 대만 간의 상호 방문 또한 2014년 이후 100만 명을 넘고 있는데, 2015년 118만 명, 2014년 117만 명이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대만은 단순 비교 시 통상, 투자, 방문 분야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추이는 중국과 대만 간의 인구(약 59배, 13억5000만 명 대(對) 2300만 명), 면적(약 330배), 그리고 경제 규모(세계 2위, 세계 18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와 같은 거시 통계는 대부분의 경우 세부적, 질적 측면 및 변화 추이를 반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중 교역은 동 기간 중 총 교역액과 수출이 모두 감소하고, 교역 흑자액 또한 크게 하락(약 83억 달러)했다. 대만과의 교역도 금액면에서 약 21억 달러 감소했는데 이는 수출 감소와 수입 증가에 기인하고 있다. 참고적으로 한국의 중국, 대만 수출/수입 제1품목은 반도체인데, 반도체는 한국의 대만 수출 중 28%, 수입 중 무려 7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遊客, 요우커)에 대한 국내 업계 및 지방자치단체의 기대는 잘 알려져 있는데, 작년의 경우 메르스 사태로 인해 소폭의 감소세(약 15만 명)를 보였다. 이에 비해 방중 한국인은 2014년 418만 명에서 444만 명으로 26만 명이 증가했다. 같은 이유로 한국을 방문한 대만인은 2014년 64만 명에서 2015년 52만 명으로 12만 명이 감소했으나, 대만을 방문한 한국인은 2014년 53만 명에서 2015년 66만 명으로 13만 명이 증가했다. 상기한 중국과 대만의 숫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방문자 수가 유사한 것은 비율(%) 상 큰 차이를 의미한다.
우리의 대만 정책, 무엇을 놓치고 있나?
대만은 비교적 적은 인구와 협소한 국토를 기반으로 세계 17위/18위의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에 200여개 국가가 있음을 고려할 때 상당한 경쟁력이다. 그 간의 민주주의 발전과 사회 안정은 모범적이며, 의료 보험, 12년 국민 교육 제도,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은 세계에서 최상위 수준이다. 이 같은 평가는 대만의 국가 경쟁력이 매년 세계 10위 내에 들고 있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 부분에서는 한국을 앞서고 있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 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거하여 대만과는 "최고 수준의 비공식 관계 유지"에 합의했다. 이는 실제적, 현실적으로 한국-대만 관계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같은 조건(즉, '하나의 중국')하에서 미국, 일본, 아세안(ASEAN)은 중국과 수교하였으나 적어도 우리보다는 더 유연하고 실익을 얻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미국은 예외주의 국가로서 국내법인 '대만관계법(TRA)'을 활용하고,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지속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의회 및 경제·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한 접촉을 하고 있고, 양측 간 우호적 감정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참고로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최대 지원국은 대만이었고 금액으로 무려 2260억 원이었다.
아세안 10개국과 대만 간의 관계를 일반화 하기는 어려우나 소위 '내적 다양성과 외적 단결'이라는 특성을 활용하고 있다. 일부 조사에 의하면 2009~2011년 기간 중 대만을 방문한 아세안 국가의 장차관급 고위 인사는 60여 명이었고, 기존의 교역·투자·방문 외 교육, 문화, 근로자 등 다양한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대만과 아세안은 간헐적, 종합적 관계 하에서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분명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① 중국 요인(즉, '중국 눈치보기')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② 대만에 대한 무관심과 '저평가(低估)' 원인은 무엇인지? ③ 대만에 대한 정부, 언론, 학계의 전문성 일천,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④ 전략적, 역사적 사고의 미정립 등을 들 수 있다.
두 가지만 강조하겠다. 하나는 대만이 '한류(韓流)'의 발상지로서 한국의 문화 외교 및 한류 수출의 전진기지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만 자체의 학술적, 문화적 기반이 다대할 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의 정치, 경제, 군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산이다. 지난 수년 간 한국과 대만 간에는 언론, 친선 단체, 인문 교류 등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는 주한타이베이대표부와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라는 명칭 하에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사관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 하에서의 숨은 공적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다른 하나는 정부, 재계 차원에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대만보다는 중국이 우리에게 더 큰 이익이라는 '상대적 이득'(즉, 중국>대만)이 아닌 '절대적 이득'(중국+대만)의 추구라는 자유주의적, 실용적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의 과제는 대만과 중국에 대한 다양하고 분명한 국익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가에 있으며, 대만과의 관계는 이와 같은 노력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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