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발언은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북한이 대북 제재가 강화되고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되는 와중에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부터 이례적이다. 북한의 기본적인 입장은 "'제재와 대화', '군사훈련과 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협상 발언의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의 효과라는 시각이 있다. 강력한 제재가 발효되면서 김정은 체제가 강조해온 "경제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에 차질에 생길 것을 걱정해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36년 만에 당 대회를 성대히 치르려는 김정은 체제의 입장에선 대북 제재가 분명 부담되는 일일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논의를 제안해온 중국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한미일과 중국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북한이 협상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중국의 대화 재개 노력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협상 발언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이다. "지금은 제재에 집중할 시기이기 때문에 대화는 시기상조"라거나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선행조건을 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협상 발언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렇게 보는 데에는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기 때문은 아니다. 여러 가지 조건과 환경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의 협상 발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관계없이 말이다.
우선 협상을 시작한다고 해서 한국이 손해를 보거나 북한이 거저 무언가를 가져갈 수는 없다. 대북 제재의 완화나 해제, 그리고 평화협정 논의는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전향적인 의지를 보일 때 가능하다는 점을 주지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협상을 통해 확인해야 할 대상이지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협상이 시작되면 중국이 그 어느 때보다 성과를 내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6자회담이 8년 가까이 열리지 않으면서 중국도 여러 가지로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이 나날이 강해지는 것도 부담이고, 이를 이유로 사드를 비롯한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와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해지려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협상 재개를 강력히 원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협상에 동의하면 중국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도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협상을 계속 거부한다면
반면 박근혜 정부가 계속 협상을 거부하면 상황은 날로 악화될 공산이 크다. 우선 한중관계의 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이는 곧 협상 발언을 통해 한미일과 중국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한다는 북한의 의도를 충족시켜주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협상 거부는 결국 북한의 핵 능력 강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은 영변 재처리 시설의 가동 징후이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2월 하순 열린 청문회에서 북한이 곧 플루토늄 재처리에 돌입할 수 있다고 증언한 이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는 최근 5주동안 재처리시설 발전소에서 연기가 배출되었다며, 이는 북한이 재처리에 돌입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징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재처리에 돌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은 2013년 중반 이후 5MW급 원자로를 재가동해왔다. 3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만큼 사용 후 연료봉에는 20kg 안팎의 플루토늄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최근 재처리 징후도 사용후 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또한 실험용 경수로도 가동해 재처리를 하면 매년 20kg 안팎의 플루토늄을 추가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 우라늄 농축까지 감안하면 북한이 매년 5~10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 생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재의 효과가 '역효과'로 이어지기 전에
정리하자면, 재처리 시설에서 연기를 내뿜으면서 협상 발언을 내놓은 북한의 메시지는 '협상을 선택하든, 핵 능력 강화를 감수하든 양자택일 하라'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앞서 분석한 것처럼, 북한의 협상 발언에는 그만큼 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협상을 거부하고 제재에 몰두하면 이는 곧 역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도 예고하고 있다.
결국 파국으로 가느냐, 반전을 만드느냐의 열쇠는 박근혜 정부에게 있다. 약간의 이견은 있지만 미국과 중국은 제재의 목적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데에 있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형성해놓고 있다. 북한도 특유의 고집을 누그러뜨리고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협상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핵물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영변 핵시설부터 멈춰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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