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다가왔습니다.
여러분, 투표할지 말지는 결정했나요? 투표는 해야 할 것 같다고요. 그럼, 왜 투표하기로 했나요? 혹시 누구에게 표를 줄지는 선택했나요? 그 후보에게 표를 주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평소 정치란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나요? 정치에서 선거는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할까요? 선거가 끝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면 우리의 정치는 어떻게 될까요?
많은 시민에게 정치는 뉴스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프로 야구, 프로 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보듯이 정치를 소비합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은 스포츠 스타에 대한 그것과 흡사합니다. 상대 정당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은 마치 상대 팀에 대한 그것과 비슷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스기타 아쓰시 지음, 임경택 옮김, 사계절 펴냄)라는 책이 총선을 앞둔 시점에 우리 앞에 나왔습니다. 일본 호세이대학 교수(법학부)로 재직 중인 저자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한 책입니다. 하품 나오는 정치학 교과서 같다고요? 아닙니다. 짧은 분량을 무색하게 하는 참신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는 선거를 앞둔 5일 '독서통' 시간에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를 놓고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정치학자로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또 한 사람의 독자 박원호 서울대학교 교수(정치학과)도 모셨습니다.
총선 전,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트럼프와 샌더스는 이란성 쌍둥이?
김종배 : 매주 화요일 찾아오는 독서통 시간입니다. 이번 주 책은 뭐죠?
강양구 : 3월 31일부터 시작한 4.13 총선 선거 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죠? 정치의 계절이라서 총선 전에 정치에 관해 생각해볼 만한 책을 찾아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 선거 전에 누구에게 표를 줄지 고민하면서, 혹은 선거 당일 투표하고 나서 집에서 부담 없이 읽고 가족이나 지인과 토론을 나눠 볼 만한 책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지식인 스기타 아쓰시입니다. 일본의 정치 상황이나 사회 상황이 우리나라와 겹치는 부분이 많잖아요?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의 시각은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김종배 : 일각에서 우리나라 정치가 일본처럼 보수 장기 집권 체제로 간다는 이야기를 하죠? 저자는 어떤 분인가요?
강양구 : 네. 저자가 독특한 분이에요. 우선 정치학을 공부한 게 아니라 법학을 공부했어요. 현재도 호세이 대학 법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요. 일본에서는 현재 아베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날 선 비판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고요.
김종배 : 책을 같이 읽고 얘기를 나눌 전문가도 한 분 모셨죠?
강양구 : 네, 저자를 일본에서 모시고 올 수는 없어서요. (웃음) 마침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는 정치학자가 한 분 계시다고 해서 어렵게 모셨어요. 2010년부터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재직 중인 박원호 교수입니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교수로 지내시다 서울대학교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전공 분야는 마침 선거고요.
김종배 : 박원호 교수님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박원호 : 네, 안녕하세요.
김종배 :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시고 교수 생활도 하셨으니 샌더스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여쭙고 싶어요.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의 저자 스기타 아쓰시는 샌더스를 이민자 배척 같은 '우익 포퓰리즘'과 대립하는 '좌익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더군요. 우리나라에서 포퓰리즘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합니다만.
박원호 :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열망을 반영한 현상이죠. 세계화 과정에서 미국 경제가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내적으로도 소외 계층이 많이 생겼죠. 그들 가운데 민족주의에 기우는 이들은 트럼프에 열광하는 것이고, 양극화 해소를 열망하는 이들은 샌더스에게 기우는 것이죠. 따라서 트럼프 현상도 (샌더스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 분출된 것으로 봐야죠.
김종배 : 이 책은 트럼프와 샌더스가 이란성 쌍둥이라는 식으로 접근했던데, 근거 있는 지적이군요.
박원호 : 네, 그렇습니다.
김종배 : 문제의 원인은 같고, 다만 분출되는 양상이 한쪽에서는 트럼프처럼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오는 것이고요.
강양구 : 다른 한쪽에서는 샌더스처럼 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고요.
좋은 정치인이란 배우와 같다?
김종배 :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 보죠. 강 기자는 이 책 어떻게 읽었어요?
강양구 : 일단 이 책의 구성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이 책은 결정, 대표, 토론, 권력, 자유, 사회, 한계, 거리라는 여덟 개 열쇳말로 정치를 설명합니다.
김종배 : 여덟 개 열쇳말만 놓고 보면 하품부터 나옵니다. (웃음)
강양구 : 들어보세요. (웃음) 처음에는 저도 문고판 분량이라서 정치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짧게 요약한 책이려니 생각했어요.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우리가 통상적으로 정치에 관해 가진 생각을 두고서 저자가 자꾸 '그게 과연 맞니?' 하고 질문을 던져요. 무릎을 친 대목도 있었고, 어떤 대목에서는 저자와 토론하고픈 내용도 있었고요.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연극으로서의 대표제’라는 아이디어였어요. 이런 식으로 대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책을 이전에는 보지 못했어요.
김종배 : 저도 그 대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해당 문장을 그대로 읽어드리죠.
"'대표되는 자' 측에 확고한 민의가 먼저 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분열되어 있거나 모호한 상태이거나 흔들리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대표들이 의회에서 논전을 펼치거나 정당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봅니다. 그렇게 지켜보다 보면 무엇이 쟁점인지가 점점 명확해져 그것을 수용하여 우리 스스로 생각해보거나 인터넷에 의견을 올리거나 가까운 사람들과 논의를 해서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즉 대표란 일종의 배우로서 정치극을 통해 민의의 형성을 돕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원호 : 저도 이 관점이 새롭다고 느꼈어요. 연극으로서 정치! 궁극적으로 보자면 정치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유권자가 토론할 실마리를 제공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토론이 갑자기 생겨나지 않죠. 유권자가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깔아줘야 합니다. 배우(대표)들이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관객인 시민이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줘야죠.
저는 이 대목을 읽고서 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떠올랐어요. 정치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고, 특히 요즘에는 정치 혐오감이 매우 팽배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의회가 비효율적이라는 시각이죠. '국회의원이 하는 일도 없는데 특권을 내려놔야 한다', '국회의원 정원을 줄여야 한다', '국회의사당을 난지도(쓰레기 매립장)로 옮기자' 등의 이야기가 많죠. (웃음)
이런 시각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의회를 효율성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는 거예요. 대부분 의원도 이런 시각을 따릅니다. 어떤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했다는 증표로 발안을 몇 건 했고, 몇 건을 통과시켰다는 식으로 자신을 홍보합니다. 마치 종합상사의 실적 보고 같죠.
이런 관점이 사실은 잘못됐습니다. 의회는 법안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사회의 갈등을 찾아내고, 짚어내고, 토론으로써 해결하는 장입니다. 따라서 의회는 효율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의회의 경쟁력은 효율성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비효율성에 있습니다. 이 점을 우리가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행정부는 효율적이어야 할 테고, 사회의 다른 부분도 효율성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의회는 달라야 합니다. 사회의 여러 갈등을 그냥 놔둔다면 내전처럼 퍼질 텐데, 의회가 이를 총칼이 아니라 논쟁과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기능을 합니다. 이런 면에서 '연극으로서의 정치'라는 저자의 주장에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강양구 : 필리버스터가 있기 전에는 테러 방지법이 도대체 뭔지, 왜 테러 방지법 통과를 야당이 막는지 관심을 가진 시민이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필리버스터 정국을 거치면서 적잖은 사람이 테러 방지법을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야당 의원이 피를 토하듯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이 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했겠죠.
이 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필리버스터라는 연극을 통해 유권자가 테러 방지법이라는 이슈에 관심을 두게 된 거죠. 물론 효율성의 관점에서만 정치를 보는 어떤 분은 필리버스터를 두고 행정부와 여당의 발목을 잡는 야당의 '정치 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의회 또 정치의 원래 역할을 오해한 거죠.
김종배 : 에릭 E.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현재호·박수형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서 "정치의 기능이란 사회에 존재하는 수백 가지 갈등 중 무엇을 지배적 갈등으로 끌어올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 주장도 '연극으로서의 정치'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이런 의문도 들었어요. 그렇다면, 정치와 언론이 다를 게 뭘까요?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테러 방지법을 지배적 의제로 만드는 과정과 언론이 머리기사로 테러 방지법을 계속 다뤄서 의제로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겁니다. 정치와 언론은 어디서 구분이 되는 걸까요?
박원호 : 이런 식으로 구분해 보면 어떨까요? 정치는 갈등이 제기되고 토론되고 해결까지 이뤄지길 추구하는 장이죠. 반면에 언론을 통해서 갈등의 해소를 도모하기는 쉽지가 않아요.
강양구 : 이 책에도 김종배 대표의 질문에 관한 실마리가 나옵니다. 저자는 정치의 본질을 "결정." 즉 선택이라고 주장하거든요.
박원호 :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사회 각 집단에 배분하느냐에 관심을 가지니까요.
강양구 : 저자는 "결정한다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역시 허를 찌르는 통찰이죠.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매일 여러 가지 선택을 하지만 선택한 것은 의식하는 반면 버린 것은 돌아보려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버린 것에 초점을 맞추면 결정 즉 선택에 맞추는 정치가 왜 갈등이 연속인지 감을 잡을 수 있죠.
정치란 이슈 테스트 리트머스지
김종배 : 계속 연극에 비유해 보죠. '이걸 무대에 올리자'고 선택했는데 객석의 반응이 영 썰렁하면 어쩌죠? 막을 올린 것까지는 괜찮은데 흥행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박원호 : 흥행이 안 되면 다음으로 넘어가야죠. (웃음)
이런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정치학자 가운데 '이슈 에볼루션'을 고민하는 분이 있어요. 이슈는 항상 잠복해 있어요. 그러다 어떤 국면에 특정 이슈가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와서 동원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정치는 무슨 역할을 할까요? 바로 수면 밑에 잠복한 상태인 이슈를 테스트하죠.
김종배 : 곧바로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떠오릅니다. 2002년 6월 13일,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2002 월드컵이 한창일 때라서) 거의 주목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2002년 대선 국면으로 가면서 폭발했죠. 어떤 사건이 발생하느냐보다,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의제가 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죠.
박원호 : 맞습니다. 사회 갈등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정치의 역할은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사건을 터뜨려주는 데 있죠.
강양구 : 결국 정치는 여러 사회 갈등 가운데 가장 시급한, 또 가장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그것이 해결됐을 때 가장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슈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지금 많은 유권자는 한국 정치가 그러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이 정치 혐오, 낮아지는 투표율로 나타나겠죠. 이 책은 그런데도 정치 참여의 메시지를 반복합니다.
김종배 : 당장 최근의 사례가 있죠. 필리버스터 정국이 형성됐고 의제가 만들어졌는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인위적으로, 작위적으로 그 의제를 버렸어요. 선거 국면으로 가야 하는데, 이 국면에서 주요 이슈는 테러 방지법이 아니라 경제 실정 비판이어야 한다는 이유였죠. 그렇다면, 이런 선택은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박원호 : 어렵습니다. (웃음) 여기서 당내 민주주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당 지도부는 지금 집중해야 할 이슈가 테러 방지법이냐 경제 실정 비판이냐, 두 가지 이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그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얼마나 정당 내부의 숙고를 거쳤느냐, 또 누가 봐도 정당한 절차를 거쳤느냐는 겁니다.
강양구 : 역으로 보면, DJ(김대중), YS(김영삼) 이후 한국 정당의 당내 리더십이 너무 취약하다는 문제의식도 있습니다. 당장 더불어민주당도 우왕좌왕하던 상황을 김종인 대표가 구원투수처럼 등장해서 일사불란하게 정리한 거잖아요? 물론 김 대표의 이후 행보가 얼마나 정당성을 가지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만.
페북에 정치 이야기하는 사람은 투표 안 한다?
김종배 : 이제 화제를 바꿔보죠. 며칠 후면 선거일인데 투표율이 어떻게 될까요?
강양구 : 그 전에 프레시안 내부에서 공방이 진행 중인 사안을 하나 소개할게요. 젊은 층, 그러니까 20대의 투표를 독려하는 기획 기사를 내자는 의견을 냈는데, 일부 젊은 기자들이 "꼰대 같은 발상"이라며 반발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선거일에 투표하자는 이야기가 과연 꼰대 같은 소리인가요?
이 책에서 저자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일본도 투표율이 낮아서 고민인데, 그 대목을 소개해 볼게요.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기권이라는 행동을 취하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발언권을 강화할 뿐이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반드시 투표하러 간다고 예상하는 층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권은 정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게 아니다. 분명히 영향을 끼친다."
사실 당연한 얘기인데,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환기하면 꼰대가 되어버릴 정도로 한국 정치가 이상해진 건가요? (웃음)
박원호 : 기본적인 입장은 저도 저자의 생각과 같습니다. 기권은 투표한 사람의 의견만 강화해주죠. 그런데 투표하자는 얘기에 시큰둥해 하는 이들의 생각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에요.
기권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 자체를 유권자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투표 자체, 투표 과정만으로는 '내 의사가 정책 결정에 도달하지 않는다' '내가 (정치로부터) 소외됐다'는 생각만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투표가 나에게 주는 아무런 효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정치학자는 넓은 범위에서 투표를 참여의 패턴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정치 참여 채널이 있는데, 투표가 그 가운데 하나죠. 투표 외에도 다른 채널로 정치에 참여하는 분도 있죠. 예를 들어 시위에 나가거나 소셜 미디어에 의견을 남기는 것도 정치 참여죠.
서구 민주주의의 경험을 비춰보면, 이런 여러 채널의 참여가 함께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정치 의견을 남기는 분이라면 투표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거예요.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이런 여러 채널의 참여가 서로 대체 관계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강양구 :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정치 의견을 남기는 사람과 선거일에 투표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둘 중 하나의 참여만 선택하는 분이 많다는 얘기죠?
박원호 : 맞습니다. 이건 아주 심각한 상황이죠. 어떤 시민은 선거라는 정치 참여 채널이 더는 유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해 포기하겠다는 거예요. 반면 서울시장한테 트위터를 날리면 답변이 바로 오잖아요? 그게 본인이 생각하기엔 정치적으로 훨씬 효과적이고, 또 자기가 뭔가 했다는 성취감도 준다는 겁니다.
김종배 : 이런 현상을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 또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으로 봐도 될까요?
박원호 : 그렇게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기타 아쓰시도 지적했듯이, 직접 민주주의 체제의 주권자는 가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아주 큽니다. 따라서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금 투표 대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에 의존하는 현상은 부담은 크지 않으면서 즉각적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봐야죠.
김종배 : 이런 건 어떤가요? 얼마 전 보수 신문 칼럼에도 나왔습니다만, 투표용지에 '찍을 사람 없음' 란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런 란을 만들면 기권하지 않고 투표장에 가겠다는 거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사람 대부분이 보수파입니다. 양비론으로 정치 혐오증을 유발하죠. 그런데 이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말은 되거든요.
박원호 :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정치는 선택입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버리는 거예요. 선택을 미루거나 선택에 참여하지 않는 순간 다른 사람이 다른 선택을 해버리죠. 그런 상황을 원하는지 자문해 보고, 그렇지 않다면 투표하셔야죠. 다시 한 번 강조할까요? 투표하세요. (웃음)
정치와 거리 두기
강양구 : 앞에서 스기타 아쓰시가 아베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꼽힌다고 소개했죠?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인 스기타 아쓰시는 "국가가 가장 폭력적이고 위험하다고 단정 짓는 견해" 자체도 상대화해서 볼 것을 주문합니다. 그 역시 "특정한 시대의 역사적인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는 거죠.
우리가 국가권력을 비판하면서 은연중에 국가보다 더 폭력적일 수도 있는 시장에 대한 비판에는 소홀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도 읽었습니다. 시장의 폭력으로부터 고통받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대상이 국가일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이런 대목이 그랬습니다.
"국가, 시장, 사회 중에서 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폭력적이고 강제적인가를 미리 정할 수는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국가가 가장 폭력적이고 위험하다고 단정 짓는 견해는 특정한 시대의 역사적인 경험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고통을 겪고, 지역에서는 박해를 받고, 가족에게도 버려져 국가의 보호 속에서 겨우 생활의 안정을 도모한 인물이 있다고 합시다. 그에게는 국가권력의 무서움을 이야기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국가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시장에 의해 구원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김종배 : 국가, 시장,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보통 우리 지식인의 생각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강양구 : 네, 우리는 국가, 시장, 사회가 정확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정확히 지적한 대로 사실은 이 셋이 엉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와 사회, 사회와 시장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국가나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사회는 그저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는 지적입니다.
김종배 : 이런 맥락을 박원호 교수께서는 어떻게 읽으셨어요?
저자가 국가와 사회가 사실은 다르지 않다고 말할 때는 바로 이런 대목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 거예요. 분명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웃을 우리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렇게 '우리'가 아닌 외부에 폐쇄적인 시민이 지배하는 정치를 한 번 더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로 읽었습니다.
김종배 : 이 책에서 또 인상적인 부분이 저자가 책의 마지막에 강조했던 '거리'입니다. 정치를 말하는 책에서 정작 결론 격으로 정치와의 거리를 주문하고 있어요. (웃음)
그런데 정치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강양구 : 저는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와의 거리가 양극화되었죠. 한쪽에는 정치와의 거리가 너무 먼 사람이 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이죠. 반대편에는 정치와 거리가 너무 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정치에 몰입한 나머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관한 비판적 거리를 상실한 분이 계시죠. 특정 정치인 팬덤이 그 예죠.
양쪽이 모두 다 바람직하진 않습니다.
박원호 : 이 책에서 기억나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자기 자신과의 거리를 유지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이 대화를 듣는 분 가운데서도 이런 경험 한 번쯤 하신 분 많으실 거예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다가 정치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일행 가운데 한 명이라도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분위기가 아주 격앙되고, 심지어 그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선거 개표 방송을 볼 때는 마치 프로 야구를 보는 것처럼 '내 편'이 이겨야 한다는 심정으로 보죠.
저자는 자신과의 거리, 그러니까 자기 성찰을 강조합니다. 네가 네 편을 그렇게 지지하는 이유가 뭐냐, 마찬가지로 상대방은 왜 반대를 응원하는지 한번 헤아려 보라, 이런 주문이죠.
김종배 : 정치가 결국 이해관계의 충돌을 제도화하는 것이잖아요? 나하고 상관없는 문제야 그렇게 거리를 두는 게 가능하겠지만, 나의 문제라면 과연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요? 정치 행위가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시작한다면, 과연 정치와의 거리 두기가 그렇게 말처럼 쉬울지 의문입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마당에야… (웃음)
박원호 : 그것은 정확히 이익의 정치죠. 나의 이해관계가 정당을 통해서 표출되고, 그 장이 바로 정치죠. 서구적 관점 내지는 주류 정치학의 관점입니다. 개개인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정당과 의회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기대가 깔렸죠. 거리를 두지 않는 정치죠.
그런데 저자는 이런 식의 거리 없는 정치가 아니라 거리를 두는 정치를 지향합니다. 정치는 100퍼센트 승리하고 100퍼센트 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어떨 때는 부분의 승리에만 만족해야 하는 과정으로 보죠. 그래서 저자가 정치를 다루는 책에서 결론 격으로 '거리'를 강조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독특한 견해죠.
김종배 : 맞습니다. 저자는 일관되게 정치를 선악의 입장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전제 위에서 타협과 절충이 이뤄지는 게 정치라고 합니다. 맞는 얘기죠.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와 직결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람은 선악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정치 집단은 적을 규정함으로써 우리의 결속을 공고하게 다지는 기본적인 작동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정치를 타협의 장이 아니라 선악의 관점으로 보게 되죠.
박원호 : 말씀하신 입장은 정치 현실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저자는 그런 입장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규범적이고 이상주의적 입장이라고나 할까요?
강양구 : 카를 슈미트도 일찍이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으로 보았죠. 저자도 그런 의견을 의식했는지 "정치의 본질이 적대성에 있다는 생각이 힘을 얻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규범적으로 바른 방향이 아닐뿐더러 계급, 세대 등 여러 대립 축이 상호 교차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거죠.
김종배 : 현실 정치의 모습은 그사이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을 텐데, 균형을 잡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웃음)
그래도 국회 힘 강화하자
강양구 : 처음에 가볍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읽을수록 어려웠던 이유가 바로 이런 대목 때문입니다. (웃음)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언급해 볼게요.
저자는 정치가 할 수 없는 것도 열거했어요. 저자는 교육, 문화, 과학과 같은 영역에는 정치가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거나,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정부는 물론이고, 지금 정부에서도 쟁점이 되는 부분이잖아요. 교육과 정치, 당장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생각나고요.
문화 단체나 학술 단체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분으로 수장이 바뀌면서 한 차례씩 홍역을 치르기도 했고요. 저자도 아마 이런 부작용을 의식해서 교육, 문화, 과학 같은 영역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유지 관리할 수 있도록 정치가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다는 견해를 펼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교육, 문화, 과학 같은 영역이 과연 정치와 그렇게 경계를 확실히 그을 수 있을까요? 또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변화의 영향이 교육, 문화, 과학 같은 영역으로까지 미치는 것이 오히려 역동적인 과정이 아닐까요? 저부터 생각의 정리가 안 됩니다. (웃음)
박원호 : 정말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저자도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를 염두에 두고 정치와 교육의 분리를 언급한 것 같아요.
저자의 관점에서 옹호해보면, 교육, 학술, 문화, 과학 영역은 장기간 계획을 세워서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부 관료가 과연 해당 영역의 문제를 제대로 평가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저는 이런 경우 정치가 그야말로 뒤로 빠지는 게 어떻겠느냐는 저자의 의견이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양구 : 저는 이런 대목도 어렵더군요. 우리는 한편으로 정치가 행정부의 공무원 집단을 장악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어제까지 A라는 정책을 추진한 공무원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A 대신 B라는 정책으로 바꾸는 걸 보면서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 비판합니다.
김종배 : 이 책에서 해당 내용 정리를 잘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치는 뇌, 관료는 손발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뇌의 지시에 따라 손발이 움직인다고 보기 쉽지만, 바꿔보면 뇌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외부 자극을 손발로 수용해야만 한다는 거죠. 양자의 바람직한 관계를 절묘하게 비유했습니다.
물론 정치에 직접 참여한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뇌가 손발 지시를 따르는 경우가 많더라고 하죠. (웃음) 왜 그러느냐면, 정치철학이고 뭐고 간에 관료나 공무원이 데이터를 갖고 와서 정치인을 설득하면 이길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한국 사회를 사실상 관료가 지배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박원호 : 정치가 행정부의 상대가 안 됩니다. 사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현대 국가의 공통점입니다. 의회는 약화하고 행정부는 비대해지는 과정이 진행 중입니다. 의회에 어떤 상임위원회가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행정부 부처가 있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의회는 사실 4년 임시직 의원과 그 밑에서 일하는 보좌관으로 구성됩니다. 힘을 겨뤄봤자 결과가 빤하죠.
강양구 : 한 국회의원과 그 밑의 보좌관, 비서관이 부처의 일개 과 하나도 상대하기 벅차다고 토로하더라고요. 독자 가운데 적잖은 분이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회에 좀 더 많은 자원을 줘야 한다고 하면 허튼소리로 생각하실 텐데, 사실은 이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의 권한이 강해지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야 행정부를 감시할 수 있으니까요.
박원호 : 저도 어디서 그렇게 글 썼다가 엄청나게 욕먹었습니다. (웃음)
강양구 : 시민이 보기엔 하는 일 없는 국회 권한 강화는 용납이 안 되니까요. (웃음)
김종배 : 우회로가 있어요. 정부 부처를 보면 산하 연구 기관을 여럿 거느리고 있죠. 그런 산하 연구 기관에서 연구하고 컨설팅해서 보고하는 비중이 큽니다.
국회에는 그런 기관이 입법조사처 정도인데, 이런 기관을 여러 개 만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상임위원회별로 싱크탱크를 둔다면 행정부와 더 대등하게 겨룰 수 있겠죠. 의원실 비서관 수를 늘리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 입법 기능을 지원할 수 있는 조사 연구 기관을 강화하자는 거죠. 이건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게 아니니 국민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까요?
박원호 : 사실 우리나라 국회의원실이 받는 지원 수준이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회의 위상, 의회가 가진 조사 연구 기관의 수와 질은 상당히 떨어집니다.
거기에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가야죠. 국회가 1년 쓰는 예산이 아마 5000억 원 정도 될 겁니다. 큰돈이죠. 하지만 국가 예산 차원에서 따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면서 작년(2015년) 한 해 동안 잃은 돈이 이 정도 수준이에요. 민주주의는 수십 년 경험의 관료를 4년 임시직 아마추어가 통제하는 형태입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강양구 : 이제 약속한 시각이 거의 다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총선 전망을 부탁합니다. (웃음)
박원호 : 글쎄요. (웃음) 아직 열려 있죠. 그 날 얼마나 많은 분이 얼마나 뜨거운 마음으로 투표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바뀔 겁니다.
김종배 : 오늘 총선을 앞두고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를 놓고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양구 : 정치 자체를 놓고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우리나라의 정치가 과연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를 토론할 때 발제용으로 읽기 적절한 책이 아닐까요?
김종배 : 선거가 화제가 되면 항상 판세만 이야기하고,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품평하는 데 집중하곤 합니다. 정치를 뉴스로 바라보는 거죠. 오늘은 정치를 뉴스가 아니라 삶으로 접근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참고가 될 만한 좋은 책을 살펴봤습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박원호 교수님,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원호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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