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구갑'은 4.13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과 원외 정당인 녹색당 후보의 1대1 구도가 성사됐다. 이 곳은 2000년 16대 총선부터 한나라당-친박연대-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이 20년째 승리한 지역이다. 새누리당에서는 3선 달서구청장인 곽대훈(60)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야권에서는 녹색당 변홍철(47) 후보가 출마했다. 달서갑은 신당동·용산1~2동·이곡1~2동·장기동·죽전동 지역이다.
한창 유세를 벌이고 있는 두 후보의 분위기는 상반됐다. 공천 확정 후 후보등록까지 마친 곽 후보는 수 십년간 두터운 지지층을 바탕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유세를 벌였다. 유권자들은 유세 중인 그에게 "축하한다", "고생했다"는 격려의 말을 했다. 한 유권자는 "이미 당선됐다"고도 했다. 반면 '녹색당'으로 대구에서 처음 출마한 변 후보는 인지도 확장과 지지 호소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제1야당도 후보를 내지 않은 지역구에서 여당 독주를 막고자 일찌감치 예비후보로 등록해 발품을 팔고 있다.
26일 오전 10시 곽 후보는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서 유권자들을 만났다. '새누리당 곽대훈'이라고 적힌 빨간 점퍼를 입고 등산 중인 주민들을 향해 "반갑습니다. 새누리당 곽대훈입니다"라고 인사했다. 이미 3선 달서구청장으로 얼굴이 익숙한지 주민 대부분은 그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한 60대 남성은 "축하드립니다. 잘 해보소"라고 말했다. 곽 후보는 산을 오르던 한 여성에게 "산에 자주 오십니까. 앞으로 여기에 주민 힐링파크를 조성하겠다"며 공약을 소개했다. 후보와 만난 주민들은 "경선으로 고생 많았다", "축하한다", "지역 발전을 위해 힘 좀 써주이소"라고 말했다.
한 70대 남성은 "공천이 힘들지 이제 다 끝났다. 다 됐다"고 했다. 달서구갑 다른 후보는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있겠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유권자 대다수는 "사실상 선거가 끝난 분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캠프 한 인사는 "축하 인사를 많이 받는다. 건방져 보이면 안 되니까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전 11시에는 '개구리소년' 유골이 발견된 세방골에서 25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뒤 이곡운동장에서 조기축구를 하는 20여명의 주민과 인사를 나눴다. 이어 와룡공원 무료급식소도 찾았다. 20~30대 봉사자들에게도 인사했지만 익숙치 않은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20대 후반 한 봉사자는 "선거철이라 많이 온다. 그런데 꾸준히 오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먹던 80대 할머니는 "인사오니 좋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곽대훈은 안다. 구청장 했던 사람 아이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임기 절반을 남기고 총선 출마를 위해 구청장직을 사퇴한 곽 후보에 대한 성토도 있었다. 이모(78.이곡1동)씨는 "2년이나 남았는데 아깝다"며 "현직 구청장은 임기를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에 못 나오게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곽 후보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제 힘든 거(공천) 다 됐으니까 끝 아니가. 아깝지만 뽑아줘야지"라고 여전한 지지를 나타냈다.
곽대훈 후보는 1955년 경북 달성군 출생으로 경북고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4~6대 3선 대구 달서구청장을 지냈으며 대구광역시 행정관리국장도 역임했다. 공직선거에는 3번 출마해 3번 모두 당선됐다.
녹색당 변홍철 후보도 같은 날 주민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초록색 점퍼를 입고 오전 11시 30분 국민연금네거리에서 선거운동원과 함께 주민들에게 명함을 주며 첫 일정을 시작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주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녹색당 변홍철 국회의원 후보입니다"라고 인사했다.
명함을 본 60대 최모(이곡1동)씨는 "녹색당이란 당을 처음 들어봐 신기하다"고 했다. 한 50대 후반 여성은 명함에 나와있는 '기본소득 40만원' 공약을 보고 "가능하나"고 물었다. 변 후보는 "어머니 쓸데없이 쓰이는 세금만 잘 관리하면 충분히 됩니다"라고 운을 뗐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민은 손을 내저으며 길을 건넜다. 이날 그가 1시간 동안 주민들에게 돌린 명함만 2백여장에 이른다.
그는 "명함을 읽어주는 것만으로 다행"이라며 "악플(악성댓글)보다 무플(무관심)이 무섭다. 대화 나누는 것도 반갑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약을 채 듣지 않고 가는 뒷모습에 내심 섭섭하기도 하다. "10분만 시간을 주면 설명할 수 있는데 듣지 않으려 한다"며 "진박과 비박 싸움, 공천 갈등으로 정책과 공약이 사라진 선거가 진행돼 아쉽다. 정책선거를 한다면 승부를 걸어도 좋다고 본다"고 털어놨다.
또 "야당이 의석 수로 싸우는 것도 아쉽다"면서 "모두 혁신을 외치지만 녹색당 같은 원외 정당 후보 1명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 더 큰 정치혁신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어 "녹색당은 가나다순으로 비례번호 15번을 받았다. 후순위지만 투표용지가 초록색이라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려한다"고 웃음지었다.
유세는 계속됐다. 이곡역 8번 출구 앞 '붕어빵' 노점을 찾은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붕어빵을 파는 곳"이라며 "선거 운동을 하다 단골이 됐다"고 말했다. 붕어빵 장사를 하는 임정우(58)씨는 "오늘도 수고 많다"며 변 후보와 인사를 나눴다. 변 후보가 "요즘 안 보이던데 어디 갔었어요"라고 묻자 임씨는 "누가 신고해서 단속반이 찾아왔었다"며 "요 며칠 계명대 앞에서 장사를 했다"고 털어놨다.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던 중 이곡네거리 횡단보도에서 고물상 최모(65.달성군)씨를 만났다. 최씨는 "새누리당과 10년째 담을 쌓았다"며 "고철값이 4년 전 1,100원에서 지금 200원밖에 안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변 후보는 "일본 원전사고 후 정부가 값싼 후쿠시마산 고철을 수입해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는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횡단보도를 건너며 급하게 녹색당의 주요 공약인 '탈핵'과 '원전 폐쇄'에 대해 소개했다. 갈림길에서 최씨는 "여기는 마누라 병원 때문에 온 거고 나는 달성군에 산다"고 말했다. 그래도 변 후보는 "달서구 사시는 분들께 많이 알려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변 후보와 함께 명함을 돌린 선거운동원 채승규(21)씨는 "100명 중 1~2명만 알아보고 관심을 줘 아쉽지만 1대1 구도가 돼 자신감도 생긴다"며 "15%이상 득표해 선거비 보전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옆에 있던 변 후보는 "우리 목표는 당선"이라며 "지금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정책과 공약을 홍보해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곡동 주민과 만남을 뒤로하고 변 후보는 오후 2시부터 동성로에서 열린 '녹색당 정당연설회'와 '민중 결의대회'에도 참석했다.
변홍철 후보는 1969년 태어나 성서초·중, 계성고,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녹색평론 편집장과 편집주간을 거쳐 2015년 11월부터 녹색당대구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앞서 2013년에는 '청도 345㎸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청소년 인문학 공부모임 ‘강냉이’ 교사, 도서출판 한티재 기획위원 등도 거쳤다. 산문집 <시와 공화국>과 시집 <어린왕자, 후쿠시마 이후>도 냈다.
한편 '달서구갑' 선거구가 신설된 지난 1992년 14대 총선부터 앞서 2012년 19대 총선까지, 20년 동안 이 곳에서는 보수정당 후보만 당선됐다. 14대 민주자유당 김한규, 15대 자유민주연합 박종근, 16~17 한나라당 박종근, 18대 친박연대 박종근, 19대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이 바톤을 이어왔다.
프레시안=평화뉴스 교류 기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