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 A 씨는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청소년 당원을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정당 중 하나에 당원으로 가입해 정당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체계의 한계를 느끼지만 그래도 제도 정치를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A 씨는 선거권이 없습니다.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헌법에도 나와 있는 참정권은 A 씨가 만 19세 이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당합니다. A 씨를 비롯한 청소년들은 참정권을 가지기에 '미성숙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A 씨는 알고 있습니다, 참정권을 비롯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는 '성숙함'이라는 '자격'이 있어야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공평하게 누려야 하는 종류의 권리라는 것을요. 게다가 그 '성숙함'이라는 것의 기준은 얼마나 모호한지요. 화가 나면 학생들을 때리는 교사,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정치인,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식을 존중하지 않고 불행하게 만드는 부모 등 이른바 '미성숙한' 어른들을 A 씨는 너무 많이 보아 왔습니다. A 씨가 주장하는 바는 '성숙'과 '미성숙'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사람을 구별하고, 기본적인 권리에서 차별을 두는 행태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A 씨가 청소년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청소년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면서, A 씨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청소년이 투표를 하게 되면 공부를 해야 할 학교에서 정치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겠느냐. 교실이 정치화될까 우려된다." A 씨는 정치란 우리 공동체의 일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고,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 논쟁하며 설득하는 일이 많이 일어날수록 좋은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지금은 청소년이 정치적으로 무력화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철이 되어도 교실은 잠잠하지만, 청소년의 참정권이 보장된다면 청소년들도 자신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여 가치 판단을 내리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논쟁하고 정치 문제를 놓고 소통할 것입니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도록 만드는 정치는 나쁜 정치입니다. 청소년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도록, 무력해지도록 만드는 정치 또한 나쁜 정치이지요.
선거철 정당과 후보자가 내놓는 공약이나 정책을 보면, 진정으로 청소년을 '위하는' 공약이나 정책은 거의 없습니다. 청소년 관련 내용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교육' 분야의 일부로 사교육비를 줄여주겠다거나 동네 학교 시설을 보수해주겠다거나 하는, (사실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의 표심을 의식하는) 피상적이고 시혜적인 내용이 많지요.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상정하고 이 사회에서 청소년의 권리를 어떻게 확대해나가겠다, 청소년의 삶의 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높이겠다는 공약이나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국민의 요구와 삶에 신경을 쓰도록 선거라는 장치가 있는 법인데, 청소년은 선거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까요.
A 씨는 한국의 높은 청소년 자살률, 법적으로 금지되어도 근절되지 않는 체벌과 열악한 학생 인권 실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문제의 원인에는 청소년을 정치의 장에서 배제하는 행태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A 씨는 정말로 궁금합니다. "여성 참정권은 20세기부터 보장되기 시작했는데, 청소년의 참정권은 과연 21세기에 보장될 수 있을까요?"
위 글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선거에서 누군가를 배제하는 제도와 문화의 문제를 인식하자는 취지로 '4.13 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에 실은 글 일부이다. 선거를 비롯한 제도 정치의 장에서 청소년은 '제도적으로' 배제된다. 제도적으로는 유권자이지만 선거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사회 문화적 지원이 거의 부재하여 실질적으로 배제되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인, 비정규직·임시직·아르바이트 노동자, 홈리스 등이다. 한국은 법적으로 '국민'이라면, 그리고 만 19세 이상이라면 누구에게나 선거 참여, 정당 가입, 선거 운동 등 참정권을 행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피선거권은 연령 기준이 더 높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 근거로 등장하는 보통선거의 원칙이 위 내용이다. 그 민주주의는 청소년은 원천적으로 제도 정치의 장에서 배제하며 유지되고 있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다.
청소년은 제도 정치의 장에서 배제되어 왔지만, 모든 정치의 장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세의 나이로 사망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하여 독립운동의 장에 청소년 주체들이 있었다. 이후 민주화운동의 장에도 중고등학생 운동은 역할을 했으며, 1991년 고등학생운동가 김철수 열사는 노태우 정권 퇴진과 참교육 실현을 외치며 분신하였다. 2008년 촛불집회, 세월호 집회,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 등 여느 굵직한 집회시위의 장에도 청소년들이 함께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들은 종종 '같은 편'인 비청소년들에 의해 '기특한 청소년'으로 취급되고 '교복 입은 청소년들마저 나왔다'며 선전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반대파들에 의해서는 '전교조에 의해 선동된 청소년' 취급을 받았고 '저들이 청소년들마저 이용한다'는 선전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청소년 주체들이 한국의 독립과 민주화, 이후 사회운동에서 한 역할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청소년이 해온 정치적 참여와 기여들은 몽땅 잊어버리고 “청소년은 정치적 주체여선 안 된다”며 선거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현주소다.
청소년이 박탈당한 참정권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선거권, △피선거권, △정당 가입권, △선거 운동권이다. 정당 가입에 대한 권리의 경우, 정당 가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유권자로 한정한 법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데 당원의 신상 정보를 국가에 공개하고 당원 자격의 승인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당원 지위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실질적으로는 각 정당의 결의이자 결정인 측면도 있다. 현재는 녹색당과 노동당만이 청소년 당원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으며, 정의당 등에서는 청소년 당원 지위 인정 여부를 두고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선거 운동을 할 권리에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는 2012년 대선 때 한 청소년이 트위터에 이정희 후보 지지 글을 게시했다가 선관위 경고를 받은 사례이다. 선관위 경고의 근거는 '미성년자는 선거 운동을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선거 운동이라고 하면 정당에 소속되어 길거리 유세라도 해야 선거 운동일 것 같지만,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것을 비롯하여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표하는 모든 행위들이 선거 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말로 청소년은 '말'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서는 청소년 선거 운동 금지에 대한 '불복종 행동'을 하려고 한다. 행동의 내용은 간단하다. 온라인과 거리에서 청소년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면 그것이 곧 불복종이다. 4월 초에 불복종 행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불복종하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SNS에서 해시태그'#청소년선거 운동금지에대한불복종행동', '#청소년_선거법불복종'을 주시해 주시라.
4.13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는
1부 그들이 말하지 않는 투표 이야기
1. 참정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청소년
2. 투표하러 가려면 수많은 방해를 넘어가야 하는 사람들, 장애인
3. 투표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 비정규·임시직·아르바이트 노동자
4. 우리나라, 민주주의 국가 맞나요?
5. '표의 주인'을 넘어 '정치의 주인'으로
2부. 차별 내리고 인권 올리고
1. 혐오 내리고 평등 올리고
2. 지역개발 내리고 어울림의 공간 올리고
3. 재벌의 권력 내리고 일하는 사람의 권리 올리고
4. 부양의무제 내리고 국가 책임 복지 올리고
5. 싸워 이기려는 가짜 안보 내리고 안전하게 살 권리 진짜 안보 올리고
로 구성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4.13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바로 가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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