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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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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네?"

[4.13 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 ②]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열차의 문이 닫힌다. 유리창 너머 그가 내게 윙크를 보내고 있다. 나는 손을 흔들어 보인다. 열차가 앞을 향해 속력을 내며 달려간다. 그의 모습이 잔영을 남기며 사라진다. 나는 뒤돌아서 집에 간다. 매일 이별 연습을 하는 것 같다.

그가 내게 사준 염주가 있다. 처음으로 커플로 맞춘 물건이다. 염주에는 캡슐이 있고, 캡슐을 열면 작은 금부처가 들어있다. 그것을 차고 다니면서, 힘들 때마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때마다 캡슐을 열어 그 작은 금부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꽉 막혔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나는 아무것도 믿은 적이 없었다. 그런 내게 신앙이 생겼다.

지키고 싶은 것, 지켜야 할 것이 생기게 되었다.

나와 그의 그림자가 살짝 포개어진다. 살과 살이 닿는 순간들. 그와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그 순간들은 짜릿하기만 하다. 특히나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한다. 그는 알고 있을까? 그는 나를 그저 왈가닥,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다니는 철없는 어린 애로 보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따뜻한 그의 품에 안길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다.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은 내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남자와 남자의 스킨십은 쉽게 여러 사람의 눈총을 살 법한 일인 것이다. 그와 공공장소에서 스킨십을 할 때마다 짜릿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저지른 뒤의 짜릿함과 가까웠다. 마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연애를 하기 전부터 그러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벽장에서 나와 얼굴을 드러내기로 했다.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미래의 애인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와 사귄 뒤로는 지킬 것이 생긴 것이었기에 숨으면 안 되었다. 나는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는 나 자신, 내 진짜 욕망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그것을 전면에 드러내기로 했다.

퀴어문화축제에 기획단으로 참여했고, 성 소수자 관련 여러 행사에 얼굴을 내밀었다. 최근에는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 보트'에 함께 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결국 내가 내 민낯을 드러내며 활동하는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는 단지 애인과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위해서였다. 공공장소에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할 때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도록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일들이었다.

날이 갈수록 욕심이 늘어난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수록, 그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진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그를 내 애인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해주고 싶다. 그와 한 세월 오랫동안 같이 살며 가정을 이루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그것들은 불가능한 일들이다. 법은 닫힌 문처럼 굳건히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서류에 우리의 이름을 같이 올릴 수 없을 것이다. 남자와 남자가 그랬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구차한 변명 같은 이유 때문에. 닫힌 문 앞에서, 나는 다시금 죄책감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

법을 다루는 정치인들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성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짓밟고 있다. 성 소수자들을 위한 법은 구겨지고 버려졌으며, 성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종교의 지지를 받기 위해 그들은 허리를 굽실거린다. 약자의 자리에 있기에 성 소수자들은 대의 민주주의에서 소외당한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분명히 성 소수자들에게 친절하게 변하고 있다. 언젠가 성 소수자들은 대의 민주주의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성 소수자들을 외면한 정치인들에게는 차가운 분노로 답하고, 성 소수자들에게 화답한 정치인들에게는 한 표를 던질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현실에 대항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런 그가 자랑스럽다. 어떤 때에는 한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나, 싶다. 그렇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 우리도 커플이다. 더 이상 공공장소에서 눈치를 보며 스킨십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나를 위해서, 그를 위해서, 성 소수자들을 위해서. 레인보우 보트에선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 성 소수자들의 전 재산인 몸으로써, 성 소수자들을 외면하는 정치인들에게 대항하려 한다.

사람들 앞에 우리의 몸을 전시한다. 가장 아름다운 포즈를 하고서.

인권올리고 가이드는 1부 '그들이 말하지 않는 투표 이야기'와 5개의 영역에서 제안하는 2부 '차별 내리고 인권 올리고'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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