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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강헌은 왜 명리학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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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딴따라' 강헌은 왜 명리학자가 되었나?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⑨]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 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민음사, 황금가지, 리더스북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든 출판계의 신화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를 선정해 책의 성공 원인과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봄을 맞아 다룰 책은 음악 평론가로 잘 알려진 강헌의 이름으로 더 화제가 된 <명리>(강헌 지음, 돌베개 펴냄)입니다. 강헌이 카페 '벙커1'에서 진행한 '좌파 명리학' 강연을 토대로 만든 이 책은 3만 부가 넘게 팔리며 화제를 낳았습니다. 반항의 상징적 존재였던 강헌이 우리나라 정통 철학 중 하나인 명리학을 다룬 책이었으니까요.

<명리>는 저자의 이름과 달리, 그야말로 정통 명리학 학습서라고 할 만합니다. 책은 명리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초심자를 위해 다채로운 편집으로 명리학의 기초 개념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잡학'으로 무시당하고, 혹세무민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 명리학을 진지하게 고민한 이 책은 저자의 자기 고백을 통해 명리학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보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누구나 명리를 알면 혹세무민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식민과 분단 과정을 거치며 기복 신앙처럼 일그러진 명리학의 본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도 강조합니다. 저자 파워가 돋보였다고 평가되는 이 책을 두고 대담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요. 17일 오후 1시 서교동 카페에서 진행한 대담을 정리했습니다.


▲"<명리>, 너무 어려워..." ⓒ프레시안(최형락)

<명리>, 신개념 명리학 학습서


이홍 : 3월, 새로운 봄입니다. 프레시안 대담이 어느덧 아홉 번째인데요, 오늘 함께 의견을 나눌 베스트셀러는 강헌 선생님의 <명리>입니다. 무척 관심이 많았던 책인데 막상 펼쳐 드니 어렵더군요. (웃음)

전반적인 내용 비평부터 해볼까요? 일단 구성이나 편집에서 고민의 흔적이 돋보이고, 저자의 문장 호흡도 대단히 친절해요. 카페 벙커1의 '좌파명리학' 강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교육이나 강연을 책으로 만든 이상적인 형태라 생각합니다. 물론 내용 자체는 솔직히 쉽지 않아요. 마음 단단히 먹고 학습 의지를 갖춰야 합니다. 단순히 넘기며 읽는다고 이해가 가능한 수준은 아닙니다. 이 분야에서 쌓은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러다 보니, 이 책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저자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가 궁금해지더군요. 공부가 필요한 책입니다.

장은수 : 아무래도 저자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서 받은 느낌인 것 같은데, 저자의 말투가 책에 그대로 녹아 있어요. 과감하고 거침없죠. 본인의 가치 지향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책을 출판하거나 읽을 때 목적이 있는데, 이 책의 첫째 목적은 '학습'인 것 같아요. 명리학을 직접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어요. 그러니 제대로 공부할 욕망까지는 없고, 그저 명리학을 호기심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한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죠.

물론 일반 독자를 위해 여러 가지 편집 장치로 보완 작업을 했어요. 책의 내용이 실감 나도록 다양한 운명을 쥔 사람의 실제 사례도 넣었죠. 하지만 누구나 알 만한 사람 이야기가 아니고, '나 아는 사람은 이런 운을 타고 태어났는데, 실제로 이렇게 살았더라'는 식이죠. 조용필 이야기도 나오고 저자 이야기도 나옵니다만, 충분하진 않아요. 교양 서적으로 읽기에는 조금 아쉬웠어요.

다만, 일반적인 명리학 서적 중에서는 매우 친절한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명리학 책이라고 하면 어르신들께서 쓰신 책(?), 즉 한자어가 매우 많고 편집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책을 흔히 떠올리죠. 이를 고려하면, <명리>는 과감하게 말해 순 한글로 쓴 첫 번째 명리학 학습서라고 할 수 있어요. 조용헌 선생님이 여러 책을 쓰셨지만, 그 책은 에피소드 중심의 비교적 쉬운 책이고, 이 책은 현대적 편집 기술이 제대로 집약되어 만들어진 정통 명리학 학습서죠.

이 때문에 이 분야에서 <명리>는 장기 스테디셀러가 될 것 같아요. 매해 초마다 잘 팔릴 것 같아요. (웃음)

'좌파' 명리학? 혼란스럽네

이홍 : 세부적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우선 저자 이야기입니다. 책의 탄생에 대한 사전 지식이 얕은 독자라면 저자의 이름을 듣고 궁금증을 가지셨을 거예요. 강헌 선생은 음악 평론가입니다. 음악 평론가가 명리학 책을 쓸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이지는 않죠.

책을 고를 때 저자의 권위나 전문 분야는 중요한 선택 사항이 되곤 합니다. 신학자나 신부님이 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와 인문학자가 이야기할 때, 그리고 저와 같은 장삼이사가 이야기할 때 독자가 가지는 믿음과 신뢰의 정도는 달라지기 마련이죠.

명리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이 책은 기초적이나마 개념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수준의 전문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음악 평론가로 더 친숙하게 아는 강헌이라는 사람이 뜻밖에도 명리학책을 냈단 말이에요.

물론 우리는 사전 정보를 통해 강헌 선생께서 명리학을 강의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벙커1 강의 제목이 '좌파 명리학'이라는 사실도 알죠. 책의 서두에는 건강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저자가 명리학에 빠져든 이유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정체성이 곧 책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음악 평론가가 쓴 명리학책이라는 궁금증이 파생하는 호기심이 판매로 이어지길 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파 명리학'이라는 개념도 짚어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명리학은 혹세무민의 잡설'이라는 속칭에 대응하기 위해 저자가 강의명에 '좌파'를 붙였다고 이해했어요. 사실 이와 같은 시각이면 심리학, 재테크도 어떻게 보면 혹세무민이죠. 무엇보다 우리 시대 최고의 혹세무민은 종교일 테고요.

그런데 출판사는 책에서 '좌파'를 빼버렸어요. 그리고 '명리'만 남겼습니다. 강의 제목 그대로 가는 게 음악 평론가 강헌의 사회적·문화적 위치를 활용하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끄는 방법 아니었을까요? 너무 기계적인 판단인가요? 왜 이런 선택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벙커1에서 진행된 강헌의 '좌파 명리학' 특강은 큰 호응을 얻었다. ⓒyoutube.com

장은수 : 어느 정도 공감하는 지적입니다. 벙커1 강의 제목인 '좌파 명리학'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누구나 흥미를 느낄 법한 이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네요. 다만 저는 이홍 선생과 정반대로 생각해봤어요.

출판사가 '좌파'를 뺀 이유는 독자층 확장이라는 면에서 이해가 가는데, 오히려 벙커1 강의명에 '좌파'를 붙인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책을 읽어봐도 왜 이 강의에 '좌파'를 붙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나름의 이유는 추측해봤어요.

흔히 명리학은 출세를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책은 그것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를 주로 이야기하죠. '네 운명은 이렇게 고정되었다'는 게 아니라, '네 운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집중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존 명리학과 다르다고 해서 좌파 명리학이라고 한 것 같아요.

또한 명리학은 보통 스승을 모시고 말씀을 들으며 배운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모든 사람이 책을 읽고 이해해서 공부하면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이런 생각도 '좌파'라는 말이 붙는 데 한몫한 것 같네요. 이런 생각을 고려하면, 역시 이 책은 너무 전문적입니다. 적어도 책의 내용 하나하나를 따져가면서 깊게 익혀야 합니다. 어쩌면 선생님이 필요한 듯도 싶습니다. 조금 더 쉽게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출판사 : 두 분의 말씀대로 이 책은 대중을 상대로 나왔습니다. 최근 9쇄가 나왔는데, 저자의 의도를 조금 더 충실히 담았습니다. 해당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왜 좌파 명리인가. 명리학이 천 년 전에 탄생할 때 그것은 왕조 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한 전형적인 우파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 운명의 학문은 민초들의 품에 안기면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는 체제 변혁 사상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 한국에서 이 명리학은 식민지와 가난, 분단과 전쟁을 겪으며 '나부터 살고 보자'는 기복적 미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여기의 명리학이 공화정 시대에 걸맞은 이념, 곧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존엄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진리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좌파명리이다." (라디오 팟캐스트 <강헌 좌파 명리>를 세상에 내놓는 강헌의 변)

이 책도 '좌파 명리' 개념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다만, 제목에서는 '좌파'를 뺐습니다.

저희는 이 책을 기획할 때 '기존에 나온 명리학 서적 중 대중이 볼만한 책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학습서가 나오면 명리학에 관심을 둘 이가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벙커1 강의 반응을 보고 강헌 선생의 책이라면 충분히 대중성을 지니리라 판단했습니다.

다만, '좌파 명리'라는 낯선 개념을 그대로 살린다면 벙커1 강의 수강자만 알지, 대중은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봤습니다. 이에 대중에게 더욱 보편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좌파'는 제목에서 뺐습니다.

두 분이 어렵다고 말씀하신 게 한편으로 이해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부연 설명해 드리자면, 애초 기획 내용의 절반을 덜어냈습니다. 이 책은 기초 개념 서술에 집중했습니다. 대신 5월에 '심화편'을 또 낼 계획입니다. 이 책에는 더욱 풍부한 사례가 실립니다.
명리, 동양적 자기 계발서? 운명 개척서?

장은수 : 저는 책 앞부분 내용이 좋았어요. (비전문가로 생각하기 쉬운) 저자의 약점을 충분히 메웠죠. 와병의 경험, 이혼의 상처 등 본인이 살면서 겪은 고통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왜 명리학에 관심을 품게 되었는지 이야기한 덕분에 설득력이 있었어요. 어려운 내용도 에세이풍으로 정리해 독자가 책을 끝까지 읽도록 배려했어요. 진정성을 담았죠.

아마도 강연을 풀었기 때문에 이 같은 구성이 가능했을 겁니다. 보통 지식인은 책을 쓸 때 자기 이야기를 넣지 않아요. 명리학 서적을 읽기 어려운 이유도 저자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이 책은 구어적 구성으로 저자 본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단점을 없앴어요.

이와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좌파 명리' 개념에 의구심이 들어요. 한마디로 말해 '좌파가 명리를 이야기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이 책이 나오기 전에도 사주풀이 책은 항상 잘 팔렸어요. 불안한 시대에 사람들은 정해진 운명을 자꾸만 찾으려는 거죠. 저는 좌파라면 오리지널을 믿지 않고 삶이 역동하는 역사 안에서 구성됨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좌파와 명리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죠.

강헌 선생 평생의 학문이 명리학이라는 건 이해가 가요. 하지만 이런 세계관이 좌파적이라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좌파 명리'라는 용어가 계속 마음이 걸리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을 가진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일견 좌파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자주 찾으리라 생각되는) 벙커1 강연에 이처럼 많이 모였다는 사실도 이해되지 않고요.

죄송합니다만 책을 읽고 나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못 얻었어요. 굳이 얘기하자면 '동양적 자기 계발서'를 읽은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요. 어쩌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제목에 제가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명리>는 새로운 개념서임을 강조했으나, 결국 기존 명리학 개념의 친절한 해설에 너무 치우친 것 아니냐."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저는 명리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은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생과 사에 의문과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피엔스가 아니지요. 그래서 타고난 운명을 꿰뚫어보고자 한 것은 꼭 명리만도 아니고, 동양에만 있는 것도 아니죠. 예를 들어 아라비아에서 탄생한 점성술도 마찬가지니까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단히 경험하는 삶의 불확실성에 어떤 구체적 근거를 얻으려 해서 이 같은 학문이 탄생한 것 아닐까요. 굳이 뭔가를 예측하고자 명리를 공부할 수도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내 삶의 바탕과 근거를 알고자 하는 거죠.

기계 문명이 발달하고 합리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불확실성은 생겨납니다. 명리는 해석의 학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근원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삶의 불확실성을 과학보다 오히려 더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지요. 누군가 '문명이 발달할수록 점 보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음양오행이라는 건 다르게 말하면 '우주를 형성하는 자연의 이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고, 불이 있으면 물도 있어요. 상생이 있으면 상극도 있지요. 결국,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일부이고 그렇다면 운명도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지요. 이렇게 인간의 운명을 자연의 일부로 본다면, 사람마다 '우주적 이치'에 따라 정해진 삶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명리와 같은 사고의 출발점 아니겠어요?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으면 나무는 자라지 못한다'는 패배적인 운명론이 아니지요. '저 나무는 척박한 땅에 심었으니, 거름을 주거나 물을 더 뿌려라'는 게 명리죠. 다만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혹세무민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이 책에서 아쉬웠던 건 '혹세무민' 뭐 이런 게 아닙니다. '원국표'와 같은 개념에 관한 기본적인 해석에 너무 집착한 게 아쉽습니다. 강의와 책의 구성 목적이므로 탓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장은수 : 설사 그 주장이 맞는다손 치더라도 '그렇다면 명리를 통해 얻어가는 건 뭔가'를 다시 묻고 싶어요. 내 삶이 운명론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결국 얻는 건 위안뿐 아니냐는 거죠.

저는 결국 독자가 <명리>에서 원하는 건 불안의 시대에 심리 상담받는 것과 같은 위안이라고 봐요. 제가 앞서 '동양적 자기 계발서'라고 말했는데, 이 책이 사회 구조적인 이야기 대신 개인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불안은 근본적으로 좀 더 거대한 사회문제 탓일 수 있는데,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나와 너의 이야기로 이를 풀어가니까요.

▲<명리>의 연령별/성별 구매 비중. 젊은층에 비해 중장년층의 구매비중이 압도적이다. 교보문고 제공. ⓒ프레시안

젊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홍 : 책이 담은 여러 의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이 책을 누가 읽었는지 살펴보죠. 출판사는 벙커1에서 좌파 명리학 강의를 들은 사람을 1차 목표로 설정했을 테고, 명리학에 관심을 가질 나이가 된 '옆집 아저씨'를 그다음으로 봤을 겁니다. 다만 그 목표만큼 널리 읽혔을지는 의문입니다.

장은수 : (그 이유로 인해) 이 책이 젊은 층에는 큰 호응을 얻진 못했어요. 교보문고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책을 읽은 20대 비중은 남녀 합쳐 전체의 6.5%에 불과합니다. 40대와 50대, 60대가 각각 36.4%, 24.3%, 10.1%에 달했어요.

명리학 공부 욕망을 가진 사람 못잖게 '강헌'이라는 스타의 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도 작용했으리라고 봐요. 다만 그 너머까지, 즉 보통의 인문학 서적에 관심을 둔 이에게까지 널리 읽혔는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명리학에 관심을 두는 이가 누구인지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마도 사업하는 장년층이 아닐까요? 나이 쉰쯤 되면 내 가족, 내 회사, 내 사회생활의 운세를 점치려는 욕구가 아무래도 조금 더 커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남들 말은 믿을 게 못 되고, '실력 좋다'는 사람을 찾아가면 너무 비싸죠. 그러니 직접 공부하고픈 욕구가 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강헌 선생과 출판사가 '5000만의 명리학'을 목표로 이 책을 낸 건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내 운명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지 않고, 스스로 궁리해 보려는 태도가 미래를 향한 첫발이니까요.

다만 이 점은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운세를 점치려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손 치더라도, 타로점을 보는 이십 대 여성이 과연 이 책을 볼까요?

이홍 : 장은수 대표께서 말씀하신 '동양적 자기 계발서'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젊은 층까지 명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길 기대하는 건 조금 무리인 듯싶습니다. 장년층에 더 널리 읽히는 걸 목표로 삼는 게 좋겠죠.

장은수 : 아무래도 인문서를 많이 내는 돌베개 스타일이 작용한 것 아닌가도 여겨져요. 이 책이 인문서로 알려졌는데, 일종의 자기 계발 시장과는 안 맞는단 말이죠. 인문의 영역에서 명리학에 접근하려는 욕구가 너무 뚜렷했던 것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 나오는 신간이 이런 약점을 보완하리라 기대합니다.

갈수록 강해지는 저자의 힘

이홍 : 더 많은 독자에게 명리학을 알리고, 더 긴 시간 이 책을 알릴 방편이 있을까요?

장은수 : 일단 출판사가 포털 다음에 스토리펀딩을 진행하고 있어요.

출판사 : 처음 목표 금액은 500만 원이었고, 실제로는 620만 원 정도의 펀딩이 완료됐습니다. 생각보다 다양한 계층에서 참여했고요.
장은수 : 스토리펀딩이 콘텐츠를 즉각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서점 독자를 빼내는 악영향을 미쳐요. 일종의 자가 출판 플랫폼이기 때문이죠. 스토리펀딩이 활성화할수록 서점에서 독자가 이탈할 뿐만 아니라, 출판사 힘은 더 약해집니다. 저자의 독립성이 커지니까요.

이홍 : 문제는 지금 출판사가 이를 마치 홍보 플랫폼인양 인식한다는 데 있죠.

출판사 : 저희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지금 출판사는 어떻게 해야 서점을 벗어날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독자 플랫폼이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없으니 포털을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명리학 콘텐츠를 알리고 판매하는 상황에서 책 <명리>는 일종의 홍보 연결고리입니다. 포털 스토리펀딩, 벙커1 강의, 애플리케이션 출시, 팟캐스트 제작 등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많은 부분이 생각한 대로 진행됐다고 판단합니다. 다방면의 홍보를 통해 향후 나올 '심화 편'까지 알릴 수 있었으니까요.
장은수 : 팟캐스트 운영은 돌베개에서 하나요?

출판사 : 딴지그룹에서 하고요, 저희가 전체를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시즌1까지만 참여했고 지금은 빠졌습니다.


장은수 : 예전 대담에서도 여러 번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팟캐스트는 홍보 수단이라기보다 독자 정보 수집 수단이에요. 결코 출판사 기대만큼 팟캐스트에서 홍보되지 않아요. 단순 홍보라면 라디오 출연이 오히려 낫겠죠.

출판사 : 독자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팟캐스트를 제작해야 하는데, 그게 매우 힘듭니다.
▲"<명리>는 출판-강연-저자라는 콘텐츠 생산자 간 강력한 제휴로 만들어진 모델." ⓒ프레시안(최형락)
장은수 :
저는 최근 출판사의 홍보가 너무 저자 중심으로 진행돼서 일어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홍보가 이뤄지면 장기적으로는 결국 저자가 직접 독자와 연결되고, 그로 인해 저자가 직접 출판하는 시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요.

오늘날 출판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혁명이 해외의 경우 분산 혁명이에요. 저자가 직접 독자와 만나고, 직접 책을 만들어서 독자에게 제공하죠.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쇄, 배본, 판매를 저자 혼자서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대량 생산이 아니라 주문형 출판(POD) 시스템을 이용하니, 수요가 있을 때마다 분산해서 생산하더라도 전체 생산 비용이 크게 올라가지 않는 상황이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어요. 출판사가 여기에 대비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약해질 겁니다.

출판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홍 : <명리>는 여러 면에서 우리가 처음 이야기한 책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지음, 한빛비즈 펴냄)과 비슷합니다. 출간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독자층을 확보했고, 강의나 팟캐스트를 통해 꾸준히 내용을 알리면서 독자층을 보유했죠. 한국 출판의 어떤 전형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시도는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저자가 (강연, 팟캐스트 등의) 자기 플랫폼을 가져야 생존하는 상황이 오는 거죠.

문제는, 그렇다면 출판사의 역할은 뭐냐는 겁니다. 당장 팟캐스트 <지대넓얕>을 진행하는 채사장도 자기 출판 플랫폼(출판사)를 만들었죠. 강헌 선생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장은수 : 저자가 편집자를 고용하는 식으로 출판 헤게모니가 변할 수 있죠.

출판사의 편집력이 강화돼야 합니다. 출판사 편집이 저자의 가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야죠. 이를 위해서는 출판사가 자기 저자를 확실히 붙잡아 둘 핵심 기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불확실하니 문제죠. 제가 좌담할 때마다 출판사에 '이 책을 만들 때 편집은 어떤 뚜렷한 역할을 했느냐'고 물어보는 게 이 때문입니다.

기술 발달로 인해 저자가 자기 책을 쉽게 낼 방법은 늘어날 겁니다. 지금도 저자가 책을 낼 수 있는 쉬운 도구가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기성 출판사를 거치지 않는 흐름도 거세질 수밖에 없죠.

이홍 : 저자가 편집자를 고용한다는 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이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드물지 않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5년 후,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로 저자가 편집자를 고용할 겁니다. 강연이나 팟캐스트가 출판 플랫폼을 장착하는 게 쉬울까요, 아니면 출판 산업이 인기 팟캐스트를 만드는 게 쉬울까요? 아마도 전자가 좀 더 쉽죠.

강연이나 팟캐스트 플랫폼에는 서점과 같은 유통 채널이 불필요합니다. 곧바로 독자와 만날 수 있죠. 덕분에 충성 독자를 바로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출판 아이템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반면 출판사는 독자와 소통할 힘이 약합니다. 오로지 '서점'뿐이지요. 따라서 구체적 대상(고객)을 획득하고 관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강헌 선생이 벙커1에서 좌파명리학 강연을 하지 않았다면 출판사가 <명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장은수 : 출판사는 결국 매개자잖아요? 미디어죠. 저자와 독자 사이에 끼어드는 존재인데, 매개자로 나설 때보다 분명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출판사가 단순히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가 아니라,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기업이 돼야죠. 당장 문학동네는 차별적 가치를 제공해서 소설가 김훈, 김영하, 김연수 등을 확보했죠. 이전 대담에서도 다룬 인플루엔셜은 강연 네트워크를 통해 독자와 접할 수 있는 연결망을 확보한 후, 이를 활용해 출판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차별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강한 저자 몇몇에 의존하는 출판사는 앞으로 저자 의존도가 더 커질 것이고,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결국 출판사가 설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죠. 당장 (유시민에 의존하던 출판사에) 유시민이 없다? 그러면 바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죠.

출판사 : 저희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특별한 강점을 지닌 출판사로 이미 자리매김했습니다. 저자와 편집자 간 신뢰도 오랜 기간 쌓였고, 그 덕분에 독자와 저자 모두 돌베개에 관한 신뢰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여전히 출판사의 큐레이팅 기능, 에이전시 기능은 저자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을 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홍 : 물론 아직 대부분 저자는 전문성이 부족하니 당연히 출판사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전업 작가가 늘어나고 있고, 이들이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해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는 건 사실입니다. 특히 자기계발 분야가 그렇죠. 이지성, 김난도와 같은 분은 이미 하나의 독자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흐름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리란 건 당연한 예측입니다.

장은수 : 이런 흐름은 세계적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죠. 이제 유명한 기자들은 언론사를 나가 자기 콘텐츠로 독자적으로 글을 쓰고, 강연하고, 사업하죠. 이 흐름을 출판만 비켜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기존 출판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더 얹은 모델을 고민해야 합니다.

▲ <명리>(강헌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이홍 : 이제 정리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쉽지 않은 책인 <명리>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즘 부쩍 출판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독특한 주제의 책으로 좋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은수 : <명리>는 벙커1이라는 독자적 이미지를 가진 장소에서 자기 독자층을 확보한 강헌이라는 저자가 출판과 만나 탄생한 책입니다. 콘텐츠 생산자 간의 강력한 제휴로 만들어진 책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좋은 출판 모델이라고 봅니다. 출판사가 벙커1과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간다면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계속 확보할 수 있겠죠. 벙커1 역시 부차적 홍보 또는 수입 수단이 생길 수 있고요.

실제 최근 아셰트(Hachette)에 인수된 미국 독립 출판사의 상징인 페르세우스가 제휴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자신의 이념과 맞는 매체들과 제휴해 좋은 콘텐츠를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영리한 전략을 썼죠. 나아가 뜻을 같이하는 출판사와 함께 학술 서적 전문 도매상을 만들기도 했고요. 우리나라의 작지만 강력한 자기 색깔을 가진 출판사도 이와 같은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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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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