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러한 공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미 양국의 오락가락하는 정보 판단이다. 한미동맹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비롯한 미사일방어체제(MD) 추진을 정당화하려고 할 때는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논법을 구사해왔다. 반면 북한이 핵미사일 보유를 공언할 때에는 아직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성공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중첩되어 있는 것 같다. 우선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를 인정하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모순이 커진다. 또한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론이나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하는 것 같다.
둘째는 김정은이 최근 과시하고 있는 핵미사일은 KN-08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점이다. 그는 9일 "핵탄을 경량화하여 탄도로케트에 맞게 표준화, 규격화를 실현했는데 이것이 진짜 핵억제력"이라고 말했다. 또한 15일 자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의 지시로 "탄도로켓 대기권 재돌입 환경 모의시험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김정은의 현지 지도를 보도한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미사일과 탄두는 KN-08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이 KN-08에 장착하는 핵탄두 및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는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는 스커드와 노동 등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에는 이미 핵탄두 장착에 성공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김정은은 9일 "이미 실전배치한 핵타격수단들도 부단히 갱신하기 위한 대책을 따라세울 것"을 지시했다. 발언의 맥락만 놓고 보면, 중단거리 핵미사일은 이미 보유한 상태이고, 그다음 단계로 핵탄두 장착 ICB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술적으로 보더라도 ICBM보다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우선 중단거리 미사일의 탑재 중량은 700kg~1000kg에 달하기 때문에 핵탄두 소형화 및 경량화의 부담이 ICBM보다는 덜하다. 또한 중단거리 미사일은 대기권 안팎에 도달했다가 낙하하기 때문에 재진입 기술 확보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셋째는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임박했느냐는 것이다. 김정은이 15일 "빠른 시일안에 핵탄두 폭발시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탄도로켓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대다수 언론은 5차 핵실험을 예고한 발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18일 새벽 노동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빈말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에 따라 관심의 초점은 5차 핵실험 여부에 모아진다. 일각에서는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과 5월 당 대회를 앞두고 핵실험을 전격적으로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5차 핵실험의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김정은이 "핵시험"이 아니라 "핵탄두 폭발시험"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또한 "핵탄을 경량화하여 탄도로케트에 맞게 표준화, 규격화를 실현"했다고 했는데, 이는 북한이 4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탄두에 장착 가능한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발언의 맥락을 종합해보면, 북한은 다음 단계로 핵폭탄을 탄두 안에 넣어 작동 가능한 핵탄두 제조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보인다. 그런데 '실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 시험발사는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핵구'(核球, nuclear pit)를 제거한 상태에서 기폭장치만 내장된 핵탄두 폭발시험에 나설 공산이 크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의 핵미사일 시험은 '핵구'를 제거한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상당 수준이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스커드와 노동 등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에는 이미 핵탄두를 장착했거나 그 문턱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KN-08 핵탄두 개발도 그 문턱 앞에 도달한 느낌이다. 신형 방사포에 장착할 전술핵 개발에도 나섰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던 한미동맹의 비롯한 국제사회의 결의가 공염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미 양국, 특히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제재에만 몰두하고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대북 제재의 결의가 강해질수록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북한의 결의도 강해진다. 역사가 이를 증명했고, 오늘날의 상황이 더욱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현재로써 유일한 방법은 북한의 추가적인 핵물질 생산을 막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김정은이 공언하고 있는 "다종화된 핵타격수단"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결코 북한의 외화 수입을 차단하는 데 있지 않다. 북한은 이미 자체적인 생산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안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거부해온 길에 있다. 바로 평화협정 협상의 문을 여는 것이다. 온도 차이는 있지만 미국과 중국은 이미 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 박근혜 정부의 결단만이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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