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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4대1' 패배…그러나 얻은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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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4대1' 패배…그러나 얻은 것도 있다

'겸손' 배운 이세돌, 기회는 또 있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와 겨룬 마지막 대결에서 패배했다. 이세돌은 15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에서 280수만에 알파고에게 불계패 했다. 돌을 던졌다(항복했다)는 뜻이다. 이로써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4대 1'로 마무리됐다.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은 '흑', 알파고는 '백'을 잡았다. 대국에 앞서 이세돌은 "알파고는 상대가 '흑'을 잡았을 때 더 강하다"라고 분석했었다. 다섯 차례 대국에서 유일하게 이세돌이 이긴 경우가 지난 13일 열린 제4국이다. 이날 이세돌은 '백'을 잡았었다. 하지만 이세돌은 마지막 대국에서 '흑'을 잡고 싸우겠다고 했다. 이세돌은 "'흑'을 잡고 이겨야 더 값진 승리"라고 말했다.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은 초반에 우세했으나 중반에 역전 당했고, 마지막까지 판을 뒤집지 못했다. 다만 이번 대국은 이세돌과 알파고가 모두 초읽기에 몰렸다. 앞서 네 차례보다 오래 진행된 대국이었다. 그만큼 처절한 싸움이었다. 바둑 TV 해설자로 나선 유창혁 9단은 "너무 어려운 싸움이다. 나도 수읽기가 안 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양 쪽 모두 큰 실수 없이 팽팽한 대립을 이어갔다.

비록 패배하긴 했으나, 이번 대국은 "가장 이세돌다운 바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이세돌은 이날 대국에 앞서 "평소대로 두겠다"라고 말했다. 중반까지는 표정도 안정적이었다. 그의 장기인 '흔들기'도 여러 번 시도했다.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는 전략적 공격이다. 유창혁 9단은 "나도 이세돌의 흔들기에 많이 져 봤다"라며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 대부분을, 알파고는 잘 막아 냈다.

대국이 진행된 9일부터 15일까지, 이세돌이 보여준 변화는 실로 드라마틱했다. 첫날 대국에 앞서 이세돌은 "인간 바둑의 낭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자신감이 역력했다. 그러다 첫 대국에서 패배하자, 승부는 '50 대 50'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당시 패배의 충격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대국 초반부에서 이세돌은 일종의 변칙수로 승부를 보려 했다. 알파고는 기계이므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수 앞에서 당황하리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빗나갔다. 알파고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인간에 가까웠다.

두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은 상당히 위축된 모습이었다. 첫날 알파고가 보인 모습에서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반면 이날 대국에서 알파고는 인간보다 훨씬 창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계가 두는 바둑이 '창의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에 바둑계는 충격을 받았다. 알파고는 이날 가장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반면, 이세돌은 다섯 차례 대국 가운데 가장 기계적인 모습이었다.

이날 대국 이후 기자회견에서 이세돌은 "단 한 순간도 앞섰다고 느끼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완패를 인정"한다고도 했다. 목표 역시 수정했다. "한 판이라도 이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 쉬면서 이세돌은 동료 기사들과 밤새워 토론했다. 그리고 지난 12일에 열린 세 번째 대국. 이세돌은 채 포석이 끝나기도 전에 공격을 퍼부었다. 초반에 공격을 집중해서 기선을 잡는 게 승부수라는 조언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도 졌다.

다음날 네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은 기적 같은 승리를 거뒀다. 알파고의 약점을 파악한 것이다. 알파고는 중반 이후 실수를 거듭했고,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팝업 창에 "Resign"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다시 하루를 쉬었다. 제2국 이후 하루 쉴 때와 달리, 제4국 뒤엔 정말 휴식을 했다. 아내와 딸과 함께 교외 나들이를 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15일 마지막 대국을 진행했다. 이세돌의 평소 기풍(棋風, 바둑의 개성)에 가까운 대국이었다. 알파고를 처음으로 초읽기에 내모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졌다.

비록 최종 패배했지만, 이세돌은 지난 일주일 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훨씬 성숙하고 겸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쩌면 그게 더 큰 소득이다.

이세돌은 평소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했다. 발랄하다는 평가와 미성숙하다는 비판이 함께 나오곤 했다. 지난 2003년 제3회 LG배 세계기왕전 8강전 당시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중국 기자들이 이세돌에게 물었다. "세계정상급 기사라면 이창호 9단, 조훈현 9단, 마샤오춘(馬曉春‧Ma Xiao Chun) 9단이 꼽히는데 이중 존경하는 기사는 누구인가."

그러자 이세돌은 "다 좋은 기사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존경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곧장 "한 사람은 빼 달라. 마샤오춘 9단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샤오춘은 당시 중국 바둑계의 일인자였다.

이어 중국 기자가 "자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이세돌은 "물론 내가 최고다"라고 말했었다.

이랬던 이세돌이 이번 대국 기간에는 내내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가 잘 하지 않던 "존경한다"라는 말도 선선히 했다. 상대는 알파고 개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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