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단 댓글이 논란을 불렀다. 대한항공 부기장 김모 씨는 지난 13일 조종사가 비행 전 수행하는 절차를 짚어보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여기에 조 회장이 직접 단 댓글이 문제였다. 조종사의 역할과 전문성을 무시하는 내용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이 댓글이 명예 훼손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비행기 조종?
이 문제는, '자동화'에 따른 숙련 노동의 평가 절하와 맞물려 있다. 비행기 운행 역시 상당 부분 자동화돼 있다. 자동항법장치 등의 발달 덕분이다. 고용주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볼까. 조 회장의 댓글에 그 단면이 드러나 있다.
조 회장은 이날 댓글에서 "전문 용어로 잔뜩 나열했지만 99%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운항관리사가 다 브리핑해주고, 기상변화는 오퍼레이션센터에서 분석해준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조종사는 GO, NO GO(가느냐, 마느냐)만 결정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오토파일럿으로 가는데"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아주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 마치 대서양을 최초로 무착륙 횡단한 린드버그 같은 소리를 하네요"라고 비아냥댔다. "열심히 비행기를 타는 다수 조종사를 욕되게 하지 마세요"라고도 했다.
대한항공 노조 "조양호 회장, 잘못된 정보로 조종사 명예 훼손"
조 회장이 직접 단 댓글이 맞는지를 놓고, 한동안 논란이 벌어졌다. 확인 결과, 맞는 걸로 드러났다. 조종사들은 들끓었다. 조종사 노조 측은 일단 사실 관계부터 문제 삼았다. 노조 측은 "(조 회장의 댓글과 달리) 대한항공은 운항관리사가 브리핑을 해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조 측은 "조 회장이 잘못된 정보로 조종사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며 법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대한항공 측은 노조가 "회사는 적자! 회장만 흑자!"라는 스티커를 붙였다는 이유로 노조 위원장과 집행부를 경찰에 고소했었다. 회사 측 입장대로라면, 조 회장 역시 고소 대상이라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명예훼손 공방과는 별도로, '자동화'를 바라보는 고용주의 시각은 두고두고 논쟁을 부를 전망이다. '자동화가 진행됐으니, 숙련 노동의 가치 역시 줄었다'라는 게 기업 경영진의 시각이라면, 기존 전문직의 고용 조건에 대한 경영진의 공격은 거세질 수 있다.
고도의 사고력이 필요한 바둑에서 기계가 인간 천재를 압도한 사건은, 경영진의 이런 태도를 더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조 회장 역시 이날 댓글에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를 언급했다. 조종사가 굳이 필요한 이유는, '알파고' 역시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수 가능성이 인간보다 현저히 낮은 자동화 시스템이 나온다면, 조종사를 고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땅콩회항', 과연 반성했나?
한편 조 회장이 직접 댓글은 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에도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댓글을 단 적이 있다.
이번 댓글 논란을 보는 시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조 회장의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지난 2014년 12월이었다. 1년 4개월 전이다. 그런데 회장이 여전히 직원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것. '땅콩회항' 사건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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