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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노예제' 사회로 가고 있다…생각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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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노예제' 사회로 가고 있다…생각 좀 하자!

[민교협의 정치시평] 이제 '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곧 전쟁이 날듯하더니, 언제 그랬나 싶게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가운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오고 갔으며, 그 가운데 그들은 나름대로 필요한 것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개성공단이 폐쇄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별로 필요할 것 같지도 않지만 북한에 대한 공포를 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무기 논의만 여진으로 남아있다. 혹자는 북한의 위협을 막고 사드 배치 논의로 중국을 끌어들였으니 결국 이 정부의 외교적 승리라고 떠들기도 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이 정도다. 결국 우리에게는 전쟁 위협과 북한과의 관계 단절이란 결과만이 남았으며, 미국의 세계 전략 체제의 하부 단위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처한 안보와 대외 관계의 현실이 얼마나 초라한지 잘 보여준다. 여전히 미국 방위산업의 이익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처한 현실의 비루함만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질 뿐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 언제 그랬나는 듯이 그 모두를 잊고 있다. 아니 잊어야 제대로 살지도 모른다. 누가 전쟁 공포 속에서 나날을 살고 싶을까. 그러는 사이 이 현실은 다시금 증폭되고 악화되어 거듭 새로운 공포로, 새로운 억압으로 다가온다. 이 공포는 거듭 다른 얼굴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는 사이 테러방지법은 현실이 되었고 전쟁 위기 속에서 척결해야할 온갖 불의들, 민주적 정치와 인간다운 삶은 심각하게 무너지고 수없이 많은 사회적 현실이 거꾸로 돌아가는 모습만이 남아있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외우기도 힘든 단어 필리버스터(Filibuster)가 한 가닥 해소제 역할을 했지만 그 역시 "총선 망칠거야!"라는 정치 공학적 발언에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또 경제 문제로 겁을 주더니, 북한의 사이버 테러가 또 다른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이버 테러 방지법도 이 기회에 통과시켜야 하지 않을까. 북한이 전방위로 우리를 테러한다니,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코 박고 다니는 그 스마트폰이 테러 당하면 이건 정말 심각하지 않은가. 거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코 박고 눈 박고 사는 스마트폰이 테러의 대상인데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나. 사회는 심각하게 계급 사회가 되고 90%와 10%를 분리해서 이 계층을 조선시대 노비 사회로 돌리려는 노력이 절절히 진행 되는데, 우리는 전쟁과 테러와 정치권력에 휩쓸려 다니며,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오락가락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 일상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청년 백수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기쁨이 어떠냐는 너스레를 들으면서 임금은 끝없이 졸아드는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안토니오 네그리는 전 지구화된 자본주의에는 외부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부에서 자본주의의 전 세계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그들 자산가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한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이나 6.25전쟁 같은 전면전이 아니라 테러와 같은 낮은 강도의 전쟁이 수행되고 있다. 이는 자본을 위한 전쟁이지 적에 맞서거나 평화를 위한 전쟁이 아니다. 이런 분석이 옳은 것일까. 유럽과 중동 지역을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동아시아 세계와 한국을 보면 또 다른 분석틀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는 이런 전 지구화된 자본의 외부 없는 전쟁에 맞서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중의 일반지성을 모아 자본이 무한히 확장되고 모두를 노동과 비물질노동으로 내모는 전쟁에 전쟁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이 나라는 신분과 혈연에 의한 계층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의한 계급사회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위계급에 속하거나 속한다고 착각하는 나머지들이 이 사회를 구분과 통제를 통한 신노비사회로, 반민주주의 시대로 역행시키는 일을 느리지만 분명하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너희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되. 우리는 너희와는 달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너희들을 새로운 피지배계급으로 만들고 그 위에 군림한다. 스마트폰에 코 박고 눈 박은 사람들이, 총선에 임시로 동원되는 그들이, 작은 이익이라도 생기는 듯이 착각하고 맹목적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종북 좌파란 말만 들어도 엄청나게 쪼그라드는 그들이 그 "너희들"이다.

지금 전 세계는 후기 자본주의 이후를 모색하고 있다. 독점인가, 공생인가. 자본주의뿐 아니라 근대 이래의 문화와 사회가 이행하는 시기가 지금이다.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지금 이 이행기를 되돌아보고 나아가야할 곳을 상상하고, 인간다움을 생각하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계급사회, 새로운 야만과 독점의 시대로 내몰릴 것이다. 저항하고 맞서며, 그들의 전쟁에 맞선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끌려가서 그렇게 포로가 될 것이다. 그렇게 허덕이며 억압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자본이 더 나은 독점 자본으로 이행하는 시간이며, 권력이 자신을 유일한 힘으로 전환하려 서두르는 시간이다. 우리의 두려움과 무지, 생각하지 않음을 이용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들이 저질러 놓고 던져놓는 수많은 의제(agenda)를 반대하고 아니라고 외치다가 그것이 현실이 되면 곧장 잊어버린다. 다시 그들이 던지는 새로운 무언가에 흥분하고 반대하다가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서서히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전쟁과 계급 사회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포기가 필요하며 전환이 필요하며, 그를 위한 생각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본에서, 권위주의에서, 생각하지 않음에서, 경제란 논리에서 벗어나는 포기이며 전환이다. 무지와 두려움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 길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간다움이 무엇이며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 길은 존재론적 의미를 생각하고 이를 행하는 길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참되게 있기 위해서는 참되게 생각하고, 참되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삶은 그렇지 않게 생각하고 그렇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과 말, 그 행동은 전적으로 지금 여기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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