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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20만원 받는데 '횡령·배임'을 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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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20만원 받는데 '횡령·배임'을 했다고요?"

롯데마트 비정규직 5명, 징계위 회부된 까닭은?

그날도 할인 업무에 치였다. 롯데마트 진장점의 식품부에서 일하는 이혜경(49) 씨는 오후조로 출근할 때면 진열된 상품 가운데 진열기한이 임박했거나 상품 상태가 좋지 않은 물건들에 할인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다시피 했다.

매장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가면 할인 업무는 더 많아졌다. 다음날 폐기해야 하는 상품들은 그 가운데 상태가 비교적 좋은 것들을 골라 할인율을 높여 다시 스티커를 붙이곤 했었다. 할인은 내부 규정이 있었지만, 관리자의 지시가 있으면 규정보다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관리자는 종종 "이거 폐기치느니 조금이라도 받고 팔면 좋으니까 80% 할인 쳐 날리세요"라고 말하곤 했었다.

정규직 직원인 관리자가 퇴근한 후에도 그런 '관례'에 따라 혜경 씨는 할인 업무를 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을 뿐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일하던 매장에서 장을 봤다. 본인이 할인 '친' 상품 중에서도 몇 개를 골라 장바구니에 넣고 계산을 했다. "멀쩡한 물건인데 아깝다"는 생각에 필요 없는 것도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는 날도 있었다.

그날들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난 5일 혜경 씨에게 날아 온 징계 사유서에는 '횡령, 배임, 내부규정 위반'이라는 엄청난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 징계사유서를 받고는 이게 나한테 적용되는 말인가 실감을 못 했어요. 도대체 횡령과 배임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데, 사람의 명예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단어들이 왜 나한테 써 있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17일 서울 롯데마트 본사에서 열리는 징계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에서 올라 온 이혜경 씨를 서울역에서 만났다.

▲롯데마트 울산 진장점 비정규직 노동자 이혜경 씨. ⓒ프레시안(최형락)


"규정에 따라 할인 업무하고, 고객들이 안 사간 물건 돈 내고 샀을 뿐인데 '징계'라니…"

이혜경 씨는 2014년 10월부터 울산의 롯데마트 진장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문제가 시작된 건 지난 1월 초였다. 직원들 가운데 계산도 안 하고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 왔다며 전 직원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매장 관리자가 한 차례 조사를 하더니, 1월 말쯤엔 본사 윤리경영팀에서 내려와 직접 조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혜경 씨 자신에게 불똥이 튈 거라는 것을.

"직원 가운데 한 명이 물건을 그냥 가져가는 걸 직접 본 사람이 있었어요. 저러면 안 되는데, 고민을 했죠. 직접 얘기할까, 위에 얘기할까. 저희끼리 얘기하는 걸 담당 실장이 듣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직원을 조사하면서 저희까지 같이 조사를 하더라고요. 사실 그 직원이 얼마나 부끄럽고 힘들까 싶어서, 우리끼리는 조사할 때도 그 직원 얘기는 하지 말자고, 입 다물자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그 직원은 130만 원 손해배상 하고 자진퇴사 시켰다고 하더라고요. 절도는 사실 형사 처벌 대상이잖아요. 그런데 회사에서 조용히 처리하더니, 저희를 불러서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취조하고 조사하는 거예요."

문제가 된 것은 혜경 씨와 그의 동료들이 자신이 일한 매장에서 장을 본 영수증들이었다. 회사는 지난 1년 간의 구매 내역서를 뽑아 왔고, 그 중에서 할인상품을 많이 사간 것을 문제 삼았다. 핵심은 '당신이 그 물건을 사 가기 위해서 할인율을 적용한 것 아니냐'는 거였다.

혜경 씨는 기가 찬다고 했다. "할인은 절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할인은 규정이 있다. 진열기한, 시간 등에 따라 적용되는 할인율이 정해져 있다. 문제가 된 건 '임의 할인'이다. 이 임의 할인은 정규직 관리자와 소통을 통해 정해진 규정보다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안 팔리는 상품이 있으면 폐기하는 것보다는 회사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받고 팔라고 해요. 사실 저희 입장에서는 폐기 처분하는 게 일이 더 수월한데, 또 다들 주부기도 하고 그러니까 멀쩡한 건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마감 임박한 시간이 되면 70-80% 할인 치는 거예요. 사실 저희 지점이 고객 대비 발주량이 많아서 안 팔리니까 할인 업무가 너무 많아요. 그런데 과다 발주나 과다 할인은 저 같은 말단 직원에게 책임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혜경 씨는 롯데마트 본사로부터 징계위 회부 통보를 받았다. ⓒ프레시안(최형락)
할인율을 높인다고 고객들이 무조건 사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할인이 많이 되더라도, 신선 식품은 눈으로 보이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면 고객도 손을 대지 않는다. 이혜경 씨는 "저희는 직접 물건을 만지니까 눈으로 보기에 안 좋아도 먹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잘 안다"고 말했다.

"마늘 같은 것도 고객들이 만져보고는 안 가져가면, 아까우니까 사가고 그랬어요. 과일도 작년까지만 해도 진열 기간이 지나도 상태 좋은 걸 손 봐서 할인 붙여 판매했거든요. 그런데 고객들은 색이 변하고 시들시들하면 안 사 가요. 그래도 우리는 특정 과일 좋아하면 집에 갈 때 사가죠. 그런데 그걸 '네가 일부러 임의 할인 해서 구매하지 않았냐, 그때 다른 고객들이 같은 제품을 몇 개를 사갔냐'며 추궁하더라고요. 할인 많이 되는 물건이 한 상품에서 수십 개가 나오진 않잖아요."

폐기하는 것보다는 할인 찍어 내놓아 하나라도 팔아보자고 생각했던 일이 "왜 퇴근한 관리자에게 전화도 안 해보고 마음대로 할인 쳤냐"는 추궁으로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횡령·배임'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오갔던 조사 과정에서 4명이 회사가 불러주는대로 확인서를 썼다. 혜경 씨만 확인서를 안 썼을 뿐, 확인서를 쓴 4명이 고스란히 징계위에 회부됐다.

"강제로 쓰라고 해서, 쓰면 빨리 마무리될까봐 썼다더라고요. 임의 할인 해서 내가 사갔다는 내용인데, 불러 주는대로 썼대요. 사실 임의 할인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게 없는 건 회사 책임이잖아요. 저희는 시키는 업무 했을 뿐이고, 안 팔리는 상품 사갔을 뿐인데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도 되나요?"

직원이기도 하지만, 고객이기도 했던 혜경 씨는 이런 일이 벌어진 이후에 매장에서 절대 장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치사하더라고요. 제 월급이 한 달에 120만 원인데, 마트에서 일한 초기에는 110만 원씩 마트에서 물건 산 카드 값이 나오고 그랬어요. 다들 '처음엔 원래 그렇다' 그러더라고요. 물건이 눈 앞에 보이니까 필요 없어도 사게 되고. 그런데 이제는 팔아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생기죠."

"'임의 할인' 명확하지 않은 건 회사 책임인데,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도 되나요?"

회사는 왜 무리한 징계를 하려는 것일까? 혜경 씨와 동료들은 이들의 노조 활동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롯데마트에는 한국노총 소속의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조합이 진장점에 설립됐다. 롯데마트 전국 지점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곳은 진장점 포함 울산의 2곳이 전부였다.

▲롯데마트 울산 진장점 ⓒ롯데마트


징계위에 회부된 이혜경 씨는 진장점지부 지부장이다. 징계 대상자 5명 가운데 4명이 노조 조합원이다. 할인 관련 업무를 책임지는 정규직 관리자는 정작 이번 징계 대상자엔 포함되지도 않았다. 징계를 둘러싼 혜경 씨의 '의심'의 근거를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부 설립 이후 조합 가입률이 높아지니까 회사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압박을 하더라고요. 줄줄이 탈퇴가 이어졌어요. 사무장을 맡았던 분에게도 '회사에서 지켜보고 있다'며 압박을 해서 그 분도 밤잠 며칠 못 자다 탈퇴했고요. 지부 설립할 때, 못 받은 연장 근로 수당을 달라고 고소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장 근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더라고요. 아무리 롯데그룹이 민주노조를 싫어한다지만, 있는 사실을 없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구나 놀랐죠."

조합원들의 탈퇴가 이어지자, 지부는 지난해 11월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울산노동청에 고발을 했다. 점장부터 관리자들까지 노동청의 조사를 받았고, 이혜경 씨는 담당 실장에게 '왜 그렇게 일을 크게 만드냐'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회사가 만들어 놓은 '임의 할인' 규정이 혜경 씨와 동료들의 덫이 되었다. 혜경 씨는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만둬 버릴까 생각도 했어요. 이런 회사에 내가 왜 몸 바쳐 일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여기서 포기하거나 그만두면, 그게 회사가 바라는 바잖아요. 저 사람들 문제가 있어서 그만둔 거라고 할 테구요. 제가 그만둬도 이런 얼토당토 않는 일로 징계위까지 소집해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일은 또 일어날 수 있구요. 징계위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끝까지 싸울 거예요. 너무 말이 안 되니까요."

울산대형마트노조협의회는 지난 15일 기자 회견을 열어 "롯데마트는 기강을 바로 잡는다는 빌미로 민주노조 조합원에 대한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뼈빠지게 일해주고 돈 보태주니까 직원을 도둑으로까지 몰아 징계하려고 하는 롯데마트가 정상적인 회사냐"고 덧붙였다.

롯데마트 "노조원이 징계 대상에 많이 포함된 것은 우연"

한편, 롯데마트 측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할인 스티커를 붙이지 말아야 할 상품과 할인율을 조금만 해야 하는 상품에 임의로 할인율을 높인 뒤 본인들이 구매해간 것이 문제이며 관련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롯데마트 측 관계자는 '본인들이 필요한 물품에 일부러 할인률을 적용했다는 거냐'는 질문에 "그 지점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할인 상품을 사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본인 담당 상품 외에) 다른 상품까지 1년에 걸쳐 여러 차례 같은 행위가 적발됐다"고 말했다.

'임의 할인'을 책임지는 관리자는 왜 징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관리자도 책임을 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원이 징계 대상자에 많이 포함된 것은 우연"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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