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경우, 수많은 여론 조사 예상대로 공중전을 벌인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했고 아이오와 주에서 승리를 거둔 테드 크루즈는 3위에 그쳤다. 민주당의 경우, 최종 22.4%포인트의 큰 차로 샌더스가 힐러리에 크게 이겼다.
지난주(2월 1일) 아이오와 주의 코커스(당원 대회)에서 초접전 끝에 0.2%포인트의 간발의 차로 힐러리 후보에게 패배한 샌더스 후보에게는 이번 뉴햄프셔에서의 승리가, 그것도 두 자릿수의 격차로 크게 이겨야 하는 절실한 상황이었다.
미국 언론은 만약 샌더스가 뉴햄프셔에서 패하거나 5%포인트 미만의 신승인 경우,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을 얻어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샌더스는 이번 뉴햄프셔에서 크게 승리함으로써 7월에 열릴 민주당의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 대회(Convention)에서 승리할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
과연 샌더스가 7월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얻어낼까?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박영철 전 원광대 교수와 이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인터뷰는 2월 8일과 9일 양일간에 이루어졌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 분석가(Country Economist and Project Analyst)로 15년(1974~1988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원광대학교 교수(경제학부 국제경제학)를 역임했고, 2010년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며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희경 : 여론 조사의 예상대로 샌더스가 뉴햄프셔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2월 9일 자정 현재 21%포인트의 큰 차로 압승을 했군요. 어제까지 미국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얼마나 큰 승리여야 샌더스에게 충분한 승리가 되는가?(How big winning is big enough for Sanders?)"였다고 하는군요. 왜냐하면, 샌더스의 승리는 거의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얼마나 큰 차이로 이기느냐? 그런 경우 샌더스의 승리 전망이 얼마나 좋아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이 정도의 격차이면 샌더스의 압승이라고 보는지요?
박영철 : 좋은 질문입니다. 가장 높은 조사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여론 조사 전문 웹인 '538(FiveThirtyEight)'의 기자 해리 엔튼은 적어도 15%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이겨야 샌더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수십 개의 여론 조사에서 격차가 가장 낮은 9%포인트, 중간치 17%포인트('538' 웹의 예상치), 최고치 30%포인트인데, 이 중 중간치 정도는 되어야 힐러리가 패배를 변명할 여지가 없고 샌더스가 승기를 잡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또 한 번 '538'의 예측이 얼추 맞았습니다. 이번 뉴햄프셔 주에서 샌더스가 22.4%포인트 차로 이겼으니까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주 단위로 맞춘 실력을 다시 실감합니다.
전희경 : 이번 뉴햄프셔 주의 승리로 샌더스가 승리의 기선을 잡은 것은 확실한가요?
박영철 : 샌더스에게 이번 압승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비종교적이고 가장 진보적이고 샌더스 출신 주인 버몬트의 이웃 주' 뉴햄프셔의 오픈 프라이머리는 샌더스에게는 꼭 이겨야만 하는 경선이었습니다. 패배나 신승은 샌더스 유세의 종언을 뜻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경선 일정은 샌더스에게 비우호적입니다. 네바다 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주 등 미국 남부의 공화당 우세 주(Red States) 경선에서 진보 성향이 낮은 히스패닉과 흑인 등 소수 인종(Minority) 투표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힐러리 후보의 승리가 예정돼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주 아이오와 주의 '무승부'에 이어 이번 뉴햄프셔 주에서 두 자릿수의 큰 차이로 일궈낸 압승은 약세(Underdog) 후보인 샌더스와 지지자에게 절대 필요한 모멘텀과 초기에 불리한 유세 일정을 계속 밀고 나갈 용기를 제공합니다.
전희경 : 교수님은 이번 뉴햄프셔의 압승으로 샌더스가 7월 전당 대회에서 후보 지명을 따낼 확률이 높아졌다고 보시나요?
박영철 : 아이오와 주의 코커스 다음날 가진 인터뷰에서 "샌더스가 민주당의 후보 지명을 따낼 확률이 50%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도 그 확률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관련 기사 : 어쩌면 샌더스가 이길 수 있는 여섯 가지 이유)
전희경 : 매우 신중하시군요.
박영철 : 그렇습니다. 신중한 전망을 제시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샌더스의 경쟁력은 아직 힐러리에 비해 매우 약합니다. 조직, 자금, 지지 기반, 민주당 전국 위원회의 지원, 오바마 행정부의 힐러리 지지 등 여러 면에서 열세입니다. 지난 여름 유세 초반에 샌더스가 민주당의 후보 지명을 따낼 확률이 3%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정치, 경제, 종교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여 '정치적 혁명'과 '경제 정의'를 관철하려는 샌더스의 선거 전략은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저항과 반격을 받게 됩니다.
셋째, 우선 경제학자로서 예측은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냉철한 머리로 해야 한다는 습관을 길러왔습니다. 어려운 싸움입니다.
전희경 : 그런데도 불구하고 샌더스가 이길 확률이 50%가 된다고 전망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다음 네 가지 이유로 '조심스럽게' 샌더스의 승리를 전망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샌더스의 후보 지명전과 공화당 후보와의 본선 싸움에서의 '승리 및 당선 가능성(Electability)'을 확인한 점입니다.
둘째, 민주당의 이념 변화(Ideological Shift)가 더 진보로 좌편향하는 추세입니다.
셋째, 민주당의 이번 대선 후보 지명은 '이념, 성, 세대' 간의 싸움으로 샌더스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넷째, 힐러리의 '자신과 연관된 문젯거리'가 갈수록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
전희경 : 첫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힐러리 진영이 샌더스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으면서 선거 유세 중 자주 사용하는 무기가 바로 이 민주당의 후보 지명전에서의 '승리 가능성'과 공화당 후보와의 본선에서의 '당선 가능성' 문제입니다. 이번 샌더스의 뉴햄프셔 압승이 이 같은 의구심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보시나요?
박영철 : 힐러리 진영은 샌더스의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선전을 이 두 주가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며 비종교적이고 그리고 가장 높은 비율의 무당층(Independents)을 가진 지역 특성 때문이라며 그 의미를 깎아 내립니다. 그런데 최근 미 전역 여론 조사에서 힐러리 진영의 이 같은 주장이 허구일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2월 5일 시행된 퀴니피액(Quinnipiac) 대학의 전국 여론 조사에 의하면 클린턴이 44%의 지지율로 42%를 얻은 샌더스를 가까스로 이기고 있습니다. 지난 12월에만 해도 그 격차가 25%에 가까웠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충격적인 변화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실시된 3개의 전국 여론 조사에 의하면 공화당의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마르코 루비오, 테드 크루즈 등과 맞붙는 가상 대결에서 샌더스와 힐러리가 거의 비슷한 성과를 낸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물론 선거 5개월 전의 여론 조사 결과는 믿을 것이 못 됩니다. 하지만 여론의 방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특히 샌더스 진영에는 무척 고무적인 소식입니다.
전희경 : "민주당의 이념 변화가 더 왼쪽으로, 더 진보로 가는 추세입니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박영철 : <월스트리트>의 로라 먹클러와 리차드 루빈은 "민주당의 좌향좌가 샌더스를 돕는다(Democrats' Shift Left Aids Sanders)"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자칭 민주 사회주의자라고 자랑하며 '부를 골고루 나누는' 소득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치적 혁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샌더스의 출현은 민주당이 이념적으로 크게(Major Shift) 왼쪽으로(Left Wing)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1930년 대공황기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수정 자본주의,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의 사회 보장(Social Security) 제도, 1990년대 빌 클린턴의 중도 실용주의(Centrist Pragmatism) 그리고 2010년대 오바마의 전 국민 의료 보험 제도 도입 등과 큰 줄기에서는 맥을 같이 하면서도 이것보다 훨씬 강도 높은 급진적 변혁을 주장하는 샌더스의 출현은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이 대표하는 민주당의 진보 진영에 커다란 이념 변화, 특히 날로 악화하는 소득 불평등의 진범인 월스트리트의 성장 모델을 바꾸어야 한다는 이념 변화가 발생했기에 가능하다고 합니다.
민주당의 경우 진보층이 1992년 36%에서 2016년 46%로 크게 상승하고 반대로 보수층은 1992년의 37%에서 2016년에는 겨우 14%로 급감했습니다. 반대로 공화당에는 같은 기간(1992~2016년) 놀랍게도 별 변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수층이 69%에서 64%로 조금이지만 감소했습니다.
문제는 샌더스의 정치 혁명이 미국 국민 다수의 '시대정신'으로 발전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이번 뉴햄프셔의 샌더스 압승이 이런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고 봅니다.
전희경 : 이번 민주당의 대선 후보 지명은 '이념, 성, 세대' 간의 싸움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이 전투 지형이 샌더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박영철 : 적어도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오픈 프라이머리에서는 이런 전투 지형이 샌더스에게 크게 유리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우선 이념 면에서는 "이제 그만(Enough is Enough)" "상위 1%의 억만장자만을 위한 월스트리트 모델을 이제 끝내자" "부와 소득을 골고루 나누어 가지자" 등 샌더스의 급진적인 주장이 좋은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힐러리 진영의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을 뽑자는 선거 전략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힐러리를 지지하는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여성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여성들은 지옥에 간다"는 막말이 많은 여성 투표자의 반감을 사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젊은 밀레니엄 세대(Millennials) 여성은 힐러리 진영의 '페미니즘 경향(Feminism pitch)'에 기반을 둔 유치한 유세 전략을 규탄할 정도입니다.
세대 간 싸움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극명하게 나타났습니다. 17~29세 젊은 층은 84%가 샌더스를, 14%가 힐러리를 지지한 것으로 나옵니다. 반대로 65세 이상은 69%가 힐러리를, 26%만이 샌더스를 지지했습니다. 뉴햄프셔 주에서는 65세 이상을 제외하고 모든 연령대에서 샌더스를 지지했습니다.
전희경 : 네 번째 질문을 드립니다. 힐러리의 '자신과 연관된 문젯거리 (A lot of Baggages)'가 갈수록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고 하셨는데 설명해주십시오.
박영철 : 지난번 인터뷰에서 힐러리의 '자신과 관련된 문젯거리'를 길게 열거했습니다. (☞관련 기사 : 어쩌면 샌더스가 이길 수 있는 여섯 가지 이유)
그 중 두 개가 최근 더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힐러리 후보가 국무장관 당시 개인 이메일을 통해 국가 비밀 정보를 교환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67만 달러를 받고 골드만 삭스 대형 투자 은행에서 행한 강연의 카피를 공개하라는 주문을 거부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샌더스 진영은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샌더스 본인도 지난 후보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힐러리 국무장관님,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와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라고 저를 압박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본선에서 공화당이 이 문젯거리를 물고 늘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죠.
전희경 : 지금까지 뉴햄프셔의 압승을 계기로 샌더스 후보가 앞으로 연달아 있을 미 남부 보수적인 주의 힘든 경선에서 나름 선전할 이유 등을 짚어 주셨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남기고 싶은 말씀은?
박영철 : 최근 한국 정가에도 샌더스 돌풍에 관한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아전인수 격으로 샌더스 돌풍을 자기 선전에 악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개그를 피하기 위해서는 샌더스의 파격적인 선거 공약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샌더스 공약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부자 증세를 통한 재정 확보로 복지 수혜 대상과 지원을 확장하며, 소득을 골고루 나누어 가진다."
즉, 샌더스의 경제 공약은 근원적인 경제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부자 증세와 정부 역할의 강화 없는 경제 공약은 모두 헛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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