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경우, 수많은 여론 조사의 예상을 뒤엎고 티파티의 테드 크루즈가 '막말 챔피언' 도널드 트럼프를 따돌리고 여유 있게 승리했다.
반대로 민주당의 결과는 예상보다 더 치열한 초접전이었다. CNN은 2월 2일 새벽 2시 30분(현지 시각) 현재 힐러리가 49.9%로 49.6%를 얻은 샌더스를 제치고 신승했다고 발표했다.
아이오와 당원대회의 결과에 대한 미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 힐러리 후보의 경우, 가까스로 얻은 신승이지만 실제로는 '무승부(Virtual Tie)'이다. 앞으로 힘든 싸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 샌더스는 거의 승리에 맞먹는 선전을 함으로써 앞으로의 승리 전망은 오히려 강화된 셈이다
- 이제 100미터 경주는 끝나고, 6개월간의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과연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누가 대선 후보로 지명될 것인가?
이에 대한 전망을 듣기 위하여 아이오와 당원대회 다음날 박영철 전 원광대 교수와 긴급 인터뷰를 했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 분석가(Country Economist and Project Analyst)로 15년(1974~1988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원광대학교 교수(경제학부 국제경제학)를 역임했고, 2010년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며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희경 : 아이오와 민주당 선거 관리국이 2월 2일 새벽까지 아이오와 당원 대회 한 개의 투표소 개표 결과가 알려지지 않는 관계로 보류하던 힐러리의 공식 승리를 방금 전(현지 시각 2월 2일 오후 2시 28분)에 공포했군요. CNN 보도에 의하면, 다음 주 화요일(2월 9일)에 완전 국민 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가 열리는 뉴햄프셔 주에서 유세 중이던 힐러리는 이렇게 환호했다고 합니다.
"정말 감격입니다. 지난번에는 운이 없어서 졌지만, 이번에 이겨서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워싱턴 포스트>에 의하면 당원 대회 투표가 시작되고 거의 끝나갈 때까지 힐러리 후보 진영에서는 '패배라는 대재앙'이 올 수 있다는 공포에 떨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박영철 : 아이오와 당원 대회 투표가 시작되면서부터 생중계하던 여러 TV 채널이 힐러리 후보 진영이 초조해 하는 모습을 살짝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투표장에 모이는 참가자들의 수가 상상보다 훨씬 더 많았고, 처음 투표장에 나왔다는 젊은이들의 손이 위로 높이 올라가는 화면이 여러 번 화면에 잡혔기 때문입니다.
물론 힐러리 진영의 더 근원적인 초조감은 2008년 클린턴을 위협하며 전국적 후보로 자리매김한 오바마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그래서 개표 직후부터 확인되는 초접전 상황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에 차지 않는 '무승부' 소식에도 힐러리 진영이 개표가 끝난 후 긴 안도의 숨을 쉰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희경 : 그렇다면 반대로 샌더스 진영은 일단 승기를 잡은 것인가요?
박영철 :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그 기세를 잡은 것은 사실이나 확실한 승리를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이오와 당원 대회에서의 승리는 일종의 소망에 불과했지만, 지난 2주 동안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가끔 힐러리를 앞지르는 결과와 특히 열광적인 소위 민초들의 선거 자금 모금 동참(지난 1월에만 77만 명의 소액 헌금자가 보낸 자금이 2000만 달러에 달했다는 놀라운 소식)에 크게 고무돼 있었습니다.
전희경 : 미국 언론의 표현대로 이제 100미터 경주가 끝나고 6개월 동안의 긴 마라톤이 시작하는군요. 지난번 인터뷰에서 교수님은 "만약 샌더스 후보가 아이오와 당원 대회와 뉴햄프셔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이기면 민주당 후보가 될 확률이 50%로 올라간다"라고 전망하셨습니다. (☞관련 기사 : 2월 1일, 어쩌면 미국이 빨갛게 물든다)
아이오와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 시점에서 지난번의 전망을 바꾸실 생각이신지요?
박영철 : 아닙니다. 지난번 전망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될 확률이 50%가 된다는 전망은 이 시점에 매우 파격적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미국 전국 여론 조사에서 힐러리가 15%포인트 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희경 : 전망에 자신감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 근거를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번 아이오와 당원 대회 결과로 인하여 힐러리의 취약점과 샌더스의 강점이 더 분명해졌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힐러리와의 차별화가 더 뚜렷해진 셈입니다.
전희경 : 교수님이 보시는 힐러리의 취약점은 무엇인가요?
박영철 : 어느 힐러리 지지자가 걱정했듯이, 힐러리의 가장 중요한 취약점은 '자신 스스로와 관련된 문젯거리가 너무 많다(She got a lot of baggages)'는 사실입니다. 대충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월스트리트와의 정경 유착 의혹.
- 슈퍼팩(Super PAC)의 정치 자금 후원.
- 국무장관 시절 사용한 개인 이메일의 재부상(이 문제의 핵심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힐러리의 정치 판단 능력과 개인적 편의 주장에 대한 공화당의 공략입니다).
- 뱅가지 대사관 참사에 대한 당시 국무장관 힐러리의 책임 공박.
- 일종의 '클린턴 피로(Clinton Fatigue)' 현상의 지속.
- 남편 빌 클린턴의 스캔들.
- 감성적인 접촉의 부족.
- 과대한 강연료와 대형 은행과 부자 모임에서의 강연.
- 잦은 말 바꾸기(Flip-Flop) :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에 대한 반대 성명 등.
- 정직성에 대한 의구심 등
전희경 : 힐러리가 내놓은 정책 공약 자체의 취약점은 없나요?
박영철 : 거기에도 약점이 있습니다. 우선 힐러리가 최근에 오바마 정책의 '연속성(Continuity)'을 선언했는데 이는 양날의 칼의 성격을 지닙니다. 물론 이 선언은 오바마 지지자와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를 겨냥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월스트리트> 사설에 의하면 민주당 지지자 중 56%가 오바마 정책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에 실망한 민주당 진보 진영에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불러옵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본선에서 힐러리의 오바마 정책 지속에 대한 공화당의 공략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 더 심각한 문제는 힐러리의 '점진적 월스트리트 개혁'이 최근의 민주당 시대정신인 '정치 혁명을 통한 근원적인 경제 구조 개혁, 특히 시간이 갈수록 악화하는 소득 불평등 해소'에 대한 열망에 비해 무척 미적지근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거기에다 힐러리의 개혁 공약 실천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전희경 : 생각보다 힐러리의 약점 리스트가 제법 길군요.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것들이 크게 주목 받지 못했는데 왜 갑자기 큰 문제가 된 것인가요?
박영철 :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쟁자 샌더스의 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당연히 공화당이 더 치열하게 공략할 문제들입니다만, 이번에는 그 성격이 좀 다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힐러리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없을 때는 민주당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민주당 지도부(Party Institution)가 지지하는 후보자를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강력한 대안, 즉 샌더스가 나타난 것입니다. 아이오와 당원 대회가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봅니다.
전희경 : 그렇군요. 이제는 샌더스 강점을 말씀해 주실 차례입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 등 워싱턴 정가의 암묵적인 지지와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아이오와 주 신문 <디모인 레지스터(Des Moines Register)> 등의 공개적인 지지 선언을 끌어낸 힐러리와 싸워 이기려면 개인적인 호감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정강 정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또 그 시행 의지와 전략을 발표하여 지지 세력을 투표장에 끌어내야 하죠. 샌더스가 이런 어려운 유세 전략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요?
박영철 : 매우 적절한 지적입니다. 제 생각에는 샌더스가 성공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보는 샌더스의 강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무엇보다 샌더스가 주창하는 선거 공약 메시지의 참신한 내용과 그 전달 방법의 탁월한 감성적 우수성입니다. 샌더스 선거 공약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복지 정책을 강화하여 몰락하는 중산층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99% 국민의 '믿을 수 있는 미래(The Future to Believe in)'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이제 그만(Enough is Enough)"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둘째, 샌더스의 따뜻한 인간미와 새로운 '정치 혁명'에 대한 이념이 젊은, 고학력의, 진보 성향을 가진, 그리고 무당층으로 구성된 열광적인 지지자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30세 이하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샌더스는 58%와 84%로 클린턴의 37%와 14%보다 지지율에서 크게 앞섭니다. 심지어 '첫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힐러리의 지지자 중에서 미혼 여성들의 다수가 샌더스를 지지한다는 여론 조사가 있을 정도입니다.
셋째, 샌더스의 '실탄', 즉 풀뿌리들이 헌금한 정치 자금이 상상외로 튼튼합니다. 샌더스가 주장하는 '정치 혁명'의 핵심 중 하나가 미국의 정치 자금 모금 제도를 확 바꾸자는 것입니다. 즉 부자와 대형 은행들이 슈퍼팩을 통해 자신들의 '허수아비(Puppet)'인 정치인을 당선시키는 현행 제도 대신에 민초들이 소액을 기부하여 정치 자금을 조성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번에 샌더스는 이 같은 방법으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아래 표를 보면, 힐러리는 총모금의 30% 정도가 슈퍼팩에서 옵니다. 반대로 샌더스의 경우는 슈퍼팩의 헌금이 제로(0)입니다.
관련해서 강조할 사항은 지난 1월 한 달간 민초들 77만 명이 인터넷을 통해 샌더스 진영에 헌금한 액수가 2000만 달러입니다. 지난 1년간 모은 7000만 달러의 30%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헌금은 법정 상한선에 크게 뒤지기 때문에 이들은 앞으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더 헌금할 수 있습니다.
넷째, 다음 주 화요일(2월 9일)에 있는 뉴햄프셔의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샌더스가 승리할 확률이 높습니다. 최종 여론 조사에 의하면 샌더스가 15%포인트 앞서고 있고 더 강해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샌더스에게 뉴햄프셔 주의 승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 출신 지역인 버몬트의 옆 동네일 뿐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비종교적이고 진보적이고 무당층이 두꺼운' 이곳에서 샌더스의 패배는 곧 유세 캠페인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이곳의 승리는 며칠 전 아이오와 당원 대회의 승리와 함께 강력한 승리 기조의 모멘텀을 형성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주당의 대의원 선정 제도가 샌더스에 유리합니다. 앞으로 치러질 민주당의 당원 대회나 오픈 프라이머리가 공화당의 '승자 독식' 방법과는 달리 '득표 비율제'입니다. 따라서 어느 주에서 비록 크게 지더라도 선거 유세를 지속하는 것이 훨씬 최종 결과에 도움이 됩니다. 샌더스가 중도에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민주당의 유세가 마라톤이 될 것이 확실한 이유입니다.
여섯째, 오바마 정책에 반대하는 전략이 반드시 불이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힐러리 진영이 최근에 오바마 정책의 지속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 반해 샌더스는 과감하게 '오바마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바마 정책에 동의하는 민주당원이 56%라는 여론 조사를 보면 샌더스의 이런 정책은 손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 워싱턴 정가, 반 월스트리트, 반 재벌의 정서와 이들에 대한 분노가 갈수록 강화되는 현 시점에서 샌더스 정책의 손익 계산이 반드시 마이너스라고 볼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전희경 : 샌더스의 강점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2016년 미국 경제 전망이 시간이 지날수록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11월까지 계속될 미국 대선, 특히 민주당의 후보 지명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시는지요?
박영철 : 경기가 좋아지면 물론 민주당에 큰 플러스가 됩니다. 그리고 오바마 정책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힐러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반대 경우에는 공화당과 샌더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특히 힐러리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샌더스에게는 예상되는 미적지근한 경기 회복이 더 부익부 빈익빈, 즉 소득 불평등을 심화한다면서 이의 해소를 주창하는 자신의 경제 공약으로 지지자를 모을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희경 : 인터뷰를 마치면서 남기고 싶은 말씀은?
박영철 : 미 언론에 의하면 2016년 민주당의 후보 지명전은 '이념과 세대의 대결'이라고 합니다. 미국 대선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의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미국 정치와 경제 체제에 의미 있는 변화가 올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에는 오는 4월에 총선, 내년(2017년) 12월에 대선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년 대선의 전초전인 4월 총선의 의미가 큽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총선의 화두가 '경제 민주화'와 '더 많은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미국 대선과 매우 닮은 점이라고 봅니다. 한국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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