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13 총선 또 2017년 대선에서 호남 민심은 어디로 갈까요? 호남 주민은 대대로 선거에서 이른바 '민주 후보'와 야당에게 몰표를 던졌습니다. 1997년의 정권 교체로 탄생한 김대중 대통령,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기적 역시 호남이라는 '상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호남의 몰표는 정작 자신이 대통령으로 만든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도 조롱을 당했죠("호남이 날 좋아서 찍었느냐, 이회창이 싫어서 찍었지"). 하지만 호남은 또 2012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로 나온 '영남 출신' 문재인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습니다. 아시다시피 그와 야당은 정권 교체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야권은 분열했습니다.
지금 호남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호남의 토호-엘리트 등이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으로 이미 분열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호남의 보통 사람 사이에서도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 틈에 정의당, 녹색당과 같은 진보 정당이 굴기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요.
김욱 서남대학교 교수의 도발적인 책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 펴냄)과 이에 대한 장은주 교수의 역시 도발적인 칼럼을 계기로 '호남'을 둘러싼 날선 공방이 <프레시안> 지면에서 진행 중입니다. '호남의 선택'을 둘러싼 이모저모는 프레시안 옴부즈만을 비롯한 여러 독자가 직간접적으로 공론화를 요청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 : 호남이 '세속화' 되어야 한다고?(장은주), 선거 전엔 '호남 몰표'! 선거 후엔 '호남 없는 개혁'?(김욱), "호남 타령 그만하고, 영남 너나 잘하세요!"(윤중대))
장은주, 김욱 교수와 윤중대 씨의 글에 이어서 서울에서 나고 자라 부산에서 가르치는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가 또 다른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언제든지 환영합니다(tyio@pressian.com).
한국 사회 영남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호남 지역주의를 분석한 김욱의 <아주 낯선 상식> 출간 이후 오가는 논의를 지켜보며 든 생각은 첫째 이 주제가 논쟁적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 주제는 들여다볼수록 새롭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영남 진보 개혁 세력의 일원으로 보이는) 장은주의 글과 이를 반박하는 김욱과 호남 누리꾼 윤중대의 글에서 드러나듯 당사자(?) 간 대화가 어긋나 보인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진의를 이해하고 단일한 쟁점 위에서 논박을 펼치기보다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뭔가 겉도는 논쟁 같아 보인다.
경험의 차이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는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 개인의 상이한 역사적 환경은 당연히 상이한 인식과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성된 입장의 차이 때문에 한국어라는 공용어를 사용함에도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동시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사회과학 서적이면 말 할 것도 없고 글을 써나가려면 선결해야 하는 기본적 문제들을 김욱은 그냥 뭉개고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또 읽고 나서도 동의하기가 어려웠음은 물론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하나의 중요한 미덕을 선사한다. 나의 오랜 궁금증을 해소시켜 준 것이다. 그게 무엇? 역설적이게도 '친노는 없다'는 것이다.
영남 패권주의, 존재를 입증할 순 없지만 비판한다?
'과학'이나 '연구'라는 게 객관적이었으면 참 좋겠지만 사실 모든 탐구 행위는 행위자의 주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연구 주제의 선정 자체가 경험적일 수밖에 없고 고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적 탐구에서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인데 그 출발점은 개념화 단계일 것이다.
분석 대상을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까지는 아니더라도) 명료하게 정의 내리는 작업이다. 그런데 김욱은 자신의 주장의 근간이 되는 핵심 개념들을 잘못 이해하거나 또는 어설프게 개념화한 채 뒤섞어 혼용했고, 이를 구체화하지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긴 책을 읽어나가면서 동의를 하기보다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김욱은 300쪽 넘는 책에서 줄기차게 한국 사회의 영남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노무현 등 친노를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자"라며 공격한다. 그렇다면, 영남 패권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놀랍게도 그는 설명을 거부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영남 패권주의의 정의 또는 실체를 밝히는 것을 포기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영남 패권 현상에도 불구하고 거의 학문적 수준에 가까운 정교한 입증을 요구한다. (…) 사회과학적 입증은 자연과학적 입증보다 훨씬 힘들다. (…) 나 역시 영남 패권주의의 존재를 정교하게 입증할 수 없다. 부질없이 그런 시도를 할 생각도 별로 없다."
이 부분에서 나는 황당함을 넘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영남 패권주의의 실체도 모르고 그 개념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영남 패권주의를 그토록 비난했단 말인가. 영남 패권주의도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 이렇게 '개념 없는' 저술이 또 있던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그는 영남 패권주의에 대한 개념 정립을 거부했을까. 혹시 개념을 설정해 보니 자신의 주장과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게 되자 개념은 그냥 뭉개고 가기로 한 것 아닌가.
TK 권력 집어 들고 PK를 공격하다
자신의 저서에서 가장 핵심 개념인 영남 패권의 실체도, 개념도 제시하지 않았으니 김욱이 영남 패권의 기반 위에 설명한 다른 모든 것들은 사상누각이 돼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영남 패권의 실체를 교묘하게 왜곡하며 독자들을 교란한다. 대구-경북(TK) 권력을 영남 패권이라 설정한 후 엉뚱하게 부산-경남(PK)의 친노를 공격하는 것이다.
김욱은 한국 사회에 강고히 자리 잡은 영남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1961년 박정희 쿠데타 이후 김대중을 빼면 모두 영남 출신 대통령이 배출됐고, 그래서 지난 55년간 50년을 영남이 집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경상북도 구미가 고향인 박정희와 경상남도 거제 출신인 김영삼이 '동향'이라고 했다. 또 "영남은 노무현과 핵심 친노 세력의 지리적 고향"이라고 했다.
그런데 노무현이 2002년 대통령 후보 출마연설에서 뭐라 했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을 단 한 번도 바꾸지 못했다. (…)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권력의 땅 영남이 고향인 노무현이 600년 된 권력을 타파하자고 한 것 말이다. 김 교수가 '영남 패권'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많다면 그 권력이 '영남'이라기보다는 대구-경북의 폐쇄적 권력이라는 정도는 말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는 영남 패권을 잘못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60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구-경북(TK)은 순조 때인 1802년 김조순의 딸이 왕비가 되자 세도 정치에 들어간 이후 200년 넘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대구-경북은 부산-경남(PK)을 같은 영남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부산·경남 사람들을 '아래 하' "하도(下道) 사람들"이라고 폄하해 부르기도 했다. 경상도라는 도명부터가 경북 경주와 상주의 지명에서 온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 TK에 의해 자신이 만든 당에서 쫓겨났고 경북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서 자신의 인형 화형식을 감내해야 했다.
김욱과 윤중대가 그토록 혐오하는 노무현이 권력을 손에 쥐긴 했다. 그러나 잠깐의 '정치권력'이었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진정한 권력은 대구-경북(TK)을 고향으로 둔 서울의 보수 기득권 집단이다.
노무현은 무모했다. 보수의 씨줄과 날줄인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 과거사법 등 이른바 '4대 악법' 개혁에 나섰고 동시에 보수의 집성촌인 강남을 허물려고 했으며 또 보수 엘리트를 배출하는 거점인 서울대학교를 건드리려 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영남 패권주의자 노무현'이 지금 어디 있는가.
김욱은 많은 경제 지표까지 동원해 영남 패권주의를 주장하면서 TK와 PK를 뒤섞어 설명하기도 하고 왔다갔다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하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특히 TK 권력을 영남 패권으로 포장한 뒤, 갑자기 이를 몽땅 친노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기교다.
200년 넘은 거대한 영남 패권을 말하다가 그 프레임을 가지고 고작 5년 정치권력 잡았다가 '폐족'이 돼 지금은 한 줌 권력도 지니지 못한 영남 친노를 비난하는 그 기발함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조국도 친노? 안철수는 아니고?
그런데 이러한 '개념 없음'은 영남 패권주의에서 끝나지 않는다. 언급했듯 이 책은 친노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에 의해 쓰인 책이다. 그런데 친노가 누구인지에 대해 그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친노란 인간의 의식으로 규정"되고 "노무현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사람"이라는데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제시한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란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 후보를 내세워 호남 몰표를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 성지'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사람이 바로 친노다.
반백 년 넘는 내 생애 가장 긴 개념이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을 말이 되게 하려고 할 때 말이 길어지는 법이다. 이것 가지고는 안 되겠던지 김욱은 남의 말도 빌려온다. 평론가 김갑수의 표현에 따르면 친노는 '반기득권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의도 정치 정파로서는 대단히 모호하지만 시민 사회 전반에 친노는 모세혈관처럼 뻗어있다"는 김갑수의 주장은 "정확하다"고까지 한다.
이쯤 되면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농락당하는 기분이랄까. 이제까지 김욱은 친노가 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패권을 거머쥐고 위선과 독재를 일삼으며 호남을 능멸한다고 주야장천 비난하고 공격했는데 이제 와서 친노는 여의도 정치 정파로서는 '대단히 모호'하고 오히려 시민 사회에 퍼져있다고? 이게 도대체 뭔가? 허깨비놀음 하나? 도대체 친노가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사실 이제까지 수많은 기자들이 '친노의 실체'를 파헤치려 달려들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기껏 실체라 할 수 있는 것은 비노들의 '공천에 대한 불안감' 정도였다. 비노에 대한 정의도 참으로 재미있다. 친노를 제외한 나머지란다.
친노에 대한 지금까지의 분석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친노를 "계파라기보다는 정서 공동체"라고 규정했다. 직접 당에 들어와서 보니 "친노는 구성원도 불분명하고 수장도 애매하지만 정치적 소명 의식과 도덕적 우월감,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계파인 듯 계파 아닌 계파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친노에 대한 김갑수와 이범의 정의를 종합하면 '반기득권 의식을 가진 정서적 공동체'이다. 이 역시 실체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좀 더 구체화한다면 정권 교체를 위해 기득권의 희생과 결단을 주장하는 혁신주의자 정도가 아닐까. 결국 이 외엔 친노의 실체를 규정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비노 의원들은 수세에 몰리면 앞뒤 안 가리고 실체도 없는 '친노 패권주의'만 외쳤던 것이고 여기에 우리는 우르르 몰려다닌 것이다.
김욱이 당내 모든 갈등을 호남 대 친노의 대결로 환원시키다보니 조국마저 "진정한 친노"라고 칭하는 참으로 생뚱맞은 일까지 벌어진다. 혁신을 주장하는 모든 인간은 친노가 되고 호남의 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다. 김욱이 말하는 노무현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들여다보자. 조국이 아니라 안철수야말로 진정한 친노 아닌가!
누가 호남을 비난했는가
김욱은 "('영남 지역주의=호남 지역주의'는 모두 잘못이라는) '양비론'에 입각해 '지역주의 부패 정당'인 민주당과는 인연을 끊고 열린우리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의 당을 만"든 것이 노무현의 잘못이고 호남인에겐 모욕이라고 했다. 이 바탕 위에서 그는 친노가 위선적인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를 휘두른다며 시작부터 끝까지 비난한다. 말인즉슨 노무현이 몰래 TK권력에 항복하며 호남을 배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지역주의 청산을 몰래 하지도 않았고 항복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공개적으로 지역주의 청산을 외쳤다. 대통령 후보 출마 연설이다.
"저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면 국민들에게 정계 재편을 제안할 것입니다. 지금의 정치 구도로서는 싸움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지역끼리 싸우니까 국회의원들도 지역끼리 싸워야 합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지역 구도를 해체하고 이념과 정책에 의해서 당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 지역 분할이 문제가 많다는 것은 요즘 중학생들도 아는 상식이다. 또 지역주의 청산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상식적인 한국인이라면 모두 동의하는 것이다. 지역주의 타파가 어떻게 "노무현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를 받는 친노의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인가. 김욱은 지역주의 투표가 앞으로도 우리가 보존해야 할 숭고한 가치라고 생각하는가?
결국 실패했지만 DJ도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 동진 정책을 시도하지 않았나. 전두환 정권을 미화하는 글을 쓰고 민정당 3선에 빛나는 김중권 의원을 DJ가 중용해 선대위원장에 이어 초대 비서실장에 앉히고 그의 고향 경북 울진에 출마케 한 것은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의 사례로 볼 수 없는 것인가.
친노가 '호남의 지역주의 몰표'를 청산의 대상으로 본다며 김욱이 발끈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청산의 대상은 지역주의이지 호남인들의 투표 행태가 아니다. 또 변화의 대상은 호남의 지역주의 투표가 아니라 당의 혁신을 방해하는 기득권 정치인들이다. 여기에 일부 호남 의원들이 포함될 뿐이다. 이들이 터줏대감 노릇하며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호남에서 신진 정치인이 등장할 리도 없고 또 이들과 결탁한 수도권 의원들은 당을 나눠먹기의 경연장으로 만들며 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시민의 발언도 개혁당 시절 변화를 거부하는 민주당의 기득권 정치인들을 비난한 것 아니던가. 그럼에도 김 교수 등은 민주당을 스스로 '전라도당'으로 인식해서인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모조리 호남인에 대한 공격으로 만들어버린다. 백번 양보해 노무현과 유시민이 그랬다 치더라도 지금은 가고 없는 그들 빼고 어느 친노가 그렇게 호남인들을 비난했나. 혹시 친노 공격의 알리바이로 삼기 위함은 아닌가.
한국 사회 패권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이제 책에서 벗어나 보자.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영남패권주의가 말해지지 않는다고 문제시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영남 권력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왔다. 영남 패권이 1980년 광주와 함께 말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영남 패권과 광주가 말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광주의 아픔과 호남의 한(恨)을 비호남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또 젊은 세대는 36년 전 벌어진 일의 실체를 아예 모른다. 5.18과 5.16을 헷갈리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서울인'들에게 5.18은 그저 지방의 일일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강령에서 5.18 민주 항쟁을 지우자고 했던 인물이다. 왜 그랬을까. 첫째 그는 비호남인이기 때문이고 둘째 그는 서울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금 호남 정치의 상징으로 우뚝 서있다. 이것은 과연 희극인가 비극인가.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실 거의 모든 국회의원들은 가족과 함께 서울에 산다. 고향은 당선을 위해 이용해먹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회의 패권이 영남에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패권은 서울이 쥐고 있다. '서울 공화국'이라지 않는가. '서울인'들의 시각에 광주의 문제는 시골의 문제일 뿐이다. 강준만이 "지방은 식민지다"라고 백날 외쳐봐야 서울인들은 "지방대 교수가 답답하니까 서울 탓하고 있다"는 정도로 여길 뿐이다. 세련된 서울인들에게 지방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시급한 현안'에 오를 자격이 없는, 촌스러운 주제일 뿐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쓸 데 없는 소리'를 하면 "지방방송 꺼!"라고 하지 않나.
서울 패권이 모든 패권에 우선한다. 서울에 가면 재벌 패권, 강남 패권, 서울대 패권, 언론 패권 등 몇 개의 하위 패권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영남 패권이다. 영남 패권은 영남에 살고 있는 시골사람들이 휘두르는 게 아니다. 서울 사람들끼리 패권 투쟁를 벌이는 가운데 자신의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학연, 혈연, 지연을 동원하는데 그 중 하나가 영남이라는 지연일 뿐이다. 한국 사회 모든 패권은 서울에서 벌어지고 서울에서 마무리된다.
만약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라는 강준만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지금 이 영남 패권주의 논쟁은 매우 희한한 싸움이 된다. 왜? 패권도 없는 식민지들끼리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 식민지'가 '저 식민지'를 비난하는데 '저 식민지' 사람들이 황당해하자 '이 식민지' 사람들은 옛날 '저 식민지' 부족장들이 자신들을 모욕했던 말들을 증거로 다시 끄집어내며 욕을 한다. 이를 보며 또 다른 '그 식민지' 사람들은 허탈해하고 서울의 지배자들은 흐뭇해한다.
과거가 미래를 지배할 것인가
김욱을 위시한 호남의 일부 지식인들은 노무현 정부 때의 피해의식 때문인지 지금도 친노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듯하다. 호남 환원주의와 친노 결정론이 결합한 이 프레임은 그러나 철저하게 과거 지향이다. 그래서 김욱 등이 분노하며 내놓는 것들은 모두 과거 노무현-유시민-문재인의 발언들이다.
과거, 아니 과거의 말이 지금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게 보수 언론이 제목을 뽑는 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욕하고 싸워야 하나. 그리고 이 발언들은 모두 10년도 더 지난 것들이다. 그 사이 노무현은 세상을 떠났고 유시민은 정계를 떠났다.
그런데 그 과거의 기억조차 상당히 선별적이고 편의적이다. 김욱은 노-유-문의 발언 외에도 노무현 정부의 대북 송금 수사와 민주당 분당, 그리고 호남 KTX 불발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친노와 호남 간 갈등을 잉태하게 된 태초의 사건인 후단협(대통령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사태는 왜 말하지 않는가.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욱은 한국 정치의 주요 모순은 지역 문제라고 했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영남 대 호남'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 사회의 권력이 어디에 있는가. 친노에게 있나? 아니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서울에 있다. 서울 사는 영남 사람, 호남 사람 모두 자기 고향은 이권 챙길 때 써먹을 뿐이다.
이들에겐 고향도 그냥 지방일 뿐 관심 없다. 김욱과 윤중대가 경멸하는 유시민도 영남 패권주의자가 아니라 서울 사람이다.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고 서울에서 죽을 것이다.
서울 사람들의 눈엔 부산마저 시골일 뿐이다. 김욱과 윤중대 모두 친노 패권의 근거지라며 부산의 야권도 언급하셨는데 황망하기만 하다. 몰락하는 대도시에 살며 42석이나 되는 지역구 시의원 하나 없고 이번 총선에서는 18대 0을 목전에 둔 별 볼일 없는 부산 야권에 대한 관심은 거두어줬으면 한다. 응원이 아니라면 말이다.
십 몇 년 전 서울 사람 유시민이 호남인들을 조롱했다 해서 그것을 지금 힘도 없는 영남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은 좀 과한 것 같다.
김욱에게 제안한다. 김 교수는 장은주 교수의 칼럼에 대한 반론에서 "그냥 투표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 나도 똑같은 말씀을 드린다. 마음대로 투표하시라고 말이다. 내가 떨칠 수 없는 세속적 욕망 때문에 가능성도 없는 정동영에게 투표했던 것처럼 말이다. 참고로, 이정현이 당선됐을 때도 호남인들의 투표를 비난한 사람 없다. 모두들 야당이 정신 차려야 한다고들 이야기했을 뿐이다.
아울러 친노 타령도 이제 멈췄으면 한다는 부탁도 드린다. 친노 패권이 도대체 언제 이야기인가. 이제 허깨비와의 싸움은 그만 하셨으면 한다. 호남의 미래가 친노에게 달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어르신들이 종북을 떠드는 것은 차라리 이해하겠다. 그러나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지금도 친노를 붙들고 늘어지는 모습은 참으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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