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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쉽게 우리 존재를 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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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쉽게 우리 존재를 잊기도 한다"

[기고] 쌍용, 강정, 용산, 밀양의 싸움, 끝나지 않았다

2015년 8월 1일, 강정생명평화대행진 마지막 날, 강정천 축구장에서 열린 제주해군기지반대 투쟁 3000일 문화제 사회를 봤다. 제주 강정에는 주민들과 우리 모두의 바다에 시멘트를 부어 해군기지가 다 지어졌고 해군들이 마을을 돌아다닌다. 해군기지 반대싸움은 계속되지만 이제 정말 시즌2를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다.

2015년 12월 26일, 경남 밀양 문화체육회관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10년 문화제의 사회를 봤다. 765KV 송전탑 69개는 모두 세워졌다. 밀양 할머니들 눈물을 타고 전기가 흐르지만 밀양을 찾는 연대의 발걸음은 지속되고 있다. 송전탑 반대 투쟁백서와 사진집 발간으로 한번 매듭을 짓고 이제 밀양은 탈핵 탈송전탑 운동으로 더 넓고 깊어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12월 30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7년 싸움의 한 장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투쟁보고대회의 사회를 맡았다. 다음 주면 비정규직 6명이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것을 포함하여 18명이 첫 번째로 출근하게 된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고 나머지 모든 해고자가 모두 복직할 때까지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농성천막을 접고 이제 해고자들 모두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2016년 1월 23일, 새로운 시공사가 조만간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하게 될 용산 참사 현장 신용산역 남일당 건물터에서 열리는 마지막 추모제인 용산 참사 7주기 추모대회 사회를 봤다.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하고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살인진압 책임자들을 감옥에 보내야하는 과제가 남아있지만 참사현장에 빌딩이 들어서게 되고, 서울시가 발간하는 용산 참사 백서 발간을 앞에 두고 있으니 용산 참사 투쟁 역시 망루 투쟁 생존 철거민들이 다시 중심에 서는 새로운 싸움으로의 전환이 시작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2012년부터, 꼬박 4년을 나름 혼신의 힘을 다했던 'SKYM_쌍용 강정 용산 밀양(이하 SKYM)' 싸움들이 한 고비를 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각기 너무 소중하고 상징적인 투쟁이었기에 제대로 기억되고 기록되고 평가 받기를 바란다. 왜 이렇게 억지로 모여서 투쟁을 해야 하냐는 비판도 있었고, 전국에 장기투쟁 사업장이 한둘이 아니고 연대할 곳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왜 그 네 곳에만 집중하면서 판을 벌여 투쟁하는 다른 이들을 소외시키느냐는 적절한 지적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국가폭력 피해자들이었고,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바로 SKYM 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인권운동판에 들어와서 한 일중 가장 잘한 일이 SKYM 과 함께 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대의 장에 나서서 내가 말을 할 수 있고, 내 의견을 다른 분들이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 준 것은 모두 내 등 뒤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쌍용, 강정, 용산, 밀양을 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난 그분들을 믿고 잘났다고 떠들었고 때로는 판을 뒤집기도 하고 주도하기도 했었다. 지나고 보니 과욕도 있었고 무리였던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고 그렇게 믿었었다. 아마 그렇게 믿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SKYM과 함께한 시간들은 내게는 성장의 시간을 넘어 성찰의 시간이었다. 당사자가 아닌 활동가가 지켜야 할 덕목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들이었고 알아도 모른척하는 미덕, 궁금해도 묻지 않는 인내, 당사자들을 존중하면서도 내 운동의 방향과 방식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하는 소통, 그리고 당사자들이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할 시간을 주고 조금 늦게 슬퍼하고 분노하며 당사자들보다 조금 먼저 그 슬픔과 분노에서 벗어나 활동가로서 일을 만들고 사람을 조직해야 한다는 책임을 배우고 느꼈다. 나의 삶과 SKYM의 사람들은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오래오래 살게 될 것이다. 물리적 거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 마음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게 되면 긴 설명이나 토론도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절절하게 알게 해 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픔은 아픔이 잘 알아본다. 나는 다행히 그 아픔을 잘 알아보는 사람들 곁에 있을 수 있어서, 나보다 먼저 그 아픔을 알아본 그 사람들이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SKYM에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합류하여 SKYMC가 되고 거기에 세월호 가족들이 함께하여 'MCSKY & SEWOL'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로 평화기행을 떠났던 2박3일과 제주 강정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전국을 걸었던 2012 생명평화대행진 한 달, 그리고 시청역 2번 출구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을 만들었던 5개월의 시간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 SKYM 과 함께하면서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움직인다고 하면 전국 어디서든 잠잘 곳을 내어주시고 기운 나는 음식을 준비해 주셨던 분들, 적든 많든 정성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해 주셨던 분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없음이 송구스럽다.

물론, 나는 이제 새로운 SKYM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정규노동자의 집을 만드는 일도 거들고 싶고, 한남동 테이크아웃 드로잉이 자본에 그냥 그렇게 내몰리지 않도록 막는 일도 같이 하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그 한을 푸는 일에 본격적으로 힘을 보태고도 싶고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강원도를 자주 찾고 싶기도 하다. 녹색당 같은 대안 정당들이 여의도에 입성해 국회 앞마당에 잔디 대신 상추와 깻잎을 심어 시민들과 나누어 먹는 기적 같은 일들을 보고 싶기도 하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도 이글은 SKYM 의 싸움이 끝났음을 알리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이 글은 SKYM 의 투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하는 글이다. SKYM 의 싸움이 끝난 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세상은 종종 우리가 싸우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쉽게 우리 존재를 잊기도 한다.

난 앞으로 더 자주 밀양에 가서 박재열 작가가 산에서 캐온 자연산 송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제주 강정에 가서 미량이 오빠 영우 형이 잡아주는 옥돔을 구워 먹고, 평택에 가서 정규직으로 복직한 쌍용자동차 유제선이가 탄 월급으로 기름밥을 얻어먹고, 용산 레아에 가서 수제맥주를 마실 생각이다. 더 자주 더 길게 SKYM을 여행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쌍용 강정 용산 밀양의 싸움, 그리고 청도와 세월호의 투쟁도 지켜봐 주시고 함께 해 주시라는 부탁으로 갈음한다. 차가운 소주 한 잔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간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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