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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우주의 건강 유지하기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내적 생태계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해 볼 것은 다 해보셨잖아요. 수술도 받으셨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이며 한방 병원도 다 다녀 보셨고, 그곳에서 하라는 것은 다 하셨지요. 그런데 지금 다시 수술하자는 말을 들으시잖아요. 이제는 멈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한의원에는 참 다양한 분들이 옵니다. 먼저 일반적인 일차 진료가 필요한 질병을 가진 분들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 중에는 집이 가까워서 오는 분, 특정 증상에 한의학적 치료가 더 낫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아서 오는 분, 양방 의약을 먹으면 불편해서 침을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해 오는 분이 있고, 때론 그냥 한방을 선호해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증상이 조금 중한 병을 치료할 때 양방 치료와 병행하거나, 기존의 치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한의학에는 뭔가 방법이 있을까'하는 기대로 오는 분이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는 담당의가 한의원에 가길 권유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앞선 환자처럼 많은 의료기관을 다 섭렵한 후,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동네에 한방 병원이 있으니 그냥 한번 와 보는 분도 있습니다. 상담하면 자신이 여태 다닌 병원과 담당한 의사의 이름, 그리고 받은 치료법과 치료비용까지 쭉 이야기합니다. 마치 '난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튀어나오는 증상을 '꽝!' 하고 망치로 때려 넣기 바빴던 거지요. 그러면 다시 튀어나오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튀어나오니, 나중에는 망치질할 힘도 없어지고 우울함과 짜증, 그리고 약간의 분노로 마음이 채워지게 됩니다.

다양한 환자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저분의 병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과연 인간이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게 다다른 결론은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이루는 생태계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도 수많은 생명체의 하나이므로 생명에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만족해야 살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인간은 땅의 음식과 하늘의 기운을 마심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고 표현합니다. 영양, 산소, 온도가 생명 유지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가 본래의 좋은 기능을 발휘하려면 영양과 산소가 공급되어야 하고, 적정 온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물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요.

인간이라는 형태를 해체하고 보면, 물에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와 미생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 세포가 건강을 유지하고, 그보다 많은 미생물과 평화로운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양, 산소, 온도의 조건은 중요합니다. 저는 암과 같은 세포 수준의 중한 질병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의 균형이 깨진 상황이 오래되었을 때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기능의 바탕이 되므로 다른 질병에도 중대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먹고 마시고, 좋은 공기로 충분히 깊이 숨 쉬고, 적정 체온을 잘 유지하는 것은 감기부터 암까지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수많은 건강법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체온이 떨어지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이러한 조건만 잘 유지하면 건강할 수 있을까요? 기본이 되고 매우 중요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틀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달리 인간의 몸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세포가 모여서 일정한 기능을 가진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장부, 혈관과 신경, 그리고 근육과 뼈 같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구조죠. 한의학적으로는 여기에 경락계를 하나 추가할 수 있겠지요.

이런 복잡한 구조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특정한 변화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노화이지요. 게다가 문명이 발전하면서 변화한 생활방식, 그리고 환경의 변화도 한몫 합니다. 오랜 기간 생존을 위해서 적응해 왔는데, 갑자기 오래 살게 되고 세상도 너무 빨리 변화하니 몸이 채 적응하지 못해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성인병, 생활습관병, 퇴행성 질환과 같은 거지요.

우리는 어떻게든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데, 그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합니다. 하나는 변화하는 속도에 어떻게든 적응하면서 따라가려는 방식입니다. 새로운 관절을 만들고, 혈관을 만들고, 장기를 만들고, 유전자를 조작하고, 약물로 병을 견디려 합니다. 또 다른 방식은 내 속도를 늦추는 것입니다. 거북이처럼 사는 것이지요. 그럼으로써 좋은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저는 동양의 다양한 양생법의 지향점을 이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방식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취향입니다만, 저는 역시 후자를 선호하고 지지합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정신입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주는 특징의 하나이고, 기의 흐름과 몸의 변화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는 이 의식의 힘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잘 다루면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어 내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만, 잘못 다루면 모든 것을 망치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정신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모르고(물론 다 안다고 착각합니다), 이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거나, 종교의 영역으로 치부하거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정신병으로 오해(?)하기도 하지요. 물질만을 중요시하는 세태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게 된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듭니다. '진지충'이란(제가 종종 듣는 말이기도 합니다) 말이 생길 정도니까요. 하지만 우리 몸을 가꾸고 단련하는 것만큼이나 의식을 잘 다루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격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지구상에서 시작한 생명의 역사의 최신판을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오랜 기간 생존하고 변화한 생명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따라서 건강하게 잘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이 생태계를 좋은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건강에 어떠한 문제가 생겼다면, 특히 중대한 문제일수록 거기에 묻히지 말고 내부의 생태계 어디에 불균형이 생겼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소우주라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에는 이 말이 단순한 비유라고 생각했지만, 들여다볼수록 인간은, 그리고 생명은 작은 우주가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이 탄생하고 사라지듯, 인간도 태어나고 언젠가는 죽습니다. 가능하면 좋은 건강을 유지하면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면 좋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의 생태계를 본래 좋은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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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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