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이륙은 매우 민감한 운행이어서 눈과 얼음, 기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 모든 악조건이 한꺼번에 제주공항에 닥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제주 도심 폭설은 32년 만이며, 서귀포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영하 2.5도를 기록했다.
도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상황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지난 23일과 24일에는 제주공항에 일단 들어왔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드문 제주의 상황 상 눈이 오자 도로는 곧바로 빙판으로 변했다. 도로 제설 시설 준비는 고사하고, 눈길에 체인을 감고 운전하는 차량도 보기 드물었다. 택시기사들도 "이런 날씨에 운전하다가 괜히 사고라도 나면 오히려 손해"라면서 대부분 운행을 포기했다. 버스도 어쩌다 한 대씩 눈에 띌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을 동반했거나 이동이 여의치 않은 관광객 2000여 명은 제주공항에서 벗어나 숙소를 구하는 일조차 어려웠다. 출근을 앞둔 이들이나 이동이 급한 사람들은 결항된 비행기가 언제 뜰지 몰라, 뜬 눈으로 공항에서 지샐 수밖에 없었다.
제주공항 측에서 널빤지와 담요를 4인당 하나씩 지급했으나, 영하의 날씨 속에 관광객들은 졸지에 '공항 노숙자'가 됐다.
25일 오전, 제주공항은 여전히 혼잡하다. 수천 명의 관광객이 공항 노숙 중이며, 혹시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 표를 구입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섰다. 제주공항 측은 음료와 보리빵 등 최소한의 끼니를 때울 식품을 제공하고 있으며, 제주보건소에서는 비상진료소를 운용하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는 휴대폰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한 여행객은 "수건이라도 지급해줬으면 좋겠다"면서 노숙에 따른 불편을 호소했다.
저가항공기를 예약했던 일행은 "특별기편을 기다리면서 대기표를 받았다"고 했으나, 이들의 대기 번호는 1100번을 넘어섰다. 저가항공은 특별기를 편성해도 정원이 200여 명 정도여서 하늘길이 열린다고 한들, 언제 차례가 올지 알 수 없다.
공항에서 만난 한 중국 여행객은 "오늘 서울 관광을 위해 숙소 등을 예약했는데, 모든 일정이 틀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남매를 데리고 제주를 찾았다는 한 40대 가장은 "공항에서 이틀을 노숙했다. 이제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자포자기한 심정"이라고 했다.
정부는 오늘(25일) 안으로 공항 운행을 재개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후 2시 48분 운항이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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