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국내 바이오 의약품 제조업체의 주가가 시장의 뜨거운 관심사입니다. 예를 들어, 셀트리온의 시가 총액은 이미 10조 원이 넘습니다. 여기에 삼성그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연내 국내 상장 가능성도 언론에 계속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호사가들은 이 기업 역시 상장과 동시에 시가 총액 10조 원은 거뜬히 넘을 것이라 입을 모읍니다.
실물 경제와 유리된 주식 시장의 '바이오 거품'이라고 무시할 만한 상황도 아닙니다. 전통적인 합성 의약품의 신약 개발이 뜸하면서 전 세계 제약 산업이 바이오 의약품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요. 2013년 약 1600억 달러(약 190조 원)였던 바이오 의약품의 시장 규모는 2019년에는 약 2600억(약 315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서 오랫동안 과학기술 담당 기자로 일해온 강양구 기자가 2016년 연중 기획으로 한국 바이오 산업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바이오 와치'를 시작합니다. 기업의 경영자, 현장의 과학자, 투자 기관 관계자, 규제 기관 관계자, 환자 단체, 시민 사회 등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서 국내 바이오 산업을 두루 살펴볼 예정입니다. '바이오 와치'가 우선 주목하는 것은 '바이오시밀러'입니다.
바이오 의약품 가운데 국내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이 바이오시밀러입니다. 합성 의약품도 복제 약(제네릭)이 있듯이, 특허가 만료된 바이오 의약품도 따라서 약효가 비슷한 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약을 바이오시밀러라고 합니다. 단, 바이오시밀러는 복제 약처럼 만들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바이오 의약품 제조 자체가 생물체 유래 성분을 원료로 하는 고난도의 생명공학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과 비슷한 약효를 가진 의약품을 따라서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바이오시밀러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셀트리온입니다. 삼성이 겨냥하는 것도 바로 이 바이오시밀러입니다.
과연 셀트리온이나 삼성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바이오 와치'가 이 답을 찾고자 가장 먼저 만난 전문가는 한영섭 전(前) 주중 한국 대사관 식약관입니다. 그는 한국 공무원으로서는 가장 오랫동안(7년) 중국 주재관으로 근무하고 나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셀트리온에서 수석부사장으로 재직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공무원의 시각으로 세계 제약 산업의 변화와 한국 제약 산업의 강점과 단점을 살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핵심 기업의 내부자로서 일한 흔치 않은 경험을 했습니다. 셀트리온을 퇴직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을 지원하는 컨설팅을 하고 있는 한영섭 전 식약관을 강양구 기자가 지난 8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의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2013년 6월 28일을 기억하라!
프레시안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바이오시밀러입니까?
한영섭 : 최근의 바이오 의약품 특히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바이오시밀러 충격은 시작되었으니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2014년 기준 매출액이 수억 달러에서 10억 달러를 넘는 블록버스터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이 최근 특허가 만료되었거나 줄줄이 만료될 예정입니다.
류머티즘 관절염,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로 유명한 레미케이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레미케이드는 2014년 매출액이 약 88억700만 달러였는데, 유럽연합(EU)에서는 특허가 만료되어 판매 중이고, 미국에서도 물질 특허는 만료되었고 일부 특허 소송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 허가만 나면 시장에 진입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바이오 의약품은 연구 개발이 성공하기 매우 어렵고 제조 공정이 까다로워서 약 자체가 굉장히 고가입니다. 예를 들어, 레미케이드의 일본 판매 가격이 8만4536엔(약 87만 원)입니다. 만약 특허가 풀린 오리지널 의약품과 약효가 비슷한 약(바이오시밀러)을 만들어서 싸게 팔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니겠어요?
프레시안 : 그런 바이오시밀러가 왜 최근에야 주목을 받고 있는 겁니까?
한영섭 : 아닙니다. 바이오시밀러는 최근 들어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부터 준비되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어요. 2013년 6월 28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저는 이날이 세계 제약사의 또 다른 챕터가 쓰이기 시작한 날로 봅니다. 그 챕터의 시작이 우리나라 기업에 의해 쓰이기 시작했죠.
셀트리온이 세계 최초로 제2세대 항체 의약품 바이오시밀러를 EU(EMA)로부터 시판 허가 받은 날이거든요. 전 세계 제약계의 눈이 그날 EMA가 있는 런던과 셀트리온이 있는 송도에 쏠렸는데, 우리는 불과 몇 해 전에 일어난 이 엄청난 일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당시에 대한민국의 축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 그냥 지나가 버렸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프레시안 : 그때 허가 받은 게 바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로 셀트리온이 만든 '램시마'죠
한영섭 : 맞아요. 세계 최초이다 보니 한 발짝 한 발짝이 모두 의미 있는 발걸음입니다. 이미 EU, 일본 등에서 판매 중이죠. 일본의 램시마 판매 가격이 5만9814엔(약 61만 원)으로 레미케이드보다 30% 정도 쌉니다. 심지어 임상 시험 결과 레미케이드보다 되레 약효가 더 좋은 것으로 확인이 되었어요. 값도 30% 싼 데다 약효도 좋다면 이런 약을 쓰지 않을 리가 없죠.
프레시안 : 미국, 일본, 유럽처럼 고령화 등의 이유로 의료비가 급증하는 곳에서는 더욱더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관심이 높겠군요.
한영섭 : 바로 그 점이 바이오시밀러가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바이오 의약품은 통상의 합성 의약품에 비해서 효과는 탁월한 반면에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앞으로 그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고령화가 이런 수요를 더욱더 부추기겠죠.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바이오 의약품은 약값이 비싸서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지죠.
이 경우 해법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의료가 시장에 맡겨져 있는 나라에서는 소수의 부자만 바이오 의약품의 혜택을 볼 수 있겠죠. 반면에 의료가 공공 서비스로 제공되는 유럽과 같은 곳에서는 바이오 의약품을 시민에게 공급하느라 사회 전체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그런데 만약 약효가 같거나 더 좋고 값도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라는 대안이 있다면 어떨까요?
프레시안 : 정부부터 나서서 바이오시밀러의 사용을 권장하겠군요.
한영섭 : 셀트리온의 램시마가 등장하고 나서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죠. 노르웨이 정부가 나서서 의사들에게 레미케이드가 아니라 램시마 처방을 권장하고 나섰습니다. 지금 고령화나 재정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어요. 환자에게 더 낮은 가격에 같거나 약효가 좋은 의약품이 있다는 것은 환자나 국가 모두 환영할 일이죠.
바이오시밀러가 앞으로 더욱더 각광을 받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바로 이런 사정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시장이 급속히 확대돼서 2020년이 되면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규모가 어림잡아도 약 239억 달러(약 29조 원)에 이를 전망이고요.
'이재용의 삼성' 바이오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 듣고 보니,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아까 '때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영섭 : 늦었죠. 왜냐하면, 세계는 한참 전부터 바이오시밀러의 가능성에 주목했으니까요. 그 단적인 증거가 싱가포르 국부 펀드로 유명한 테마섹이 2010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서 총 3574억 원을 셀트리온에 투자한 일이죠. 2011년 JP모건 산하의 사모펀드가 약 2500억 원을 투자한 것은 어떻고요?
돈 버는 데는 도가 튼 테마섹이나 JP모건이 왜 셀트리온에 투자를 했겠습니까? 바로 바이오시밀러가 중요한 의약 산업으로 부상할지 앞서 내다본 겁니다. 그 때 우리나라는 어땠습니까? 셀트리온과 또 창업자 서정진 회장은 반쯤 사기꾼 취급을 받았었잖아요? 눈 밝은 개미 투자자 말고 어떤 금융 기관이 셀트리온에 투자를 했습니까?
프레시안 : 아무튼 지금은 시가 총액 10조가 넘는 코스닥 대장주지 않습니까? (웃음) 그나저나 최근에 바이오 의약품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삼성그룹의 행보와도 무관치 않습니다. '이재용의 삼성'도 반도체 등을 대신할 새로운 먹을거리로 바이오 의약품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표적인 예죠. 삼성그룹이 방향은 잘 잡은 겁니까?
한영섭 : 즉답이 어려운 질문이네요.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긴 하지만 바이오 의약품으로 방향타를 정한 것은 큰 틀에서 보면 맞다고 봅니다. 접근 방식이나 단계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겠지만 사실 삼성이 바이오 의약품에 주력하기로 한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있더라도 굉장히 영리한 선택입니다.
프레시안 : 왜 그렇습니까?
한영섭 : 중국에서 오랫동안 주재하면서 중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어떻게 추격하는지 지켜봤습니다. 조선, 철강 산업은 이미 중국에 추격당했죠. 샤오미나 화웨이 등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IT(정보 기술)도 중국과 우리나라는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중국은 비디오테이프 없이 바로 CD로 넘어가기도 하고, 항공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나라죠. 기술의 스펙트럼이 흥미롭고 또 놀랍습니다.
그런데 바이오시밀러 같은 고가 바이오 의약품 산업은 후발자의 추격이 쉽지 않아요. 우선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단숨에 성취를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엄청난 기술 장벽이 존재합니다. 또 개발 후 시판이 되고 나서도 임상 데이터의 축적 등의 단계를 건너 뛸 수 없는 것이 제약 산업입니다.
그리고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과 첫 번째 바이오시밀러가 장악한 시장에 진입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장악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선점 효과죠.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보다 더 싸고 약효도 비슷하거나 더 좋아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2등이 별 의미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거예요.
더 중요한 대목도 있죠. 중국의 어떤 기업이 열심히 연구 개발해서 레미케이드(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와 램시마(바이오시밀러)에 준하는 제2의 바이오시밀러를 만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에 램시마. 허쥬마, 트룩시마 등을 개발한 셀트리온은 놀고 있겠습니까?
제조 공정은 더욱더 효율화되어 있을 테고, 새로운 바이오시밀러도 연구 개발을 통해서 계속해서 내놓겠죠. 종국에 가서는 셀트리온과 같은 제약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인 새로운 신약이라는 앞길을 향해 나아가게 되죠. 뒤에서 열심히 따라가려 하는 데, 앞의 선수가 더 열심히 달리면 뒤의 선수는 참 허탈하다는 거죠.
의약품 시장이라는 게 이렇습니다. 선도 기업이 미리 선점한 시장을 후속 기업이 섣불리 따라잡기가 어려워요. 우리나라가 다른 제조업에서는 추격 전략이 가능했는데, 의약품 세계 시장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죠. 그러니 삼성이 바이오 의약품에 주력하기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대단히 잘한 선택이죠.
다만, 길은 정해져 있는 데 어떻게 가야할지는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숙제를 해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프레시안 :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습니까?
한영섭 : 있습니다. 제가 삼성의 내부 전략이나 경영자의 의중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걸 감안해서 들어주십시오. 우선 삼성의 바이오 의약품 산업 전략이 현재나 미래에도 적용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본질은 바이오 의약품 하청 업체입니다. 그러니까, 애플의 주문을 받아서 '아이폰'을 생산하는 팍스콘처럼 글로벌 제약 기업의 하청(CMO)을 받아서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해서 납품하는 기업입니다.
삼성은 이런 하청 업체로서의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같은 바이오 의약품 연구 개발에 나서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미국의 바이오젠과 공동으로 설립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지분 80.3%)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상의 그림은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 연구 개발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생산한다는 것이죠.
프레시안 : 그림만 보면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한영섭 : 그렇죠. 그런데 왜 좀 더 욕심을 내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삼성과 비교해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셀트리온이 바이오시밀러 연구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이 하청 생산에 치중하기로 한 선택은 너무나 안전하고 수세적인 선택이라는 거죠.
이재용 부회장이 '기업가 정신'을 좀 더 발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거죠. 잘은 모르지만 IT 산업의 눈으로 바이오 제약 산업을 설계하고 재단하는 측면이 있다면, 그건 제 생각과는 거리가 있어요. 서둘러 되는 일이나 단기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이 있거든요.
삼성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자본력을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런 아쉬움이 듭니다. 지금 삼성이 전력 질주하면 특허가 만료되는 몇몇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고, 그 결과 얻을 수 있는 매출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하청을 받아서 기대되는 매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텐데요.
셀트리온이 그나마 돈이 되었던 평탄한 CMO를 접고 바이오시밀러와 신약을 연구 개발하는 고통스런 길을 택하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삼성은 셀트리온의 선례가 있기 때문에 최소한 처음 가는 길을 만드는 고통도 없을 텐데요. 셀트리온이 했는데 삼성이 못할 이유가 뭡니까?
싱가포르 국부 펀드 1조 수익 vs. 국민연금 7900억 원 손실
프레시안 : 아까 테마섹이나 JP모건의 셀트리온 투자 얘기를 언급했습니다. 바이오시밀러처럼 연구 개발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에 셀트리온과 같은 벤처 기업이 뛰어들어서 성과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초기 사업 비용을 마련하느라 명동 사채 시장에 손을 벌렸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만.
한영섭 : 셀트리온뿐만 아니라 국내의 바이오 벤처의 사정이 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가장 덩치가 큰 기관 투자자 가운데 국민연금이 있습니다. 만약 싱가포르 국부 펀드 테마섹처럼 국민연금이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 국내 기업인 셀트리온에 투자를 했으면 어땠을까요?
현재 테마섹의 셀트리온 주식의 가치는 시가 총액 10조 기준으로 1조4000억 원 정도입니다. 3574억 원을 투자해서 거의 1조 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린 셈이죠. 반면에 국민연금은 어땠습니까?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는데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따라서 약 7900억 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습니다.
싱가포르 국부 펀드가 국내 바이오 벤처 기업에 투자해 1조 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릴 때, 우리나라 국민이 십시일반 모아서 기금을 조정한 국민연금은 약 7900억 원을 허공에 날린 거죠. 이렇게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게 과연 맞는 건가요?
물론 테마섹도 수익을 보고 참여한 것이겠죠. 하지만 테마섹은 눈앞의 이익만 보는 단타 투자가 아니고 장기적인 가치 투자 그리고 출산의 고통을 같이 겪고 성장을 보면서 과실도 같이 영위하는 그런 투자를 한 거예요. 당연히 주식 시장에서 주가 상승을 통한 차익은 수반되는 것이고요.
프레시안 :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을 놓고서는 여러분의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영섭 : 사실 이런 식의 운용은 후세대에 부담을 주는 굉장히 심각한 부작용을 낳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성숙되면 (가입자에게 지급할) 급여를 충당하기 위한 현금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다량 보유하고 있는 재벌 기업의 주식을 한꺼번에 처분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재벌 기업의 주가 폭락을 과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길게 할 얘기는 아닙니다만, 국민연금이 좀 더 넓게 보고 투자를 미래 지향적으로 해야 합니다. 미래의 국민연금을 짊어질 세대를 위해 그들의 일자리를 준비하고 마련해 나갈 그런 기업에게 물을 주고 거름이 되는 것이야말로 국민연금의 책무라고 봅니다. 기업이 살고 다음 세대의 일자리가 마련돼야 후세대들이 사회 보장을 부담할 능력이 생길 거 아닌가요?
그 가운데 아주 적은 비율이라도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의 바이오 벤처에 투자하는 게 필요합니다. 오죽하면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 명동 사채 시장에 손을 벌렸겠습니까?
한국 제약 기업의 경쟁력, 규제 강화가 답이다
프레시안 : 국민연금 얘기가 기왕에 나왔으니 자연스럽게 정부 역할을 놓고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마침 정부는 2020년에 '바이오 7대 강국'에 진입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바이오시밀러 같은 바이오 의약품 산업의 성장에 정부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요?
한영섭 : 없습니다. (웃음)
프레시안 : 그래도 공무원 출신이신데…. (웃음)
한영섭 : 정부가 할 일이 왜 없겠어요. 다만, 바이오 강국은 시작에서 끝이 시장에서 시장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합니다. 만약 지금 정부가 1970년대 가지고 있었던 만큼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정부가 서서히 권한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금은 특정 산업을 견인할 만한 강력한 수단을 정부가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해요. 대한민국은 그런 시대를 넘어섰어요. 시장이라는 것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정부에 너무 기대해서도 안 되고 그리고 설사 기대하더라도 그 수단이 녹록치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겁니다.
프레시안 : 그래도 여전히 정부의 역할을 기대할 만한 일이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매년 여러 부처를 통해서 막대한 연구 개발(R&D)비가 나갑니다.
한영섭 : 딱 그 정도죠. 연구 개발 지원은 상업화 과정에 이르는 규제를 어떻게 스마트하게 설계해 주느냐 하는 문제와 더불어 중요한 정부의 역할인 것은 맞아요. 오늘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만, 바이오시밀러 같은 바이오 의약품을 연구 개발하는 데는 시간과 자본이 불가피하게 듭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 연구 개발비가 지원이 되어서 기업이 어려울 때 숨통을 터 준다면 굉장히 긍정적인 일이죠. 실제로 정부가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프레시안 : 그런데 정부 연구 개발비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영섭 : 현장에서 보면 정부 연구 개발비는 여러 대학과 소속 교수의 나눠먹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어요. 교수들이 현란한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제안서를 너무 잘 만드는 것 같아요. (웃음) 제대로 된 평가에 기반을 둔 적시적소의 연구 개발비 운용이 이뤄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집중도가 떨어지는 중구난방 나눠먹기로 운용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연구 개발비가 수없이 쪼개져서 사실은 집행이 되더라도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방식으로 기능하기도 하고요.
프레시안 : 연구 개발비 문제는 앞으로도 여러분의 고언을 들을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정부의 역할 가운데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영섭 :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네? 제약 산업의 규제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요?
한영섭 : 그렇습니다. 우리는 규제하면 강화냐 완화냐, 하는 식으로 바라보는데 사실은 규제를 합리화하고 선진화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요. 무조건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똑똑하게 규제하고 세계 표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미국이나 EU 기준 등을 보자면 대체적으로 강하고 꼼꼼하죠.
물론 국내 시장에서 올리는 매출로 먹고사는 고만고만한 제약 기업들 입장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MFDS) 등의 규제가 귀찮은 일이죠. 그런데 이제는 국내 시장을 바라보던 그런 제약 산업에서 해외 시장으로 나아가는 제약 산업으로 나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우리 제품을 수출하고자하는 나라의 규제를 염두에 두고 우리도 그에 걸맞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거죠.
만약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미국 FDA 정도의 권위가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우리가 제품 광고에서 많이 보듯이, 미국 FDA 승인을 왜 강조하나요? 믿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 규제 당국의 경쟁력이 곧 우리가 규제하는 제품의 세계 시장 경쟁력과도 관련이 있어요.
국내 제약 기업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규제를 잘 다듬고 또 운영에 있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워져야합니다. 특히 바이오 의약품 같은 경우는 제조 공정, 임상 시험, 제품의 안전성 등 따져봐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물론 너무 복잡하고 예측성이 떨어지도록 설계하면 우리 바이오 기업이 상업화의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중간에 고사하고 말겠지요. 그래서 정부가 업계와의 대화도 활발히 진행하고 애로도 들으면서 강화할 것은 하고 풀어줄 것은 풀고 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아무튼 무조건 규제 완화가 능사는 아닙니다.
"2020년, 한국 기업이 세계 10대 제약 기업!"
프레시안 : 듣고 보니, 기업이 무조건 규제 완화만 외치는 것도 단견이군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정부 규제를 오히려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세계와 국내 제약 산업을 두루 비교할 수 있었고, 또 퇴직 후에는 셀트리온에서 몸도 담았었습니다.
한국의 바이오 의약품 산업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한영섭 : 기본적으로 낙관적입니다. 2020년이 되었을 때, 한국이 '바이오 7대 강국'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계 10대 제약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이 분명히 한 개는 끼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1990년대 초에 사무관일 때 화장품 산업 정책을 토론하면서 농담처럼 동료들과 했던 얘기가 떠오릅니다. '한국에 세계 10대 화장품 회사가 생기는 날이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세계 10대 화장품 회사 수준의 기업을 가지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한국 국적의 세계 10대 제약 기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예를 들어 어딥니까? 셀트리온입니까, 삼성입니까, 둘 다 입니까? (웃음)
한영섭 : 내심 답은 가지고 있지만, 노코멘트! 다만 셀트리온이든 삼성이든 또 다른 기업이든 중국을 비롯한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도울 생각입니다.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작년 초에 갑자기 셀트리온 수석부사장직을 내놓은 이유는 뭡니까?
한영섭 : 개인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한 가지만 언급하면 이거죠. 저는 대한민국 정부가 배려해 준 덕분에 공무원 가운데 가장 길게(7년) 중국 주재관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복잡한 제도를 뚫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반드시 담당 공무원과의 대면 접촉도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이나 중국 사업을 하는 분들 가운데 중국의 규제 담당 공무원의 휴대전화 번호 하나라도 알고 있는 이들도 드물 겁니다.
프레시안 : 중국 대상 사업에서 본인이 일종의 공공재라는 거군요.
한영섭 : 그런 측면도 있죠. 공무원 퇴직 후에 서정진 회장의 배려로 민간인으로서 중국 사업과 관련해서 많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표현대로 국민 세금으로 공공재로 훈련을 받았으니, 좀 더 우리 사회에 갚아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같은 맥락에서 주변의 많은 분이 조언도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 중국 진출을 꾀하는 기업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한영섭 : 중국 시장에 나가려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막막합니다. 산 넘어 산이죠. 당연히 답답하죠. 그럴 때 백짓장도 맞들 면 낫다고 누군가 거들어주면 조금은 더 쉽게 산을 넘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작은 역할을 바로 제가 하겠다는 것이죠. 셀트리온 퇴직 후에 (제 기준에서) 국내의 열심히 하는 바이오 기업을 한 번씩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금 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 때 제가 그랬어요. 중국 진출 혹은 세계 시장 진출과 관련해서 비용도 받지 않고 자문을 하겠다고. 나중에 잘 되면 소주나 한 잔 사시라고. (웃음) 지금 제 마음이 딱 그렇습니다. 아무튼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국내 기업의 중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 진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나갈 예정입니다.
프레시안 : 앞으로 계속 지켜보면서 응원하겠습니다.
전체댓글 0